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조교사협회 총회에서 “기승계약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뜬금없고 생뚱맞다. “기수들의 주 5일제 강행에 대한 보복조치냐, 경마의 질 향상을 위한 선진 제도 도입이냐” 협회 관계자에게 물었지만 그라고 속 시원히 집안 사정을 털어놓을 리 없다.
조교사협회가 “기승계약제 폐지”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건 다름 아닌 기수들에 대한 경고다. 근로자인 관리사들이 법에 준하는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자 사장 격인 기수들도 덩달아 근무 시간을 단축하겠다며 들고일어났다. 평소 조교사와 기수는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부르짖어왔던 당사자들이 ‘과다한 업무하중과 이에 따른 재해 빈발’을 이유로 스스로 근로자 신분에 걸 맞는 행동을 보이니 조교사들도 답답한 노릇이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경주마를 조교사에 일임한 마주 입장에서도 애가 타는 건 마찬가지다.
관리사 인력을 충원하든, 경마상금 인상으로 기수와 관리사들에게 늘어난 업무만큼 보상을 하든 마사회가 직접 나서라는 압박이었겠지만 중간에서 ‘등 터진 새우’ 꼴이 된 건 결국 조교사와 마주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조교사협회가 들고 나온 “기승계약제 폐지” 카드가 기수들에게 얼마나 먹힐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어수선함 속에서도 자유기승제의 장점부터 떠올린 건 분명 기자의 오버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기승계약제는 분명 문제가 있다.
전체 기수를 ‘n분의 1’化 해 골고루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하향평준화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기승계약제다.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기수들이 하나씩 소속조를 끼고서 일정 경주수를 보장받는, 혹 타조 기수가 원정 기승을 하게 돼 상금이라도 타게 되면 그 일정 비율을 나눠가질 수 있는 제도, 잘 타는 기수가 독점할까 기승횟수 자체를 제한토록 하는 환경(물론 올해부터 1일 기승횟수 제한은 폐지됐다), 이건 너무 평화롭고 공평하다. 어지간히 뒤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1년 내내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다가 면허갱신 기간만 되면 최저 기승횟수를 채울 심산인지 반짝 모습을 드러내는 기수도 없지 않다. 부상 등 별다른 일신상의 사유없이 최근 1년 간 기승횟수가 100전도 되지 않는다거나(100전이면 하루 1마리 정도 타는 셈인데...),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기수라면 자신의 위치를 냉정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관련 단체간 갈등 속에서 하나의 도구로 뜬금없이, 본질은 소외된 채 삐죽 얼굴을 들이민 기승계약제지만 재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
지난해 처음 주 40시간 근무제가 논의됐을 때 기수들의 근무시간은 터치할 필요도 간여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제가 탈 말 훈련도 직접 안 시킨다는 게 말이 되냐”는 조교사, 관리사들에게 그들은 철저히 경주성적으로만 모든 걸 말하는 것이라 했었다.
박태종 기수가 허구헌날 새벽훈련에 빠지든, 김효섭 기수가 개인 훈련 때문에 경주마 훈련을 포기하든, 한 마리라도 더 타기 위해 휴일도 없이 마방에 매어있든, 결과만 좋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경주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기수들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소리기도 하다.
상위 기수들의 상금을 나눠받으면 된다는 식이나, 말 타는 것 보다 병원에 누워있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기수는 경마의 꽃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 경마에서도 기수가 꽃인지는 의문이다.
최상위급 프로야구 선수들은 다년 계약으로 50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다. 계약금도 상위급과 하위급 간 천양지차다. 그런데 서울경마장 최고 기수는 대체 연봉이 얼만가. 5억원은 되나. 기승계약료를 차등지급한다는 소리도 여지껏 들어본 일이 없다. 1000승 기수나 10승 기수나 몸값이 똑같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왜 서울경마장에 스타가 없는지, 혹 기수집단 전체의 공산주의(共産主義), 집단의식이 스타 자질을 갖춘 일부 기수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작 성 자 : 이희경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