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시(雜詩)
              윤 한 로

첫눈이 내린다, 설렌다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더라
퇴직할 생각을 하니
기원에 가서 바둑도 두고
아무려나 읽고 싶을 때 읽고
쓰고 싶을 때 쓰고
때려치고 싶을 때 때려치고
마누라 손잡고 날마다 산도 다니고
가자, 눈 오는 날은 무궁화 기차 여행도 떠나고
성당에 가서 교황님처럼 종일 묵주기도도 바치고
하늘 높이 가마귀 놈 때갈스러이 운다, 짖는다
날 저물어 초가집은 흰 눈 속에 파묻히고
아삼삼, 굴뚝엔 장작 연기 폴폴 오르고
이렇게 설렐 수가, 고플 수가
이제 방도 내가 쓸고 밥도 내가 하고
내 빨래는 내가 해야지
시간이 엄청 모자라겠다
와중에 바가지도 긁고 쌈박질도 하고 그러려니
돈은 또 엄청 모으겄다
조금 먹고 조금 싸니, 게다가
새파란 그거이들 앞에 더는 굽힐 일 없으니
갑자기
늙겄구랴
백수나 건달로

* 잡시(雜詩) : 당나라 도연명이 쓴 시 제목

시작 메모
15세기에 이미 19세기, 그것도 보들레르를 낳은 천재 시인 프랑수아 비용은 젊었을 적 공부는 안 하고 못된 짓을 일삼으며 악동으로 놀다간 후회막급이 된다. 강도와 절도, 음란 방탕, 사기, 살인으로 잦은 감옥 생활을 하며 사형 선고를 두 번씩 받는데, 비용의 시는 그 삶과 똑같아 신랄하고, 맹렬할 정도로 솔직하다는 평이다. 동감이다. 그러나 이런 비용도 도연명이처럼 ‘귀거래사’,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노래한 서양 사람 중 하나라고 결론짓는바. 참고로 도연명은 비용보다 1000년이나 앞당겨 5세기에 살다간 시인인 게다. 어느 때인가 이  도연명이, <세상 집착 다 버리곤 가벼운 삶 제일이다>라 하면서 그 제목을 ‘잡시’라 달았으니.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