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내라 국산마!

2월부터 기존의 외산·국산 군체계 대신 혼합군이 신설, 운영된다. 또 그동안 국산마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국산 경주의 상금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했던 것을 이제 국산마와 외산마 간 동일한 수준으로 맞춘다고 하니 KRA의 정책이 미묘한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는 동일하게 지급됐던 도입장려금마저 외산마는 두 당 최대 6백만 원까지 지원하는데 반해 국산마는 1백만 원으로 대폭 삭감해 마주들의 국산마 구매력이 자칫 감소되지나 않을지 국산마 생산 관계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물론 국산군도 5군에서 6군으로 확대 운영돼 그들의 영역은 지켜내고 있지만 국산마와 외산마 간 혼합경주 시행이 공식화된 만큼 국산마로선 출전기회가 늘어난다는 작은 이익 뒤로 그 기회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여건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는 셈이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too short, not enough’다.
지난 연말 그랑프리를 보자. 날고 긴다는 외국산 능력마 틈바구니에서 국산마 지존이라 일컬어졌던 ‘고려방’이 고군분투했지만 최선 5위가 아니었던가. 몇 해전 그 대회에서 우승했던 ‘새강자’나 ‘즐거운파티’가 있었으나 당시 상대했던 외산마들은 가격이 고작 500∼600만 원에 불과한 저급한 수준이었으니 수천만원 짜리가 보편화 된 지금과는 감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더 극단적인 비교를 해보자면… 지난해 국산마 경매에서 최고가마 대열에 합류했던 모 국산마가 아직도 4군에서 헤매고 있는 반면, 5천만 원 남짓에 미국 킨랜드 경매에서 도입된 ‘밸류플레이’는 데뷔 첫 해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마필가는 외국산마를 그대로 좇으면서 능력은 실질적으로 같은 가격대의 외산마에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 경주마의 냉정한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KRA가 지금처럼 국산마 경주 영역을 확보해주거나, 국산 경주(경마대회) 상금을 더 높게 책정한다거나, 외산마 수입 가격 제한을 두는 등의 국산마 보호 정책을 펴지 않으면 여전히 국산마의 경쟁력은 제로에 가깝다는 뜻이다.
지난 십수년 간 국산마 생산 정책의 결실을 깎아 내리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국산마의 기(氣)를 꺾고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경주마 자급률이 80%를 상회하고 국산마가 외산마를 압도했다며 만족하기엔 그 내용이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는 냉정한 평가를 해 본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외산마 공급 부족 파동을 겪었던 KRA가 올해부터 국산마 우대정책을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대신 외산마(비록 암말이긴 하지만)와의 형평성을 맞추려는 변화를 모색하는 시점에서 국산마 생산 관계자는 바짝 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주 입장에선 동일한 상금을 따내기 위해 동일한 자금을 투자해야 한다면 국산마 보단 외국산마로의 투자가 훨씬 남는 장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도 않을 국산마 양산(量産) 때문에 그들을 위한 보호 정책을 펼 수만도 없다. 내 새끼 감기 걸릴라 꽁꽁 싸서 가두기만 하기보다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차라리 충분한 영양공급을 해주고, 대처능력을 알려주는 게 낫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비록 외산마 공급 부진과 경주마 수급 불균형, 이에 따른 경주편성의 문제점 때문이라고는 해도 KRA의 정책 변화는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무차별적으로 경쟁으로 내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우수 씨수말 도입, 훈련전문 트레이너 육성 및 지원 등을 통해 자생력을 키울 환경도 만들어 가고 있으니 마냥 비관할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몇 해 전 ‘코멘더블’이 미국 3관 경주 중 하나인 벨몬트 스테익스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2400m를 2분 31초대에 주파했던 그가 올 봄부터 국산마 생산에 투입된다. 미국에서 ‘코멘더블’ 보다 더 값비싼 종부료를 받고 있다는 씨수말도 함께 도입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군체계가 사라져 외산마와 국산마 간 단일경주시행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또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져야만 한다. 그 때가 언제가 될 지는 생산자와 마주, 그리고 KRA의 정책 담당자 손에 달렸다. 그리고 그 때는 한국경마가 선진화의 길목에 들어선 시점이 될 것이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