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 그 이름도 촌스럽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할 것이다. 이 팀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 그를 소재로 한 영화 ‘수퍼스타 감사용’이 요즘 화제다.
만년 꼴찌팀 삼미슈퍼스타즈, 그 팀에서도 수준급(?) 꼴찌 선수였던 감사용은 승패가 거의 결정나고 관중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뜰 때 즈음 슬그머니 등판한다. 그가 마운드를 내려갈 땐 여지없이 스포츠캐스터의 “오늘도 졌습니다”란 멘트가 흘러나온다. 그런 그가 5년 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처음이자 마지막 승을 기록한다. 감동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사는 게 힘들수록 사람들은 이런 삼류들의 휴머니즘적 스토리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수십억의 제작비나 정상급 스타의 캐스팅 없이도 이 영화가 요즘 뜨는 이유다.

서울경마장 최고참 김귀배 기수의 우승도 경마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년에 3∼40회 출전이 고작인 그가 2년 만에 1등을 한 것이다.
‘고천암’이란 말을 일찍부터 머릿속에 넣어 두고 기수가 바뀌기만을 학수고대했던 팬이라면 이날 그의 우승을 보며 아뿔싸 했을 터.
무엇보다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혹을 훌쩍 넘은 그가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자신의 말보다 능력 좋다던 ‘세일리언트’의 ‘어린’ 황순도 기수와 경합을 하다 끝내 목 차로 이겨버리는 장면이었다. 2등만 해도 ‘잘했다’했을 텐데,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영화 속 과장된 휴머니즘보다 훨씬 리얼한 감동이었다.

우승열패라는 경마의 원리도 중요하고, 돈이 걸려있어 더 예민해질 수 있지만 때론 최선을 다 하는 이류, 삼류에게 박수도 보내고, 격려도 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 팬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실상 30분 단위로 40억의 향방이 엇갈리는 경마장. 분위기가 살벌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수와 조교사에겐 여론의 냉정한 시선이 쏟아지고 때론 의외의 선전을 펼친 자에게조차 ‘쏴 먹었다’는 비난이 날아간다.  
최고만이 대접받는, 적중 승식과 관계없는 등수에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 또한 이곳의 생리다. 그러는 과정에서 일류를 향한 이류, 삼류들의 고단한 노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팬은 이해할 것인가.  
그런 점을 헤아려 소모적인 베팅만 일삼을 게 아니라 기수와 조교사, 경주마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기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시는지…?

마사회 홈페이지엔 기수광장과 조교사광장이 있다. 이곳은 팬들이 기수나 조교사에게 하고픈 말(言)을 쏟아내는 곳이다. 잘했다는 격려도 있고 하소연도 있고 비난도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기수나 조교사에겐 팬들을 향해 변명도 좋고, 자랑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자유로운 만남이 제한된 경마종사자와 팬, 이들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임에 분명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부턴가 이곳에서 기수와 조교사의 자취가 사라진 것이다. 컴퓨터 켜는 법 몰라도 하나하나 배워가며 열심이던 조교사들이 이젠 고개부터 내젓는다.
하루가 멀다하고 원색적인 비난이 올 때면 컴퓨터 근처엔 얼씬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제 식구들이 볼까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란다.
헌데, 팬들은 궁금하다.
악벽이 있던 이 말이 이번 경주를 앞두곤 좀 나아졌는지… 지난번에 구절이 안 좋다더니 여전히 그런지… 경주에서 낙마한 기수의 상태는 좀 어떤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지 못하기에 누가 굳이 막지 않더라도 팬과 경마종사자 사이엔 벽이 생기고 단절되는 것이다.
주말이면 경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같은 ‘사회’ 속에 묶이게 되는 경마팬과 종사자들이 서로를 할퀴고 상처내기 보다 ‘내편’이라는 동질감으로 어우러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때가 되면 ‘수퍼스타 김귀배’ 이런 영화도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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