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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으로 돌아가 1승부터 다시 시작한다”
― 데뷔후 5년만에 ‘청운봉’으로 대망의 1백승 거둬
1백승을 올린 후 다른 사람들 앞에선 오명섭 기수의 얼굴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신인기수라는 마음가짐으로 첫 승부터 다시 한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는 그의 말은 그의 마음속에선 벌써 다음 목표로의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1백승에 대해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하겠지라는 것이 처음의 느낌이었죠”라고 말하는 그도 한동안 아홉수 징크스를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99승을 거두고난 뒤부터 경주에 출전할 때마다 ‘1백승 도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 1백승을 하느냐고 질문을 하는 통에 서서히 몸이 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경주에서 실수(조급한 마음에 고삐를 놓치기도 하고, 채찍을 뽑아들다 고삐와 엉키는 일까지 일어난 것이다.)가 나오면서 ‘혹시 아홉수가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모두 지난 일이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새로운 세계로 한발 내딛은 상태로 더 넓고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는 17기 동기생중 선두 주자로 일컬어진다. 지난 96년 7월 첫 승을 올린 뒤 98년에는 마카오 국제 수습기수 초청경주에서 비인기마를 타고 우승,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고 97년에 이어 98에도 연거푸 30승 고지를 밟았다.
선배기수들조차 한해 30승이면 호성적을 올렸다고 평가하는 만큼 그의 도약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한 도약은 매사 적극적인 그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더욱더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견되며, 모두 그를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이 그에게 닥쳐왔다.
98년 12월, 음주운전으로 1년간의 면허정지라는 치명적인 처분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칫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던 1년의 시간을 피나는 노력으로 훌륭하게 메꾸었다.
은밀하게 제주도로 향한 것이다. 경주마 생산과 육성이 활발한 제주의 한 목장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한편 경주마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생활은 그에게 경마장을 떠나있으면서 공백기간 중에 생길 수 있는 기승감각의 상실을 커버할 수 있게끔 해주었고, 이후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경마팬들 앞에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픔을 겪고 돌아온 오명섭 기수는 한층 차분하고도 화려한 기승술을 자랑하며, 지난해 9월 ‘그로브레이디’로 일간스포츠배를 석권, 생애 첫 경마대회 정복을 일궈냈다.
오기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두 얼굴이 존재한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동안(童顔)에 다른 사람을 잘 챙기는 정감있는 모습이지만, 경주에 나서면 철저한 승부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오기수의 적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의 적극성을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바로 국제수습기수 초청경주에 한국대표로 출전했을 때의 일이다. 마카오와 한국경마는 그다지 교류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마필을 훈련해 볼 수 있는 다른 나라 대표와 달리 한국 기수들은 한정된 두수의 마필에 기승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는 함께간 마사회 직원을 닥달(?)해 몸이 파김치가 될 정도로 훈련을 하면서 현지 마필에 대한 적응력을 키웠다. 그 덕분인지 오기수는 볼(Bowl)경주에서 비인기마를 끌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올리며, 당당히 한국기수의 위상을 세계에 선보이고 돌아왔다.
온실에서 자란 화련한 꽃보다 덜 화려하지만 비바람을 맞으며 들에 핀 꽃이 더욱 진한 향기를 간직한다. 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시련과 행운들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오명섭 기수에게도 그런 크고 작은 시련과 행운의 시간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갖춘 그는 앞으로의 모든 것을 발판으로 삼아 도약을 할 것이다.
이제 경주로에서 최선을 다하며 경마팬에게 보답하는 것이 오명섭 기수의 몫이고, 그런 그에게 격려와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경마팬의 몫일 것이다.
1백승 돌파를 축하하며…
‘오명섭’.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기수양성소를 막 수료할 무렵이던 96년 초여름이었다. 당시 경마공원의 작은거인으로 불리던 故 이준희 기수(16기)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때다.
16기와 양성소에서 1년을 같이 보냈던 17기 후보생들은 마치 가족을 잃은 듯 슬픔을 드러냈고, 몸을 돌보지 않고 장례를 치러냈다.
오기수에 대한 강한 인식이 남은 것은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기수들과 화장터를 다녀오면서다. 짧은 머리에 강단있어 보이는 그가 내뱉은 오열은 선배기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심금을 흔들어 놓았다.
두 번째로 인식된 그의 모습은 비상하는 매의 모습이었다. 97년부터 2년연속 30승을 넘긴 그는 동기생은 물론 무서운 신세대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매사에 자신있어 보이는 모습, 모든 일에 적극적인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Y세대 이미지에 꼭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99년 제주도로 경매를 취재하러간 곳에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음주운전이라는 실수로 1년의 기수 면허정지를 받은 그가 제주도에 있던 것이다.
검게 탄 얼굴로 경매장에 나타난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날개가 꺾여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비상을 위해 몸을 추스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결국 그는 한층 성숙된 모습으로 자신이 서야할 자리로 돌아왔고, 경마팬들 또한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늦었다고도 할 수 있는 오명섭 기수의 1백승 달성을 축하하며, 그의 말대로 기수로 데뷔하던 그 당시의 마음가짐으로 임해주길 기대한다.
【권순옥 기자 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