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나의 20여년을 되돌리며…
경마장! 경마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경마와 관계되는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경마를 즐기는 팬들 중 대부분이 경마장과 어떤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경마와 관계를 맺기보다는 친구 따라, 회사 동료 따라, 아니면 매스컴을 보고서 아주 우연히 경마장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현역 기수들 대부분도 경마장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 기수가 된 것이 아니고 매스컴이나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키도 작고 하니 어울릴 것 같아서 생판 모르는 경마장을 찾아와 기수가 되었다. 대부분의 기수가 아주 우연한 기회로 인생의 향로가 바뀌고 결정지어졌다. 기수들이 어떤 인연으로 기수가 되었는지를 언젠가 알아보니 재미있는 사연들도 많았다.
신문을 보고서 기수라는 직업을 택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주위에서 키도 작으니 한번 해보라는 권유에 기수를 택한 경우다. 부산 조교사로 간 최기홍은 고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가 농민신문을 보고는 무작정 올라와서 기수가 되었고, 최봉주는 바닥에 신문을 깔아 놓고 밥을 먹다가 바닥에 깔려 있는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는 대학도 때려치우고 기수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친구가 기수 시험을 본다고 하여 따라 다니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오히려 자신이 붙어서 지금껏 기수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나도 기수가 된 것이 어찌 보면 친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뚝섬에 있던 덕수상고를 다니는 친구가 하루는 돈 많이 버는 기수가 되겠다고 경마장에 갔다 오더니 자기는 키가 커서 안되니 나보고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경마장이 무엇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서 체중미달로 군대 면제를 받다보니 친구의 생각이 나서 경마장에 가보고 기수들이 말 타는 모습이 너무나 멋있기에 기수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1984년 11기로 마사회 기수양성소에 입소를 한 것이다. 1년 간의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기수면허를 취득하고는 기수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6개월 보수교육을 받은 후 그 해 10월에 기수로 정식 데뷔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경마장에서의 생활이 어언 20여 년이나 되었다. 그 20여 년이란 세월 속에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끼면서 기수라는 직업을 유지하여 오고 있다.
20여 년의 세월 속에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기수가 되고서 기수를 하다가 수많은 기수들이 전과자가 되어 경마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마사회에서는 수많은 기수를 양성해 놓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기수가 부정으로 기수복을 벗어야만 했다. 대부분의 기수가 옷을 벗었다는 것은 기수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경마전반에 문제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20여 년을 경마장에서 기수로 존재하면서 나는 나의 머릿속에 가장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인가 컴 앞에 앉아서 나열하여 보니 참으로 많은 사연·사건이 떠오른다.
85년 4월 1일부로 기수면허를 받았기에 기수들과 똑 같이 숙소에서 생활하였다. 기수후보생 시절은 양성소에 있었기에 선배 기수들에게 구타를 당하거나 얼차례를 받는 경우는 없었는데 막상 기수가 되니 선배들로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구타와 군대식 줄빠다를 맞는 행사를 치러야 했다.
85년 기수가 되고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그 해 6월에 있은 “경마장 협박 편지사건”이다. 이 어이없는 사건으로 그 당시 최고의 기수 두 명이 경마장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내가 기수로 데뷔하기 전날의 사고인 고 서대원 기수의 경주중 순직…
우리 11기가 비록 6개월 간의 교육을 받는 기간이기는 하지만 처음 겪는 경마장을 폭파하겠다는 협박편지는 섬뜩하였다. 협박 편지의 내용은 6월 16일, 제7경주에 5-7번 순으로 들어와 배당은 30배 이상을 만들라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관람대를 폭파시키겠다는 것이었다.
6월 16일 경마 날 아침은 밝았다. 여기저기서 뒤숭숭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을까 모두가 비상 속에 시간이 흐르며…


작 성 자 : 홍대유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