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기용 기수가 면허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 25일 경주에서 인기마 ‘밸류플레이’로 불성실한 플레이를 펼친 끝에 내려진 이례적 제재다.
마사회 심판처는 해당 경주 후 정기용의 재정위원회 회부를 공지하며 면허정지급의 중징계를 이미 암시했었고 조교사에게까지 연대 책임이 돌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조교사에게 100만 원의 과태금 제재가 떨어진 것이다.

면허정지까지 당한 기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상징적 의미는 충분히 있다. 일방적으로 기수의 책임만 추궁하던 것과 달리 ‘신인기수’의 ‘첫 기승’이었다는 것을 정상참작해 관리 조교사에게 일부 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며 향후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밸류플레이’ 건의 쟁점은 그의 입상 여부가 아니었다. 발통 부상으로 3개월 이상 공백이 있었던 데다 59kg는 미국 현지에서조차 달아보지 않았던 부담중량이어서 인기도에 부합하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할 말’은 있었던 상황이다.

문제는 과정이었다. 이전 두 번의 경주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은 물론 시종일관 ‘무의지’에 가까운 기수의 말몰이로 하위권에서 머물다 그대로 경주를 끝내지 않았나. 하다 못 해 결승선에서 기수의 채찍질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관전자의 입장에서조차 그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말이 무기력했는지, 기수가 무기력했는지, 의도했던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팬들이 분노하고 재결이 주목했던 것은 바로 이런 ‘무기력함과 불성실함’이었다.

승군전이 불리한 것도 잘 알겠고, 갑자기 늘어난 거리와 생전 달아보지 못한 과부담중량이 부담스러웠으리라 짐작 안 되는 바도 아니다. 출전을 미루자니 다음이라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경주에 내보낸 것도 이해가 간다.

신인기수의 입장에서 조교사나 마주의 의중을 먼저 헤아려 과도한 제스처를 한 것일까 짐작도 해보지만 그래도 이 날 정기용 기수와 ‘밸류플레이’의 모습은 베팅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작전’상 돌아가는 길이 필요했다면 ‘시늉’이라도 해 보였어야 했다.  
정기용은 신인이다. 그의 평상시 플레이는 대단히 공격적이어서 신인의 패기와 열의를 느끼게끔 하기에 충분했다. 절대 뒤에서 설렁설렁 끝내는 법이 없었고 우승이 확정된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추진해 뒷말들과 더욱 격차를 벌리곤 했던 그다. 그런 정기용이 이날 이 경주에서만큼은 전혀 ‘그답지’가 않았다.

마주와 조교사의 승부의지가 의심되고 오히려 정기용에 대한 동정론이 한쪽에서 일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부당한 지시에 할수없이 따른 것뿐이라면 이런 중징계가 기수로선 얼마나 부당할 것이고, 최선을 다 하라 했는데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라면 조교사로선 얼마나 억울할 것이며, 우승상금만 기다렸던 마주라면 얼마나 분통 터질 노릇이겠는가.  

이런 소모적 오해와 편견이 생겨나는 것은 부정이 판치는 우리 경마의 그늘도 한 몫을 했지만 역설적으론 기수, 조교사, 마주 간 올바른 관계정립이 요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주와 조교사, 그리고 기수… 이들은 먹이사슬식 관계도 아니고 기생(寄生)관계는 더더욱 아니다.
공정경마 시행을 위해선 무엇보다 이들 간 정상적인 관계정립이 시급한 시점이며 그러기 위해선 이런 사안이 발생했을 시 기수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고 징계를 가할 게 아니라 조교사, 더 나아가 경주마에게까지 패널티를 내리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그 다음은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면 위탁관리계약, 기승계약 등으로 묶여있는 이들의 관계는 스스로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고 변형하게 될 것이다. 마주는 더 효과적인 관리를 해줄 조교사를 찾게되고, 조교사는 더 나은 기승술를 지닌 기수를 찾을 때라야 비로소 건전한 경쟁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

마주와 조교사와 기수, 이들은 서로 공존하고 공생(共生)하는 존재다. 그들은 부등호가 아닌 등호관계여야 한다. 주요 경마시행 주체 간 대등한 관계 정립이 부정 시비와 오해를 없애고 공정경마를 시행하게끔하는 첫 단추임을 명심하자.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