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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민기수 박태종 풀스토리
박태종 기수
-본지 선정 10월 월간MVP 수상, 올해 들어서만 4번째
-8백승 위업도 꺽지 못한 상승세... 거칠 것 없이 달린다.
-‘1천승이 목표는 아니다’... 체력 닿는 한 계속 달릴터

-8백승 달성으로 한국경마에 금자탑을 세운 박태종 기수. 한 숨 돌릴 만도 한데 그의 상승세는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본지 선정 10월 월간MVP를 수상하며 두 달 연속, 올해 들어서만 4번 월간MVP에 선정, 최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8백승을 넘어 달리는 그의 기세는 그래서 신선하기까지 하다. 새로운 목표가 보이기 때문일까? 누구도 상상 못했던 꿈의 1천승 달성. 하지만 그에게 1천승은 결코 목표가 아니다. 과정일 뿐이다.

-어린 시절 유일한 탈선, 올챙이와 자전거
충북 진천 태생인 그는 2살 때 부모를 따라 상경했다. 방화동에서 터를 잡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유년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요즘도 새벽훈련을 거르지 않기로 유명한 그지만 그 시절 그는 개근상을 타지 못했다. 이유는 올챙이 때문. 올챙이 잡는 재미에 쏙 빠져있던 그는 올챙이 잡느라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다. 별반 쓸모 없는 올챙이, 그는 그저 잡는 재미가 쏠쏠했었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말썽 많은(?) 유년시절을 보내고 다시 5학년 때 고향으로 돌아온다. 올챙이를 같이 잡던 친구를 잃은 그는 이후로 학교와 집만 오가는 모범생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고... 어쨌든, 그런 그가 사춘기의 오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전거 사건. 중학생이던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4km 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할머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했던 그가 벌인 시위는 다름 아닌 헛간에서 하루종일 숨어있기. 집안은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그가 없어졌다며 난리가 났고 그는 저녁 늦게 유유히 헛간을 나와 다음날 원하던 자전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재수해서 들어간 기수양성소... 잊지 못할 우리동기 13기.
고교 졸업 후 다시 부모를 따라 상경한 그는 중장비 학원에 다니며, 공사현장에서 포크레인 기사 조수로 일했다. 그러다 이모부와 함께 식료품, 야채 배달을 했고, 마사회 마포지점에 배달을 나갔던 이모부가 기수모집 광고를 보고 그에게 기수해 볼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응시한 12기 기수시험. 그는 면접에서 낙방하고 만다. 경마가 무엇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레저스포츠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 면접 얼마 전에 경마장에서 본 문구를 그대로 말했던 건데, 그의 말을 들은 면접관들은 웃음만 지을 뿐... 그가 생각하는 낙방의 원인이 이것이다. 국민기수를 면접에서 낙방시킨 진실은 당시 면접관들만 알 것이다. 어쨌든 한 번의 미역국을 마시고 그는 13기로 기수양성소에 입소한다. 13기는 과천벌에서도 그야말로 ‘황금기수’로 통하는 기수. 30명이 입소, 현재도 14명이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양성소 시절 30명의 후보생들은 안장도 스폰지도 없이 말을 타는 일명 ‘알말’을 타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몸에 기승리듬, 감각을 익히기 위한 이 훈련은 하지만 엉덩이가 까질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다. 참다 못한 후보생들은 꾀를 내 생리대를 착용(?)하고 기승했다. 헌데 문제는... 생리대를 착용하고 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편한 나머지 ‘알말’을 타는 후보생들의 표정이 너무나 평화로워(?) 그만 교관들이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날 밤 기수양성소에는 후보생들의 비명소리가 밤늦도록 계속됐다나...

-김효섭 기수와의 양강시대... 라이벌 이전에 애틋한 동기.
그가 처음부터 최고의 기수였던 것은 아니다. 양성소 시절에는 12기로 입사했다가 부상으로 도중하차했던 임대규 기수와 관리사 출신 김재섭 기수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데뷔 후에는 김혜성 기수가 이름 그대로 ‘혜성’과 같이 빛났다. 그가 첫 승을 올린 것은 데뷔 16전 만이었다. 당시 어느 한 선배가 그에게 와서 그렇게 말을 많이 타면서도 왜 이기지를 못하냐고 구박했을 정도. 헌데 농담 섞인 선배의 이 한마디가 그의 투지에 불을 질렀다. 그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고 결국 오늘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80년대 후반 그가 막 데뷔했을 무렵에는 김명국(현 42조 조교사), 김문갑(현 53조 조교사), 김종온(92년 부상 은퇴) 기수의 이른바 ‘3金의 트로이카’ 시대였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과천으로 살림을 옮기고 나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가 이런 괄목할 만한 성적상승의 이유로 첫 손 꼽는 이유는 주로 방향의 변경. 시계방향으로 도는 뚝섬시절과 달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과천의 주로가 그에게는 매우 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한국경마가 뚝섬시대에서 과천시대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기수판도도 3金 트로이카에서 그와 김효섭 기수의 양강체제로 변화됐다. 김효섭 기수는 동기이면서 아직도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라이벌인 셈. 김 기수가 경주로를 떠나면서 팬들은 유일하게 그와 대적할만한 기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이젠 그가 한결 편하게 말을 타게 됐다고들 얘기했다. 하지만 라이벌이 없어진 그는 그렇게 편치 않았다. 더구나 김 기수는 라이벌 이전에 그와 고락을 같이한 동기였다. 그는 김 기수가 경주로를 떠난 것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사람 중 하나다. 같이 기수생활을 하는 사람이 안 보여도 마음이 아픈데, 하물며 동기였는데 오죽했겠는가. 더구나 라이벌로 서로에게 채찍질을 해주던 사이였는데... 그는 아쉬움을 넘어 허전한 마음을 느꼈다.

-영원한 동반자와의 만남
부인 이은주씨와 처음 만난 것은 97년 10월이었다. 부인은 승마교관 출신으로 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지식도 대단했지만 경마에는 문외한이었다. 당연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말과 관련된 일을 한다는 점에만 호감이 있었을 뿐. 하지만 그는 달랐다. 비록 일요일 경마가 끝나고 가진 만남이라 운동복에 운동화 차림이었지만 첫 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그래서 서먹한 첫 만남에도 불구, 당시 강원도 목장에서 일하던 그녀를 강원도 양구 산골까지 바래다주었다. 강원도 산골 목장에 국민기수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훗날 우연찮게 나간 동호회 모임에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같았다. 마치 그를 무슨 神이라도 되는 듯 떠받들었다. 그녀가 기분이 나쁠 정도로... 말(馬) 얘기로 서로 가까워진 두 사람은 결국 98년 4월 웨딩마치를 울린다. 결혼 전, 기수는 대부분 결혼 후에 성적이 떨어진다는 한 선배의 말은 그녀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의 적극적인 내조는 그러한 선입견에 대한 일종의 반사작용인 셈이다. 처음 그저 말 타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점차 사양관리, 수의학 등 전문적인 분야로 관심을 확대했다. 기수의 아내가 된 이후로는 경마공부에도 몰두, 지금은 국민기수를 가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게 그녀는 이론적인 조언자일 뿐 아니라, 혹독한 코치이기도 하다. 자세를 교정해주고, 같이 동영상을 보며 연구도 하고, 간혹 훈련하기 싫어하는 그를 다잡는 것도 그녀다. 그의 성공비결 중 중요한 하나가 바로 그녀의 이런 내조다.

-최고임에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은 그의 천성이다. 하지만 그의 성실성은 26조에서 데뷔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김방호 조교사가 그에게 철저한 자기관리와 근면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 새벽훈련에 10분만 늦어도, 오후 놀이운동을 빼먹어도 호된 꾸지람을 받았다. 꼬마시절 이런 가르침은 지금도 그에게 큰 교훈으로 남아있다.
박태종 기수가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몽키스타일 자세도 배움의 결과. 96년 일본 중앙경마장에서 말을 탔을 때, 상대적으로 등자를 짧게 밟는(짧게 밟을수록 말에게 부담을 덜 주게 된다.) 일본 기수들을 따라하려고 시작했던 것이 지금 누구나가 칭찬하는 그의 기승자세가 시작된 계기다. 일본 기수에 뒤지지 않으려고 출국 전 부지런히 기수양성소를 들락거리면 연습했던 것이 갔다와서도 습관이 된 것이다. 그는 요즘도 모형기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집에서도 기수회관에서도... 최고임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골프, 수영, 스키... 취미가 운동이다. 무엇보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체력의 원천이다. 매일 8시 30분 취침시간은 그의 절제 있고 엄격한 생활태도를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사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동딸 수정(3)이와 생이별 해 기수협회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자신의 생활리듬을 깨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야간경마는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 자야할 시간에 말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모임이 있어도 시간이 되면 아무도 그를 잡지 않을 정도로 그의 규칙적인 생활습관은 정평이 나 있다.
95년 ARC 대회 참가를 위해 인도에 갔을 때다. 출전을 위해 대기실에서 복장을 챙기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 한 분이 걸어들어 왔다. 그는 청소부거나 관리인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천천히 기수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영국에서 온 예순이 다 된 현역기수였다. 그는 예순이 다 된 기수와 한 경주에서 레이스를 펼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기수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할아버지 기수를 보면서 더욱 굳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많은 기수로 활동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후배들이 하나 둘 조교사가 되면 기수생활 하기가 거북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저런 어려움을 마음에 두고 그것 때문에 주저했다면, 애초에 기수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결코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박태종 기수. 몸이 허락하는 한 그 노력을 그치지 않겠다는 그에게 1천승은 결코 목표가 아니었다. 그가 달리는 길에 놓여진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출 판 일 : 2001.11.11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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