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경마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인위적 경마중단 사태가 일어난 지 3주째에 접어들었다. 경마중단으로 인한 폭동과 거친 시위는 한국경마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했고 비록 우여곡절 끝에 1주일만에 재개되기는 했지만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관계자들의 우려도 따랐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경마공원을 찾는 경마팬들의 반응은 의외로 쉽게 예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하던 당시, 마사회가 관리사노조를 비롯한 유관단체에 임금 및 복지에서 ‘마사회와 동등한 수준’을 약속했던 제도전환합의서에서 비롯됐다.
제도전환합의서에 대한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일부 변호사와 법률 회사의 해석이 엇갈린다.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당사자 일방인 노조조기단지부의 실체가 없어져 효력없음’을 유권해석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원칙적으로 효력있음’으로 결론짓는 쪽도 있어 법정에 가야 올바른 유권해석이 내려질 듯하다. 어쨌든 마사회측에서는 뜨거운 감자로, 관리사노조측에서는 생존권 투쟁의 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문제의 제도전환합의서가 이번 사태를 마무리짓는 결정적 단서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경마중단이 선언된 후, 사태수습에 적극 나선 마사회와 관리사노조, 그리고 조교사협회는 장시간에 걸친 최종 교섭에서 마침내 제도전환합의서의 파기를 결정하고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냈다. 마사회로서는 앓던 이 뺀 심정이었을 반면, 조교사협회와 관리사노조는 생존권 사수를 위한 최후보루를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마사회도 반대급부로 경마발전 적립금 마련, 체불임금 지급, 손배소 고소 취하 등을 결정함으로써 상당부분 양보했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던 급박한 상황은 이렇듯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경마장 내부에서 꿈틀대고 있다. 취재한 바에 의하면 최종 교섭 결과를 두고 당사자인 조교사협회 혹은 관리사노조 내부에서는 불만의 소리를 내는 쪽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자신들의 생존권 사수에 중요한 열쇠로 작용했던 제도전환합의서를 집행부와 사용자측이 임의로 파기했다는 데 대한 불만이 있을 법도 하다.
만일 당시 조교사협회와 관리사노조가 제도전환합의서를 그대로 끌어안으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당시 교섭 당사자나 경마관계자 상당수가 경마의 장기적 중단을 예견한다. 실지로 경마중단후 최종 교섭에서 조차 이렇다할 진전기미가 없자 마사회는 경마의 잠정적 중단을 각 언론에 공표한 바 있어 이런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마 중단이 장기화 됐을 경우의 피해상황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방대하고 치명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무엇보다 경마산업 팽창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정부가 획일적인 구조조정 잣대에 의해 경마산업을 좌우, 지금보다 더 압박할 수 있어 한국경마의 미래는 그야말로 표류할 수도 있다라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그만큼 절박한 순간이었다는 의미다.
경마중단사태는 일단락됐다. 과정과 결과야 어찌됐든 이번 사태를 시금석으로 이제 각 경마산업 종사자들이 지혜를 모아 진일보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금 경마종사자들은 그 어느때보다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높고 큰 것을 바라며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 직면한 현실속에서 가장 바람직하고 발전적인 계획을 수립, 이행해나가야 하는게 옳다.
미봉책으로 그때그때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이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며 경마발전을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작 성 자 : 이희경 jso0106@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