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정 회장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마사회장이 공석이 된지 보름 남짓 지나고 있다.
공모를 통해 후임 회장을 정한다는데 절차 상 두어 달은 족히 걸릴 듯 보인다.
또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이방인이 뚝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이런 마사회장이 왔으면 생각해본다.

경마에 대한 소박한 지식이 있었으면 한다.
소박이라 함은 있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의, 이를테면 ‘관심’을 말한다.
“경마장에 처음 와봤다”는 자랑 같지도 않은 자랑을 취임사에서 늘어놓는다든가, 경마란 베팅이 전부라 착각하는 경마문외한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마의 모든 원리를 꿰차고 있어야 하는 게 마사회장은 아니지만, 아는 것도 없으면서 관심도 없는 건 곤란하지 않겠나.
‘승유신화’의 59초를 보며 ‘신기록을 달성했군’ 기뻐할 줄 알았으면. ‘외산마 가격을 제한하면 경주질이 떨어진다’며 직원들을 가르치고 질책도 할 줄 알았으면.

현장감도 있었으면 한다.
회장실에 갇혀 상명하복에 길들여진다든지, 일방적인 보고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때론 관람대에서, 때론 넷상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 이제껏 본 일 없지만 바람은 가져본다.
경마팬의 투정과 불만 앞에 ‘또 시작이야’하며 지겨워하기 보다 ‘귀가 큰 KRA’라는 슬로건처럼 겸손해하는 마사회장이 됐으면 한다.

당당함과 솔직함도 최고 경영자의 자세다.
끊임없는 부정사건에 대해, 질 좋은 상품(경주)을 내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늘 미안해하는 마사회장이었으면 좋겠다.
찍어누르기만 하는 정부를 향해 배짱도 퉁겨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환급률이 왜 70% 밖에 안 되냐’며 생떼 쓰는 국감장의 의원들 앞에서 ‘당신들이 세법 고쳐주면 환급률도 오를 것’이라며 호통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자질이나 그릇보다 더 한 바람은 3년 임기를 꽉 채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정권에 휩쓸려 줏대도 없이 휩쓸려 버리는 자판기 커피 같은 인사는 제발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슬그머니 돌아선 전임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늘 그랬는데...’ 웅얼대는 마사회 직원들의 되뇌임 속엔 패배의식이 엿보인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CEO 브랜드라는 게 있다. CEO의 이미지, 파워가 기업에 대한 투자나 인재 확보, 경영 실적,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자 이를 활용한 기업들의 마케팅이 바로 그것이다.
CEO가 곧 기업이며, CEO의 말은 곧 기업의 목소리다.
연간 7조원의 매출을 올렸던 한국마사회에 진정한 CEO는, 또 CEO 브랜드라는 건 있었던 적이 있나.
지난 7년 여간 4명의 마사회장을 지켜본 기자의 소감으론 불행히도 CEO 자격을 제대로 갖춘 이는 없었다. 청렴하면 결단력이 부족했고, 원만하면 우유부단했다. 소신이 있으면 경마산업과 그 시스템에 대단히 무지했으며 무관심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번에야말로 경마산업을 위한 인사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외부의 비딱한 시선과 내부의 얽힌 실타래를 현명하게 해결할 랍비같은 존재라면 너무 거창한가.
현정권의 코드인사로 귀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억측이 되길 바라며 순진한 생각을 해보았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