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시인
       윤 한 로

떨어지고 나니까 깨지고 나니까
시가 쓰고 싶어졌다
인생은 가슴 뭉클 더 깊어졌다
그렇구나, 시인이 굳이
대학에 가야만 하는가 대학원을 나와야 하는가
비를 노래하고 바람을 노래하면 그뿐
개똥 골목 길
나무를 노래하고 새를 노래하면 그뿐
꾀죄죄한 절망과 희망
하냥 사랑하고 또 미워하면 됐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짝퉁 츄리닝 속
허여멀건 멀대 목 파묻으면 됐지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으면 됐지
긴긴 밤 와룡생 무협지도 끝이 났어라
밀려오는 대미의 진한 허무
씹고 또 씹었으면 됐지
삼선쓰레빠 찍찍 끌명 복개천 속
끈적한 그리움 찾아 귀 기울여
속삭이고 속삭이면 됐지 흐흐흐
담배 피는 고삐리들 편의점 모퉁이 굽돌아
그 꿀꿀함에 절고 또 절었으면 됐지
별에 찌들고 안개에 찌들고
오동나무 넓적한 잎 지린내에 쩌들었으면 됐지

망치고 나니까
청춘 다 잡치고 나니까
인생은, 이름은
외려 깊어졌더라 눈부시더라
저, 찌그러진 봉고의 빛나는 범퍼처럼

시작 메모
꾀죄죄함에 대한 사랑과 시시껄렁함에 대한 사랑과 초췌함에 대한 사랑과 별볼일없음에 대한 사랑과 깨지고 또 망가지고 한없이 찌그러짐에 대한 사랑과---. 언제부턴가 난 이것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모든 마음의 고향은 영원히 이유가 없는 것.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