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스타트를 하기 위해 들어가는 발주기. 우렁차게 쾅하고 문이 열리면 일제히 말들이 뛰쳐나오기에 마지막 말이 들어가고 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경마팬이나 경마 관계자 모두가 마치 심장이 멈춘 듯이 숨을 죽인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모두를 초긴장 상태에 몰아 넣는 것이 바로 발주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언제나 긴박감이 감도는 분위기의 발주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발주기는 기수나 경주마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경주마에게 발주기는 실과 바늘 사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말일지라도 발주기에 들어가지 않거나 요동을 치거나, 또는 경주에 지장을 줄만한 발주 악벽이 있다면 경주에 출전시킬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발주 악벽으로 경주를 뛸 수 없는 말은 경주마로서 자격이 없음은 당연하다.

경주마와 발주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기 때문에, 각 조의 마방에 신마가 들어오면 그 어떤 걱정보다도 발주 악벽이 없기를 우선적으로 바란다. 발주기에 순조롭게 진입하고 잘 출발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마방에 갓 입사한 신마는 발주기에 주위에서 끌고 다니는 순치 운동부터 안에 들어가서 가만히 서있게 하는 훈련부터 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숙달되면 비로소 스타트하는 연습을 한다. 발주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발주 악벽마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러한 악벽마가 있는 조에서는 악벽을 순치 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게 된다.

발주기에 들어가지 않는 악벽이 있는 말은 평소에 생초 등의 먹이를 주면서 발주기로 유인해서 들어가게 하는 연습을 하고 그래도 들어가지 않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가면을 씌워서 끌고 들어간다. 간혹 경주 중 모니터를 보면 발주기에 들어가지 않는 경주마에게 발주위원들이 가면을 씌우는 것이 가끔 보이는데, 그 가면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눈 가리개 가면이다. 이렇게 앞이 전혀 보이지 않게 하고 끌고 가면 말이 잘 들어간다. 발주기에서 앞발을 드는 습성이 있는 말은 발주기에 들어가서도 앞발을 들기 때문에 발주기에 들어가자마자 발주보조원에게 말머리를 옆으로 꺾어 달라고 부탁한다.(경주중 머리를 옆으로 꺾어 놓고 있다가 마지막 말이 들어오는 것에 맞춰서 말머리를 정자세로 고쳐 주는데 이때 약간의 타이밍이라도 맞지 않으면 늦발주를 하고 만다. 기수들은 이런 말을 탈 때는 빠른 스타트도 좋지만 일단 안전하게 발주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기수들은 발주 악벽마를 타면 꽤나 긴장을 하게 된다. 발주 검사에서 늦발주를 하거나 발주대에 잘 들어가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기수가 말만 합격시키면 되기 때문에 말에 대한 걱정 외에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러나 말이 발주기에서 요동을 치거나 앞발을 드는 악벽이 있는 말에 기승 할 때는 기수는 몹시 불안해하며 두려워한다. 실제 경주상황에서 발주기 안의 경주마가 갑자기 발주기 앞문 밑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나가려고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기수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말의 목 힘에 빨려 들어가기에 이때 기수들이 손을 다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사고가 기수의 손 부상으로 해당 경주마가 경주 제외되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마의 악벽 가운데서는 말이 앞발을 드는 경우를 기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데, 발주기에서 말이 앞발을 들다가 뒤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기수는 말과 함께 발주기에 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앞발을 드는 악벽마에 기승 할 때는 기수들이 더욱 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말이란 동물은 순간적으로 악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만 하는데, 악벽이 없던 말이 갑자기 발주기에서 악벽을 부리면 기수는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기수들은 말이란 동물은 믿을 수가 없다는 푸념을 자주 하기도 한다. 필자는 4월 22일 일요 경주에서 ‘검은매력’에 기승해서 발주기 안에 들어갔는데, 말이 갑자기 예고 동작도 없이 앞발을 들면서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발주기 안에서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게 됐다. 오랫동안 기수 생활을 하면서 말이 예비 동작도 없이 한번에 앞발을 들어서 밖으로 나가떨어지기는 처음이어서 필자는 이만저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조교사와 발주위원 모두 발주 악벽이 전혀 없는 경주마라고 하였는데 그만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엉덩이 부분이 모래 주로에 떨어져서 마치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고통스러웠다. 필자의 엉덩이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말은 악벽으로 발주 재검 지시를 받게되니, 담당 조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기수들은 경주 중 재검이 떨어지면 제일 먼저 조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번도 발주기에서 악벽이 없던 말이 악벽을 부렸다는 것은 말과 기수가 무언가 모르게 그만큼 호흡이 많지 않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발주기에 관하여 글을 쓰다 보니, 주로에 놓인 큼직한 쇠붙이의 그 발주기 한 대의 값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알아보니 한 대 값이 무려 10억이라고 한다. 현재 경주로에서 사용하고 있는 2대의 발주기는 93년과 94년 일본에서 한 대에 약 십억씩을 주고 구입 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10칸 짜리 둔탁한 구형 발주기를 사용하였는데 발주기가 너무나 둔탁한 나머지 말들의 부상도 많았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구형 발주기를 보고는 이런 발주기로 어떻게 경주를 시행했는지 의아해 했을 정도였다. 그런 구형 발주기를 버리고 현재의 발주기를 사용한 결과 스타트도 훨씬 좋아졌고 기수나 말에 대한 안전도 많이 개선됐다.
발주기 한 대가 20칸으로 되어 있는데, 20칸 짜리를 12칸과 8칸으로 분리하여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경주마가 12두 미만 일 때는 8칸을 분리하고 12칸 짜리 하나만 사용한다. 현재 경마는 최대 14두가 편성되기에 12두 이상일 때는 8칸 짜리 두 대를 합쳐서 16칸 짜리 발주기를 사용하고 있다.

원활한 발주를 위해 총 39명 정도의 인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발주 정예요원 21명, 아르바이트생 9명, 수의사, 장제사, 깃발 드는 요원 등) 기수도 부상을 많이 입지만 발주위원도 말을 보조하다가 종종 부상을 입는다. 발주기에서 일을 하다 다쳐서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있는 발주위원도 있고, 발주기에서 말을 끌다가 말에 물려서 손가락이 끊어 졌던 발주위원도 있었다. 경마에 있어서 발주위원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경주 중 기수가 발주기 안에서 발주위원과 실랑이를 벌인다면 그만큼 기수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제대로 스타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발주위원과 기수는 서로간의 신뢰 속에 믿음을 갖고 서로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발주위원과 기수는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기수들과 마찬가지로 최 일선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경주로에서 묵묵히 맡은바 책임을 다하고 있는 발주위원들이 있기에 원활한 경주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발주위원들에게 기수를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발주위원 님들.. 감사합니다.”



작 성 자 : 홍대유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