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전화로 주문 받아 마권을 대신 구매해주는 마권구매대행업체가 실제로는 마권을 구매도 하지 않고 수수료와 구매대금을 고스란히 챙겨 사직당국에 적발되는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 중에는 지난 8개월 동안 회원 9천 여 명을 관리하며 무려 33억 원을 챙긴 곳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기고 있다. 전국적으로 성업중인 구매대행업체만도 1백 여 곳인데 그렇다면 매 경마일 당 발생하는 사설 마권구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아도 족히 1백억 원은 된다는 계산이다. 이는 현재 서울경마장 일 평균 매출액의 20%를 상회하는 수치다. 지난해 4월에도 인터넷 구매대행업체 중 4곳이 중간에서 구매대금을 착복한 혐의로 적발된 사례가 있다.

구매대행업은 지난 2002년 10월 처음 등장해 2003년엔 50여 개 업체로 확산되는 듯 하다 현재는 1백여 개 업체로 크게 늘었다.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뜻이다.

이들 업체 중에는 정상적으로 구매 대행을 해주고 정당하게 수수료를 받는 곳도 있지만 일부는 이처럼 중간에 구매금을 고스란히 착복하는 곳도 있어 큰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업체가 어딘지, 법적으로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어 더 답답한 노릇이다.

실제 주문한대로 마권을 구매했는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점과 현행 구매한도액 10만 원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액수를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사행심을 극대화한다는 점, 그리고 과다한 수수료로 이용객들의 피해를 부추긴다는 점이 구매대행업의 대표적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고액 적중의 경우 환급 받지 못하는 사고도 발생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제대로 된 관련 법규가 없어 이용자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세금 누수도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부득이한 사정으로 직접 마권구매가 어려운 사람이나 손쉽게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를 대신해 정상 구매를 하고 그 수수료만 받는 업체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현행 환급률 체계에서 5%에 달하는 대행 수수료는 너무 과도하다. 한 두 번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누적되는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는 의미다.

경마공원 본장만 해도 이러한 구매대행업, 혹은 사설경마가 얼마나 성업 중인지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전화로 한 경주에 1백만 원, 2백만 원씩 베팅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구매대행업체나 사설경마 이용자들이다. 경마장에 나와 뭐하러 수수료까지 내가며 대행업을 이용하겠는가.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마사회의 불편한 제도와 부자연스러운 규제 때문이다. 베팅하는 입장에서는 더 쉽고 편하게 마권을 살 수 있는 방법, 더 많은 환급금을 돌려주는 쪽을 택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처음 구매대행업이 등장했을 때 마사회는 유사마권발매행위라고 규정했었다. 그리고 제재를 가하려 했지만 정작 관련법은 없고 현행 마사회법으로는 금지시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경륜공단도 마찬가지여서 국민체육진흥공단은 마침내 경륜경정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오는 7월부터 구매대행업을 원천 봉쇄할 방침이라고 한다.  

한국마사회도 사직당국의 적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마사회법 개정을 추진하는 게 옳다.  또한 고액베팅자를 자꾸 밖으로 내몰 게 아니라 좀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손쉽게 경마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마사회가 직접 서비스 개선에 탄력을 붙여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경마 매출액이 줄기 시작한 시점은 2002년 9월 이후다. 사설경마가 급격히 증가하고 구매대행업이 본격화된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 이는 경기악화, 경쟁산업 등장 등 보이는 적 뿐만아니라 사설경마를 비롯한 보이지 않는 적과도 마사회가 싸워나가야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경마시행의 의의는 발생하는 수익금을 통해 마사 진흥과 축산발전에 기여하고 사회공익을 극대화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공익에 쓰여야 하는 수익금이 자꾸 누수돼 특정 개인의 이익으로 변질되고 지하경제를 키우는데 일조한다면 이는 경마가 사행산업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경마실황중계를 녹화로 바꾸고 경주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수고를 하는 것 보다 환급률을 높이고 인터넷·모바일베팅제 시행을 앞당기는 등 건설적인 대처 방안을 내놓는 게 훨씬 이롭지 않겠는가.



작 성 자 : 이희경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