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같은 근면성실함으로 … !!

어느덧 서울경마장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18기 기수들. 화려한 플레이와 예기치 못한 입상으로 경마팬을 웃고 울린다. 경마대회 등 굵직한 경주에 강한 박을운, 안정적인 인코스 플레이를 펼치며 초고액배당을 곧잘 터트리는 함완식,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며 34조의 주전 자리를 확보한 강태현, 그리고 기복없는 문정균… 이들 18기 4인방은 데뷔 1년 8개월만에 40승 고지를 넘나들며 수습해지의 첫 테잎을 누가 끊느냐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들의 선의의 대결 중 1라운드는 일단 문정균 기수의 완승으로 매듭지어졌다.
화려한 동기들의 스타일에 비해 ‘있는 듯 없는 듯’ 차곡차곡 승수를 쌓았던 문정균 기수는 지난주 일요일 ‘기원’으로 마침내 41승째를 기록, 거추장스런 감량딱지를 털어냈다.
“튀지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게 신조”라는 충청도 남자 문정균, 그의 평범함을 엿보자.

“동기들이 워낙 잘 해서요… 그냥 중간에 묻혀 너무 처지지만 않았으면 했는데…”
특유의 우직하고 느릿한 말투로 정식 기수가 된 소감을 밝히는 문정균(27세) 기수다. 좋은 일이 있어도 내색 않는 그가 모처럼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감량이점이 사라지게 돼 걱정”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문정균 기수는 매사가 조심스럽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며 생각이 깊은 기수 가운데 하나다.
자신은 “주변머리가 없는 소심한 성격”이라지만 “사려깊고 신중한 편”이라는 게 그에 대한 주위의 일반적 평가다.
데뷔 초기, 문정균 기수는 그저 그런 기수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경마팬들에게 그리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겁없는 레이스를 펼치며 뜻밖의 입상을 낚아채 펑펑 고액배당을 터트리곤 하는 게 신인기수들의 매력이라 할 수 있지만 48조의 ‘코디와이어밍’으로 첫 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그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경마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후보생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전 별로 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조급해하지 않고 좀 느긋한 편이지요”
하지만 데뷔후 동기들이 속속 입상 문턱을 넘을 때면 제아무리 느긋한 그일지라도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단다. 뒤늦게 기수의 길로 접어든 만큼 뭔가 보여야 할 것이라는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고라는 주위의 찬사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하는 박태종 기수를 보며 문정균은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박태종 선배를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제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박태종 선배는 배울 게 너무 많은 분이에요. 언제나 한발 앞서 준비하는 자세라든지, 경마장 밖에서의 생활태도라든지, 여러모로 말이에요”
가끔 경마팬들은 박태종 기수와 문정균 기수가 같은 경주에 출전하면 둘을 비교하며 흥미진진한 레이스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곤 한다. 선배에게 지지않으려는 신예기수의 오기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선배를 의식하며 경주에 임하지는 않는데… 어휴, 저는 그런 비교만으로도 영광이지요” 그다운 대답이다.
가까스로 첫 승 고지를 점령한 후 문정균은 ‘킹화이터’,‘쥬디’등과 만나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자세로 승수를 모아갔다. 몰아치기는 드문 편이지만 특유의 꾸준함은 여타 기수들을 압도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복없는 플레이가 최대 장점인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지난 해 6월 무렵, 거푸 기승정지를 당하며 2개월 가까이 쉬어야 했을 땐, 정말 말타기가 싫었다고 털어놓는다. 탱크처럼 묵직하게 질주하는 그라도 지칠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때는 솔직히 말의 습성도 잘 모르는 채 경주에 임했어요. 갑작스럽게 사행하면 스스로도 어쩔줄 모르고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곤 했지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은 좋은 약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지나온 길보다 더 숱한 날들을 경주속에서 보낼 그는 어쩌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수로서 더욱 성숙해 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톡톡튀는 n세대, 18기 기수 가운데 문정균은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 우리나이로 벌써 스물여덟이다. “어디 참한 여자 없나요?”라며 쑥스럽게 웃는 모습마저도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새끼 호랑이 문정균이 한 5년쯤 후 ‘제2의 박태종’이 되어 펄펄 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