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암말들이 겨루는 제12회 스포츠조선배 경마대회. 게이트 문이 열리는 쾅소리와 함께 출전마 13두가 일제히 스타트했다. 실력이 엇비슷해서인지 모두가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말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가 싶은데 순간 ‘샤즈’의 강경식 기수가 오른손 채찍을 강하게 때리며 선행에 나선다. ‘샤즈’의 선행을 모니터를 통해서 지켜보던 일부 기수들은 ‘샤즈`가 선행을 하면 우승을 할 수도 있다고 깜짝 평을 한다. 그동안 ‘샤즈’의 경주모습을 보아왔던 기수들은 ‘샤즈’가 선행에 나서면 좋은 성적을 내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즈’가 선행을 받아 3코너에 진입하려 할 무렵, 5위권에서 편안히 자리를 잘 잡아가던 ‘화주’의 방춘식 기수가 말에 끌리는 듯한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는가 싶더니 ‘화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선두권으로 나서고 있다. 기수들은 “어어.. 화주가 끌리네!”하는데,  역시 화주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면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기수의 입장에서는 최상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샤즈’보다 반 마신 정도 앞서 나가며 4코너를 돌고서는 라스트에서 ‘샤즈’보다 조금 앞서고 있다. 앞서가던 ‘샤즈’가 뒤로 쳐졌기에 “‘샤즈’는 다 갔구나!” 하고 이젠 어떤 말이 들어올까 하는데 ‘샤즈’가 다시 선두로 치고 나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샤즈’와 같은 레이스를  펼친 말이 지는 것이 보통인데, 관람대 앞에서 "샤즈"가 다시 나서며 강경식 기수의 불꽃튀는 채찍에 힘입어서 결승선을 먼저 골인했던 것이다. 강 기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환호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샤즈’의 우승은 강 기수를 스타로 만드는데 손색이 없었을 정도로 멋진 승리였다. 한창 기승술이 무르익는 강경식 기수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강경식 기수.. 축하해!”

우리의 경마사에 있어서 스포츠조선배 경마대회는 항상 많은 화제를 뿌렸으며, 한국 경마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로가 대단히 크다. 경마장이 뚝섬에서 과천으로 이전한 다음해인 1990년 3월21일에 스포츠조선 언론사는 제1회 스포츠조선배 경마대회를 열면서 그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이벤트 행사를 처음으로 시도하여 경마대회를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었다. 경마대회 사상 처음으로 고적대(염광여상 고적대)를 초빙하여 퍼레이드 행사를 하게 했다. 어두운 분위기의 경마장을 축제 분위기로 고조시켜 경마팬들의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경마팬에게 경품권을 추첨하여 관심을 끌었는데, 스포츠조선은 창간일인 3월 21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총 321명에게 경품권 당첨의 행운을 선사했다. 1등상에는 프라이드를 내걸었으며(추첨결과 미혼의 아가씨가 당첨됐다) 이날 경품권 추첨을 하기 위해 인기 탤런트 최명길씨가 참석했다(작년에 김한길 장관의 부인이 되어 문광부 장관배 경마대회 때 경마장을 찾은 최명길씨는 10년 전에 경마장에 왔을 때는 경마장이 어두웠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며 그 당시를 회상했고 필자와 많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날 이벤트도 멋있었지만 경주 내용 또한 박진감 넘친 화려한 경주였다.

특히 그 날은 경마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국산마가 출전했기 때문이다. 국산마로서는 처음으로 ‘원당1호’가 경마대회에 출전했는데 그 당시 국산마의 수준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국산마의 경마대회 출전은 우리 경마인 모두를 흥분 시켰으며 경마사에 기록될만한 사건이었다. ‘원당1호’는 국내산 마필 생산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던 원당 종마목장의 첫 번째 자마였기에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애지중지하며 보살핀 국산마 ‘원당1호’가 경마대회에 출전하니 전체 경마인들은 흥분과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것이 아니라 능력도 어느 정도 있었기에 우승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로암’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등에 만족해야만 했다. 김창옥 기수가 기승한 ‘실로암’이 우승을 차지했다. 김창옥 기수는 이날 우승한 이후 스포츠조선배 경마대회를 3번이나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한해에 많은 경마대회가 있어도 한번 우승하기가 힘든 마당에, 스포츠조선배라는 특정 경마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

스포츠조선배 경마대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고홍석 기수에 관한 사연이다. 고홍석 기수는 ‘비야사’를 타고 처음으로 경마대회 우승을 차지했는데, 관람대 앞에서 말을 타고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말이 흥분하고 까불어서 관리사들이 말을 놓치는 웃지 못할 사고가 발생했다. 관리사를 넘어뜨린 ‘비야사’는 고홍석 기수를 태운 채 사진을 찍지 않고 냅다 달려가는 것이다. 고홍석 기수는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우승 트로피를 손에 들고 말 위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말이 관리사를 넘어뜨리고 달리니, 고홍석 기수의 한 손에는 트로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고삐를 잡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기실의 다른 기수들은 모니터를 보면서 “트로피를 버리고 말을 제어해야지 뭐하나?” 이런 걱정도 하면서 한편으론 트로피가 부서질까봐 그랬나 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그때 왜 트로피를 던지지 않았냐?”고 물으니 트로피를 던졌는데 트로피가 고삐에 엉켜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로피가 엉켜 있는 바람에 말이 더 흥분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트로피도 던지지 못하고 말에 이끌려 1000m 발주지점까지 가서야 말이 멈추어 섰는데, 고홍석 기수는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고홍석 기수는 경마대회를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이런 해프닝이 생기는 바람에 우승 기념 사진도 찍지 못했고, 그 해프닝으로 인해 우승을 하고서도 기념 사진이 없는 유일한 기록의 사나이로 남게 됐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도 고홍석 기수가 하루 빨리 경마대회 우승을 해야만 하는데, 고홍석 기수의 우승을 축원해 본다.
“고홍석 기수.. 파이팅!”
“고 감사.. 파이팅”(고홍석 기수는 현 기수협회 감사임)



작 성 자 : 홍대유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