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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명마들과 함께 했던 생활... ‘새강자’ 단연 으뜸
-기수, 조교사로 말과 함께 50년, “끝까지 말과 함께 하겠다.”
-박원선 조교사가 지난 2일(일) 6백승을 돌파했다. 서울 경마공원의 ‘맏형’ 박원선 조교사. 10대의 어린 소년시절 경마장에 들어와 어느새 머리엔 백설(白雪)이 그득하지만, 그의 손을 거쳐간 숱한 명마와 명기수,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명승부는 그의 존재를 증거해주고 있다. 6백승이 ‘경마장의 거목’에겐 어떤 의미일까?
-“일단 기록을 달성했다는 점이 기쁘다.”
그가 말하는 6백승 달성의 소감이다. 조교사의 6백승 달성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에 비한다면 정말이지 짤막하고 멋없는 소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6백승이라는 기록이 85년 이후의 집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짤막한 소감이 이해가 간다. 85년 이전, 그가 조교사로 일했던 20년 정도 세월동안의 기록되지 않은 승수까지 더한다면... ‘2천승이 넘을 것이다’, ‘3천승은 족히 될 것이다’ 말만 오갈 뿐이다. 정확한 승수, 아니 어림잡아 어느 정도의 승수를 기록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상상을 하지 말라”는 충고로 대답을 대신했다. 상상을 불허할 만큼 많은 승리를 경험한 그이기에 6백승쯤에는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청(深靑)의 대해(大海)에 아무리 물을 부은들, 그 농담(濃淡)에 변화가 있겠는가!
6백승을 앞두고 한동안 그는 슬럼프(?)에 빠졌었다. 어떤 이들은 아홉수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의 컨디션이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법.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으로선 그저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주위의 얘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때를 기다릴 뿐... 이제 그 때가 왔고, 서서히 소속 마필들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 그를 더 기쁘게 한다.
-명마 중의 명마 ‘새강자’
54년 기수로 데뷔하면서 경마장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10년 정도 말몰이를 하고, 곧바로 조교사로 데뷔한다. 10대에 기수, 20대에 조교사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스스로도 “정말 모든 게 빨랐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겐 많은 행운이 따랐다. 조교사 생활 동안 ‘명마가 끊이지 않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숱한 명마들과 고락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가장 큰 운이었다. 아직도 뚝섬시절 최고의 명마로 기억되는 ‘차돌’, 그가 가장 능력이 좋았던 말로 꼽는 ‘두발로’, 아시아 경마대회를 제패했던 ‘성수호’. 일부에서는 그가 명마를 만난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명마로 거듭 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이런 명마들과의 인연은 곧 그의 능력과 노력의 증거인 것이다.
이런 숱한 명마들 가운데서도 그가 단연 최고로 꼽는 말은 ‘새강자’. 승률이나 경마대회 7관왕 등 경주로에서의 성적뿐만 아니라 항상 정량만 먹고 스스로 훈련 강도를 조절할 정도로 영리하고, 한 번도 성질부리는 것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온순해 그에게는 정말 특별한 말로 기억된다. 최근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새강자’에 대해 그는 ‘예전만 못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매번 이기기만 하던 말이 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허전하고 허탈하기까지 하다고...
경마장에서 그의 손을 거친 것이 비단 명마들 뿐은 아니다. 현역 조교사 중에서도 상당수가 기수나 관리사 시절, 그에게 한 수 지도를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 조교사협회(舊조기협회)를 30년 동안이나 이끌었던 카리스마 또한 한결같이 최고를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다.
-반(半)세기 말과 함께 한 장인(匠人)... ‘마주돼서 말과 함께 있고 싶다.’
내년이면 정년을 맞는 그는 “남은 인생도 말과 함께 살겠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그의 바램이야 남은 시간도 지금처럼 하루종일 말과 함께 마방에서 생활하고 싶겠지만 때가 되면 후배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는 법, 그는 마주가 돼 말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어떤 형태가 됐든 무슨 모습을 하고 있든, 그가 말과 함께 남은 인생을 할거라는 것은 그의 확고한 의지만큼이나 확실해 보인다. 그는 여지껏 자신의 인생에서 말(馬)을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10년여의 기수생활, 40년 가까운 조교사생활, 반(半)세기를 말과 함께 한 이 백발의 신사에게선 장인(匠人)의 숨결이 느껴진다.
【권현 기자 knhn@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