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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같이 생활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2013년 4월 어느 날. 일과를 마치고 뉴스를 보며 잠시 낮 동안의 피로를 풀고 있을 때다. 포동이(犬)가 문 앞에서 컹컹거렸다. 말이 고리쇠를 열고 나와 건초를 훔쳐 먹을 때면 매번 쫓아와 고자질을 하는 녀석이다. 스스로 부잣집 마름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말과 개 모두 사람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데 개의 본능인가 싶었다.
방문을 열고 “놀아줄까?”라며 장난을 걸었다. 녀석은 나의 손장난을 피하며 마구간을 향해 짖는다. “야 포동아. 말들이 너 미워하겠다. 입으로 어렵게 문을 열고 나왔는데 사료를 한입이라도 먹게 해야지. 그러다 왕따 당한다!”라며 녀석의 태도를 무시했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들은 척도 안하고 마방을 향해 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동물들과 같이 살며 갖게 된 그들과의 교감으로 ‘마방에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마방으로 들어서며 백열등 스위치를 올렸다. 바쁜 걸음으로 걷던 포동이가 갈채(馬)방 앞에 멈춰 나에게 빨리 오라는 듯 짖었다. 내가 들어서자 갈채는 기력을 완전히 놓아버린 채 네 발을 쭉 뻗고 누워있었다.
복부는 이스트 먹은 밀가루 반죽마냥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어 있었고, 온 몸이 배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바닥에 비벼댄 상처자국이었다. 멀건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배가 많이 아파요’라고 호소하듯 자신의 복부를 쳐다보았다. 산통이었다. 말(馬)이 갖고 있는 질병 중 가장 치명적인 배앓이다. 말(語) 못하는 짐승의 고통을 생각하니 몹시 안타까웠다.
지금 즉시 응급치료를 하지 못한다면 승마장에서 제일 착한 말 한 마리를 잃게 된다. 수의사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나는 급하게 약통에서 소화기 전문치료약을 찾아 주사기에 담았다. 빠른 회복을 위해 혈관 주사를 놓으려 했으나 대통처럼 큰 혈관을 찾을 수가 없다. 우선 장(腸) 운동을 시키기 위해 주둥이를 열어 대나무를 송곳모양으로 깎은 대침(大針)으로 심줄을 터트려 피를 뽑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복부를 만지작거리며 마사지를 해주니 겨우 혈관이 솟아올랐다.
주사를 놓고 약기운이 퍼지길 기다린 후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주사약 탓인지 처음 몇 걸음은 평상시처럼 걸었다. 하지만 안도 할 틈도 없이 녀석이 다시 맥없이 자빠졌다. 약효가 다 한 모양이다. 말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으면 꼬인 장이 굳어 숨이 멈추게 된다. 나는 채찍을 들어 누운 갈채의 엉덩이를 반복해서 후려쳤다. 녀석이 힘들게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있던 포동이 역시 초조했는지 말꼬리에 붙어 멍멍 짖으며 쫓는다.
그렇게 10분 정도 원형마장을 뛰게 했는데도 꼬인 장이 풀어졌다는 신호가 없다. ‘뽕~웅’ 하는 방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나와 포동이의 간절함 대신 녀석은 힘이 다되었다는 듯 ‘힝~!’ 하는 신음과 함께 푹 쓰러졌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최기영 한국마상무예훈련원·주몽승마장 대표.
교정·교열=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