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면 프로답게…
경마장엔 선수들이 많다. 전문가, 즉 프로(professional)들이 넘쳐난다는 소리다.
매 경주 출마표만 보고 경주 결과를 예측하는 예상가, 말을 만드는 관리사, 직접 경주를 치르는 기수, 이를 지휘 감독하는 조교사, 경주를 감시하는 재결위원, 적절한 부담중량을 매겨 경주의 재미를 높이는 핸디캐퍼 등 이들은 모두 전문가다.
이런 전문가에 의해 팬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예상가가 엉터리 예상을 한다면?
관리사가 훈련을 제대로 안 시켰다면?
기수가 경주에서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면?
조교사가 엉뚱한 작전을 지시했다면?
재결위원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면?
이 모든 상황은 경주결과로 직결되며 그에 따라 팬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다.
야구경기에선 투수가 실투를 했다한들, 타자가 적시타를 치지 못했다한들, 팬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는 있을지 몰라도 물질적 피해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경마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기자의 주변엔 정말 노력하고 연구하는 전문가가 많다.
새벽훈련에 철저하고 스스로의 체력관리를 위해 시간을 쪼개 쓰는 기수도 있고, 정해진 퇴근 시간 없이 마방에 붙어 살다시피하는 조교사, 관리사도 있다. 자신의 업무와는 무관한 일인데도 경주마 혈통을 연구하고 생산시스템의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등 불필요한 수고를 마다않는 시행체 직원도 있다. 새벽훈련을 관찰하고 동영상이나 비디오로 지난 경주를 기억하며 출전예정마를 미리 뽑아 경주계획에 맞게 차주엔 편성이 어떻게 될 것인지 혹은 부담중량 산출방식에 따라 핸디캡은 어느정도나 되는지 산출하고 정리하는 예상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마에 대한 열정과 프로의식이다. 생계가 달린 직업이고 프로라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에 반해 프로답지 않은 전문가도 있다. 문제는 극히 소수라하더라도 이들 때문에 다수의 경마팬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선 이 말을 하고 저기선 딴 말을 하는 예상가나 잠잠할 만 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부정 사건, 그리고 기수들의 엉뚱한 제재가 그 좋은 예다.
‘유리한 진로 양보’란 실로 기발한 제재 사유다. 편안하게 갈 수도 있는 것을 고의로, 혹은 실수로 어렵게 갔다는 뜻인가. ‘양보’라는 표현이 참 기가 막히다.
가끔 볼 수 있는 경주전개부적절이라는 제재 사유도 전후가 어땠든 경주 중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기수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기수 기용이나 작전권이 전적으로 조교사에게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기수에게 모든 탓을 돌릴 순 없는 게 또 현실이다. 기수만의 독단적 제스쳐는 아니라는 뜻이다.
씁쓸한 일은 또 있었다. 기수 면허를 반납한 이상두 기수가 관리사 전직도 못 해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경마관계자들은 소속조 조교사나 기수협회의 무성의를 탓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큰 과실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의 한복판에 자신이 있다는 걸 인식했다면 진작에 좀더 스스로에게 엄격한 채찍질을 가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굴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최선을 다 했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마에서 관리사의 역할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관리사 계층의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해 선진경마연수를 다녀온 관리사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든 경마계층이 각각의 전문성을 확보해 놓고 그 영역을 존중하는 그들의 경마 시스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진짜 프로가 되고 싶어했다.
정찬근 조교사가 39년 경마장 생활을 마치고 은퇴했다. 본인은 아쉬움이 컸겠지만 관리사로 시작해 조교사까지 올라 그 흔한 부정에 한 번 휘말리지 않고 떳떳하게 은퇴하는 모습이 기자가 보기엔 아름다웠다.
시인 이형기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 경마장의 그 수많은 전문가들의 뒷모습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