강아지풀  
       윤 한 로

도끼로 문짝을 부수는 듯
울며불며 덤비던 사나운 바람
화분이 나동그라지고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고
나무 둥치가 뽑히고
가지가 찢기고
질긴 풋감마저 떨어져
씨를 드런낸 채, 여나문 길바닥에 딩굴고
제멋대로 훨훨 날던 빤스 조가리
돌돌 말려 하수구에 쳐박혔다
붉고 푸른 꽃들은 죄다 쓰러져
쑥대밭이 됐으며

이젠 모두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달게 잠든 아침
팔십 노모 혼자만이 일찌감치 문간에 나와 앉았구나
깨진 보도블럭 틈새에
우리들 여기 있노라, 이겼노라
파릇파릇 나부끼는 강아지 풀
피보다 진한 이슬 몇 방울 매달곤
눈물겹다, 햇살 속 깽깽  


시작 메모
옛날 어떤 관리가 여귀(女鬼)를 사람으로 잘못 알고 운우지정을 나누며 사흘을 같이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괴이한지라 다음에 왔을 때는 못 본 체 하였다. 그러자 여귀는 성을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잠시 후 회오리바람이 일며 문짝 하나가 부숴지고 나뭇가지들이 부러져나갔는데 도끼로 찍은 것 같았다. 태풍이 휩쓸고 갔다. 떨어진 간판과 문짝, 허옇게 가지가 찢어진 나무들을 아프게 보면서 불현듯 이 전설을 떠올렸다. 파릇파릇 살아 나부끼고 있는 풀들, 우리네 그 풀들한테는 제아무리 바람도 여귀도 어쩌지 못하리.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