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영일 심판처장직무대행이 금번 KRA 정기인사에서 심판처장으로 승진 발령났다. 지난 1년 간 재결판정과 관련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조직 내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인정 받았다는 의미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석처장 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는 재결위원도 없었던 것 같다. 재결의 판정을 두고 특정 전문위원을 겨냥해 옳다 그르다 시비 걸었던 일이 요즘 말고 또 있었는가 싶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소리도 되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만큼 반감의 대상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년 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객관적 거리에서 그를 바라봐 온 기자로선 앞으로 거는 기대가 남다른 편이다.

경마의 공정성 확보, 그것은 우리 경마계, 우리 경마팬들에겐 언제나 화두다. 그런데도 수십년간 지속돼 온 부정의 관행 앞에 이젠 박제가 돼버린 그림의 떡이기도 하다.
‘누가 간대, 안 간대’를 논하는 팬들에게 이미 부정과 부조리는 낯설지 않은 일상이다. 특정인에게 정보를 주고 그 댓가로 금품과 향응 제공받았다는,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승부를 고의로 회피했다는 기수와 조교사의 얘기도 전혀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A기수가 부정으로 면허를 박탈당해도, B조교사가 검찰에 긴급구속돼도 ‘이번엔 누구?’ 이정도 반응이니 그 내성이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이 내성이란 것이 전체적인 경마의 흐름을 부정 쪽으로 몰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즉, 정상적인 경주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땐 ‘기수가 안 간 것’ 혹은 ‘조교사가 빼라고 지시한 것’ 쯤으로 치부하려는 팬들이 상당수라는 점, 이게 문제란 것이다.
지난주 입상에서 탈락한 몇몇 인기마, 열번 싸우면 열번 다 이길 상대 앞에 통렬히 패배했으니 팬들의 충격도 컸겠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격앙된 태도로 부정을 운운하며 비난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고의로 늦발한 것도 아닌데, 말 목이 돌아가라 잡아당기거나 결승선에서 일부러 채찍을 버린 것도 아닌데 팬들에겐 그 경주가 부정이고, 부조리였다.    
반대로, 입상권과는 무관한 말에 대해선 너그러이 아량을 베푸는 아이러니라니... 스타트부터 최하위에서 어영부영 경주를 마치는 경우, 그러다 그 다음 경주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엄청난 기록 단축까지 해가며 고배당을 터뜨리는 것에 대해선 얼마나 무덤덤한가 말이다.
상습적으로 늦출발을 일삼으며 마필의 능력을 은폐한다거나, 신마에 대한 습관적 승부회피 등이 능력부족보다 더 악질적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뻔히 눈 앞에서 벌어지는 부정에 대해선 관대해지는 그 내성, 그러면서 정작 최선을 다 하는 경주마와 기수의 모습은 제 눈으로 확인하고도 미흡한 결과를 인정치 않으며 비난을 일삼는 것은 결국 부정에 둔감해 하던 내성의 부작용이다. 부정과 내성, 반복되는 의심, 그리고 다시 부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이것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우리 경마문화도 영영 저급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지못해 일주일에 한번씩 새벽훈련을 보러가던 때가 있었다. 잠이 덜깬 얼굴로 뻘쭘히 조교관람대에 있다보면 양손에 쌍안경과 재결노트를 들고 말 한마리 한마리에 대해 일일이 메모하던 석처장을 볼 수 있었다. 지난번보다 상태가 나아졌는지, 어딘가 나빠진 부분은 없는지, 스스로 확인한 뒤 핸디캡을 매기려고 매일 새벽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훈련장을 찾는다 했다.
목장장, 경마팀장 등 낯선 직함을 달게 돼도 그는 항상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많이 알아 대단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건 석처장은 표가 날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경마시행의 가장 중요한 심판처라는 점에서, 남다른 기대도 가져보는 것이다.
사사로운 인정이나 주변의 굴절된 시선에서 자유롭길, 보던 곳만 보려는 외눈박이가 되지 않길, 차가운 이성만으로만 판단하길, 고집은 있되 괜한 편견과 선입견엔 갇히지 않길...주제 넘게 이런 바람과 주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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