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랑프리 인기투표도 국산마 초강세였다. ‘무패강자’‘고려방’‘새강자’가 나란히 1위∼3위를 차지했고 ‘기모아’마저 7위에 올랐으니 경마팬들의 ‘국산마 사랑’이 대단하다. 누가 우승할 것인가를 묻는 게 아니었으므로 이런 결정이 잘됐다, 못됐다 평가할 가치조차 없겠다. 그저 팬들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마사회가 객관적인 기준으로 40여 두에 이르는 후보를 선정했고 경마팬들이 직접 우열을 가려줬으니 이제 이 대로 경주가 짜여지는 것만 남았다.
사전에 출전대상마 관계자들에게 출전의사를 일일이 타진했다는 마사회 관계부서 직원들은 그러면서도 내심, 이들이 ‘상태가 안 좋아서’, ‘상대가 강해서’ 등등의 이유로 꼬리를 내릴까 우려하는 모양이지만 마방 지역에 취재 들어가는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예년과 달리 인기투표로 뽑힌 웬만한 마필들은 다 나올 것 같다고도 한다.
다행이다. 팬들의 의사를 존중해줘서, 그랑프리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줘서.

그럼에도 지금 ‘무패강자’의 조교사와 마주는 ‘고’할 것인가, ‘스톱’할 것인가 고민 중인가보다.
‘고려방’의 김점오 조교사 역시 지난주까지는 “반반 정도”라 했다.
이들의 고민과 걱정이 뭔지 알 것도 같다. 승산이 적은 대회에서 자칫 승기(勝氣)가 꺾일까, 어린 말이 전투에서 상할까 왜 걱정이 안 될까 싶다. 기자가 마주였대도, 조교사였대도 이리 쟤고 저리 붙여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 단계에선 팬들의 선택을 먼저 고려해주길 바란다. 그들이 왜 ‘무패강자’에게, ‘고려방’에게 표를 찍어줬는지…
꼭 우승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우승할 것이라 믿어서도 아니다.
누가 뭐래도 올 한 해 최고 스타는 ‘무패강자’가 아니었던가.
누가 뭐래도 국산마의 자존심은 ‘고려방’이 아니던가.
경마계 최대 잔치에서 이들이 비록 들러리에 그칠 지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명혈통의, 값비싼 고가의 외산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당함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지난 대통령배의 감동을 아직 많은 팬들은 기억하고 있다. 경주 전 그렇게 기대됐던 적도 처음이고, 경주결과가 그렇게 아쉬웠던 일도 처음이었다. 사심 없이 베팅을 해보고 싶을 만큼 감상적이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만일 다른 말들이 ‘무패강자’와 ‘고려방’의 잔치라며 등 돌렸다면 그 의미는 물론 가치도 크게 퇴색됐을 것이다. 승산이 적을 지라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이 뭉쳐져 멋진 드라마를 엮어내지 않았나.
이제 다음은 그랑프리다. 패배를 두려워하고 조역을 마다하는 ‘무패강자’와 ‘고려방’이라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기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비관적으로 몰아붙였지만 누가 또 아는가. 이들이 ‘언어카운티들리’같은 말을 꺾고 우승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 불확실성의 미학, 그게 바로 경마가 아니던가.

즐겨 보는 일간지의 한 기자는 블로그에서 “두꺼비(소주)는 서민의 친구”라 했다. 기자는 경마야말로 서민의 친구라 생각한다. 돈이 적으면 적은 만큼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주어지고, 사고는 모두에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반전을 준비하는 팬들에게 반란을 꿈꾸는 복병마는 항상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고려방’과 ‘무패강자’가 그랑프리에서 이런 반란을 꿈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그들의 조교사와 마주가 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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