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서울·제주 경주 방향이 다르네!
제주 경마를 보다가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이 ‘제주경마는 시계방향으로 도네!!’하고는 의아해 하는 순간을 자주 보았다. 그러면서 제주는 시계 방향으로 도는데 왜 서울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느냐고 묻는다. 제주경마가 교차투표를 하고부터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경주 방향이 다른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지형에 따른 설계상의 기준으로 결정한 것뿐이다.
경마장을 건설할 때는 우선적으로 경마팬의 입장 동선과 경기 관람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고려하여 관람대와 주로 등 시설물의 위치를 정하고, 일단은 주로의 위치가 결정되면 결승선을 기준으로 경주 거리별 발주 지점을 확인해 경주 방향을 결정한다. 이때 각 거리별로 출발지가 다른데, 출발 직후 직선 주로가 보장될 수 있는지, 결승선 통과 이후 여주거리가 150m 이상 나오는지, 곡선 주로에서는 그 반경이 얼마나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경주 방향을 정한다. 특별히 경주 방향과 말의 능력은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방향 선정 근거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제주만이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게 아니고 과거 우리의 뚝섬 경마장도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뚝섬에서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경주 방향이 바뀌어 기수들이 약간의 혼선을 받을 때 필자는 본의아니게 커다란 행운을 잡았던 일이 있었다. 말들이 한쪽 방향으로 경주를 펼치다 보면 대체적으로 한쪽 어깨에 무리가 가는데, 과천 경마장에서는 말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다 보니 왼쪽 어깨가 빨리 고장나는 편이다. 이렇게 한쪽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근육이 편중 발달하거나 그로 인해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에 훈련 때 고루 발달하도록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필자가 기승했던 유명한 명마 ‘차돌’에 대한 이야기다. 체중이 500kg이 훨씬 넘게 나가는 거구의 말인데 뚝섬 경마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다 보니 ‘차돌’이는 경주를 뛸 때마다 오른쪽으로(내측으로) 심하게 기대는 버릇(악벽)이 있었다. 말의 능력은 있는데 덩치가 큰 것이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대니 다른 말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밖으로 당기면서 ‘차돌’에 기승하곤 했다. 내측으로 기대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오른쪽 뺨에 자극을 주는 장구를 씌우고는 경주를 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았다. 어떠한 노력에도 버릇을 고칠 수는 없었는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사 오고서 경주 방향이 바뀌니 어느 쪽으로도 전혀 기대지 않는 것이다! 방향이 바뀌니 그저 오직 “앞으로 앞으로” 똑바로만 달리는 것이었다. 필자는 인생을 살면서 행운이 많이 따르는 편인데, 그 당시 필자에게 경주로 방향이 바뀌어 대박의 행운이 온 것이다. 그러니 ‘차돌’의 성적이 어떻게 되었을까? 한쪽으로 기대는 악벽이 있으면서도 능력을 발휘하던 말인데 악벽이 없어지니 당연히 성적은 일취월장 좋아져서 그 해에 1등급 경주인 한국마사회장배 경마대회를 우승하고 89년 그랑프리에서는 부담중량 67kg을 얹고서도 당당히 우승하며 최고의 경주마로서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누리다 은퇴 하였다.
PS... 경주로를 보면 넓어서 경마팬들은 높낮이가 똑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높낮이의 차가 크다. 1코너부터 2코너는 코너를 도는 곡선부면서 오르막 경주로이며, 2코너를 지나면서 백스트레치는 약간 오르면서 평지, 그리고 약간 내리막길이다. 3코너부터 4코너를 돌면서는 내리막길로 가다가 4코너를 완전히 돌아서 홈스트레치 결승선까지 라스트 400m는 오르막경주로다. 그래서 기수들은 경주로의 상황을 활용하면서 힘의 안배를 적절히 해 경주를 펼친다.
작 성 자 : 홍대유 pinklady@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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