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경마 역사는 전설의 명마 ‘퍼랩’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퍼랩’은 호주 경마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서러브렛이다.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퍼랩’이 있었기에 호주 경마가 발전했다고 단언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 그 막강한 파워를 실감할 수있지 않겠는가? 지난 1932년 사망해 이미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호주인들로부터 사랑받고 회자되는 ‘퍼랩’.
이번 호에서는 호주 경마계를 뒤흔들었던 명마 ‘퍼랩’의 눈부신 활약상과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어 본다.

마주에게서 미움받은 ‘퍼랩’

호주 경마 역사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던 ‘퍼랩’은 사실 뉴질랜드에서 출생했다. 지난해 미국 전역을 3관마 탄생 열기로 들끓게 했던 ‘카리스마틱’도 그러했지만 ‘퍼랩’ 역시 처음엔 그저 그런 서러브렛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경매에서 1세마로서 시드니의 조교사 하리텔풋에게 낙찰된 ‘퍼랩’. 아비는 ‘나이트레이드’이고 어미는 ‘엔트리티’로 텔풋 조교사는 그의 혈통에 호주의 전설적인 서러브렛, 카바인의 피가 흐르는 것에 착안해 사진가이며 마주였던 데이비스를 설득했다.
그러나 시드니에 도착한 ‘퍼랩’을 본 데이비스는 생김새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관리비 지불을 거부했고 텔풋 조교사는 3년간 ‘퍼랩’을 대여받기로 하는 조건으로 이후 수득하는 상금의 1/3을 마주에게 지급키로 했다.
‘퍼랩’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정말 초라한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천재 기수 지미 파이크와의 운명적 만남


혈통만을 철썩같이 믿고 ‘퍼랩’을 맡은 텔풋 조교사지만 5전만에 첫 승을 이루는 등 ‘퍼랩’의 시작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텔풋 조교사는 당시 최고의 기수이자 그의 친구였던 지미 파이크에게 그해 더비에서 ‘퍼랩’에 기승해줄 것을 당부했고 이로써 두 커플의 역사적 만남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
대기수로서 이름을 드높였던 파이크는 성적도 외형도 두드러지지 않았던 ‘퍼랩’에 기승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는 않았으나 기승해 본지 2주일 만에 돌연 ‘퍼랩’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워윅 스테익스 준우승, 로즈힐 기니 압도적 우승, 그리고 마침내 더비 석권 등 돌연 변신을 시도한 ‘퍼랩’과 파이크의 전설적 콤비는 경주를 쌓을수록 위력을 더해갔다.
더비에서 ‘퍼랩’의 우승 기록은 2분 31초 2로 이후 2년간 파이크와 ‘퍼랩’ 콤비는 30전 27승 2위 2회의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게된다.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퍼랩’

마주인 데이비스는 ‘퍼랩’이 멜번컵 3연패에 실패하자 미국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퍼랩’은 미끌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발톱이 갈라져 치료를 받았으나 각종 경주를 앞두고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에서의 데뷔전을 최고 기록 수립이라는 우승으로 장식했고 이는 소문으로만 ‘퍼랩’의 활약상을 전해들었던 미국인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미국인의 기대를 모으며 다음 경주까지 휴양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교외 목장으로 간 ‘퍼랩’이 마방에서 돌연 급사한 것은 1932년 4월 5일이다.
‘퍼랩’의 미국행에 반대해 호주에 남아있었던 텔풋 조교사는 라디오를 통해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사인은 불명.
미국인은 호주에서 싣고 온 썩은 사료가 그를 죽였다고 한 반면, 호주인은 ‘퍼랩’의 활약을 겁낸 미국 갱에 의해 독살됐다고 주장하는 등 이때부터 미국을 싫어하는 호주인의 정서가 보편화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퍼랩’의 심장은 호주로 이송됐는데 그 크기가 보통 말의 2배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