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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퇴역 후 승용마가 되기 위해 길들여지면서 경주마가 갖고 있는 조급함과 질주 본능을 버려야 했다. 기수가 아닌 일반 승마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2의 마생(馬生)을 시작한 것이다. 갈채는 담대하고 느긋해졌다. 일반인을 태우고 초지로 나갈 때면 항상 선두에서 겁 많은 말들을 이끌었다. 또한 ‘착하면 고생한다’라는 옛 속담과 같이 녀석은 순하고 착한 일마였다.
연민도 잠시, 나는 숨이 겨우 붙어있는 갈채를 보고 밤사이 만일 녀석이 죽는다면 사체를 어떻게 처리 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포동이가 내 마음을 눈치챈 듯 슬픈 소리를 하며 혀로 말을 핥는다. 작별인사를 나누듯이. 나의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담배 한 대를 물고 말과 개의 시선을 외면했다. 사람이란 동물이 갖고 있는 이기심이 부끄러워졌다.
헐떡거리는 갈채를 바라보는 동안 오래전부터 말을 키워왔던 선배 마부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와 곡주를 나눌 때였다. 그는 호기스럽게 “죽어가는 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 사실 말(馬)에 대해 잘 모르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뭔데요?” 라며 건성으로 물었고 그는 감춰둔 비밀이라도 풀어놓듯이 뜸을 들이더니 “대화를 하는 거야. 귀에 대고 조곤조곤하게”라고 했다. 그의 경험이 헛소리였어도 이제 갈채를 살리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갈채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프냐? 갈채야! 먹이 좀 조심 하지 그랬어? 너무 욕심을 내서 그렇잖아”라며 힘 빠진 갈채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갈채야~! 일어나. 내일 나랑 초지에 나가자. 어서 일어나 봐” 각설탕 하나를 입으로 밀어 넣어주며 마음을 담아 속삭였다. 누워 있던 녀석이 긴 숨을 몰아쉬는가 싶더니 힘없는 앞굽으로 모래흙을 파헤쳤다. 그리고 큰 눈망울로 남산만큼 부어오른 자신의 옆구리와 나를 번갈아 보며 통증을 호소한다.
나는 계속 “자! 일어나. 갈채야, 뛰어 봐! 똥을 싸면 살 수 있어”라며 다시 목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포동아! 넌 갈채가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갈채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 500kg이 넘는 큰 몸집을 몇 차례 뒤척이다 ‘힝~잉’ 큰 울음소리를 내며 겨우 일어섰다. 정신이 없는지 휘청거리고 있을 때다. 포동이가 갈채의 꼬리를 꽉 물고 짖어댄다. 그제야 갈채가 크게 움직이며 뒷발질을 해댔다. “어서 빨리 뛰어”라고 포동이가 짖었고, “알았어!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야”라며 갈채는 짜증을 부리는 듯 했다.
갈채와 포동이 그리고 내가 마음으로 나눈 대화가 통했는지 갈채가 한참을 뛰더니 시원하게 방귀를 뀌었다. 독한 가스가 마장 안 운동장에 가득했다. 잠시 후 ‘우지직’하며 한 양동이가 가득 넘치도록 설사를 했다. 녀석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갈채야~! 잘 했어. 이젠 됐어”라며 녀석을 위로하고 숙소로 돌아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끼리도 나누지 못하는 대화를 갈채와 포동이는 서로 입을 맞대고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끝>
최기영 한국마상무예훈련원·주몽승마장 대표.
교정·교열=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