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똑바로 차립시다

2004년 경마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모두가 그렇겠지만 마지막 경마일을 준비하는 마사회, 조교사, 기수, 관리사들도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겠다.
연말연시의 흥청거림에 들떠 마음이 저도 모르게 앞서 갈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사고다. 긴장의 끈을 늦추는 동안 여기저기 산적한 문제는 두더지 머리 디밀 듯 그렇게 올라오는 것이기에.
지난주가 그랬다.
경마시작 전부터 감사원 감사다, 차명마주다, 모 조교사의 부정 자수다 이래저래 어수선하더니 그예 한 기수의 방심패, 인정하기 싫은 그랑프리 결과, 순위변경 논란 등이 가세하며 난장판이 돼버렸다.
KRA 홈페이지는 이날 접속건수 폭주로 서버가 과부하 돼 다운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니 팬들의 분노가 어디까지 달했는지 짐작케한다. 본사로도 이에 대한 취재요청이 빗발쳐 모른 척 있을 수만도 없겠다.

먼저 ‘밸류플레이’건에 대해….
현장에서 그의 넉넉한 우승장면을 목격하며 지난 1년 간의 행보가 새삼 떠올라 분개했던 건 기자만의 감성은 아니었을 터. 그의 경주력을 탓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앞날이 창창한 한 신인기수에게 면허정지 6개월이란 철퇴를 가했던 말이기에 박수치고 함께 기뻐해 줄 수 없었을 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 제도를 이용하겠다’고 한 박대흥 조교사의 심리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모든 마방의 모든 경주마가 매 경주 ‘가게끔’ 만들지 못하는 경마제도의 맹점 때문이며, 부당한 핸디캡에 끊임없이 저항(?)했던 그의 초지일관적 태도에 일정부분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밸류플레이’의 이번 우승을 두고 마냥 감상적으로 “우승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게 기자의 속내이기도 하다. 다만 말(馬)을 만들어내는 데 특별한 능력을 지닌 박대흥 조교사가 앞으론 이런 극단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길, 그래서 경마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서는 팬들의 등을 앞장서 떠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요일 마지막 경주, 위풍당당하게 순위변경을 결정한 재결에 대해…
실상 기자가 보기엔 이번 건도 그렇지만 얼마전 이금주 기수의 ‘북산’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판정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결의 판정을 존중한다. 그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인정한다. 더욱이 이날 경주는 피해 기수와 피해마가 명백히 드러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을 졌어야했고, 그 당사자로 방춘식 기수를 지목했다는 것에 개인적으론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재결의 이런 판정에 대해 팬들이 수긍하지 않고 사사건건 항의하고 불만을 제기한다는 것에 대해선 재결 스스로의 반성이 따라야 하는 대목이다. 또한 엄격한 재결의 원칙이 때론 경마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수홍 기수와 ‘터프엔젤’에 대해…
이 부분은 일체의 변명의 여지가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혹자가 이해한다 해도 박수홍 기수 본인은 이제부터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져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의 방심으로 10억 원 가까운 돈이 휴지로 돌변했다. 그는, 기수는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쯤으로 봐줄 수 있는 아마추어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유사 케이스와 달리 ‘박수홍의 이번 일’에 팬들이 더 흥분하는 이유도 가슴 깊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올해 어떤 일들이 있었나… 각 부문 결산은 어떤가… 기사 준비를 하며 곱씹어 보니 아무래도 경마매출이나 입장인원 같은 외형지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또 다시 1조 이상 떨어진 매출 장부를 빤히 보며 모두가 어렵다는데 왜 경마만 이 모양이냐며 닦달할 수도 없는 처지건만, 매주 경마가 끝난 뒤 돌아가는 팬들의 입에서 ‘다시 오지 않겠다’는 자괴감이 흘러나올 때면 어찌해볼 도리 없이 안타깝다.
경마로 인해 한(恨)이 생겨나지 않도록, 이들이 혐오감 속에 경마장을 떠나가지 않도록 우리 모두 2005년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