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윤 한 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로 뿅 솟구치니
구름 밭 구름 성 구름 인간
구름 군대 구름 백만천만명 구름 대도시
구름 고향 구름 미루나무 느티나무 구름 길짐승 날짐승
온갖 구름 광경들
돼지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은 듯 아름답기 그지없어
전쟁 고함 승리 패배에 바다에 파도에 회오리에
거기서도 책을 읽고 길을 건너고 빵빵거리고 이마트에 가고
애들은 늘 지각을 하고 말을 안 듣고 선생님들은 다시 화를 내고
아아, 진실을 설교하는 스테파노와 성난 군중들도 있구나
빗발치듯 쏟아지는 돌멩이들
온갖 지혜와 온갖 부와 온갖 명예와 온갖 권력
온갖 선과 온갖 악
그러나 마침내 선은 악을 이기리라
영원히 악은 선을 이기지 못하리라
하늘 한켠 허물며
구름 기쁨 구름 굴욕 구름 사랑 구름 절망 구름 탄식
온갖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세기, 온갖 모순
나 말도 딸리고 글도 딸리고
코만 벌름거릴 뿐
이제 땅에 내려가면 까불지 말자


시작 메모
우리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비행기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귀가 먹먹하더니 뻥 뚫렸다. 영진이란 놈이 툭 친다. 창 밖에 구름 세상이 펼쳐졌다. 구름 광경은 하늘 한켠 무너뜨리며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너무도 위대해 차라리 악이었다. 수천만 병력처럼, 그 병력들 귀를 찢으며 일시에 아우성을 치듯, 성곽을 공격하듯 광대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마음 속에 자꾸 일어서는 모습은 ‘영원한 선의 승리’ 그것이었다. 영진이란 놈은 그새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리며 이어폰 속 음악에 빠졌다. 호랑이가 포효하듯 울부짖는 요즘 음악, 애들은 그게 뭔지, 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