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백승이에요. 이래서 언제 5백승 하겠어요”
늙은 신인이 느끼는 2백승에 대한 고백이다. 경주로를 떠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11기 동기생들은 고참이 되어 있었고, 다시 복귀한 그는 기수생활을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참으로 대우를 받고 있는 그에게 2백승은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벌써 잘 나가는 후배들은 5백승을 넘어서고 있는데…
99년 10월 7년이라는 공백기를 넘어 기수로 복귀한 윤기정 기수는 ‘돌아온 탕아’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과연 성공적인 복귀를 할 수 있는가 관심이 모아졌다. 8개월 여에 걸친 그의 성적표는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 만 하다. 비록 복귀후 17승에 불과하지만 7년이란 공백기를 생각한다면, 빠른 적응을 보인 것이다.
윤기정 기수가 기수로 데뷔하고 중간에 방향전환을 하는데는 아버님의 영향이 컸다고 얘기한다. 청주에서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를 다니던 당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축산진흥책이 펼쳐져 너나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축산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윤기수의 아버님은 너무나 좋은 조건에서 오히려 앞날의 어두운 전망을 예견하시고, 축산의 꿈을 접을 것을 권유했다. 졸업이 임박했을 때 그의 시선을 잡은 것이 바로 기수모집 공고. 체격조건도 맞았고 특히 태권도를 3년 이상 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 그에게 기수모집 공고는 새로운 길에 대한 밝은 빛을 던져 주었다.
85년 데뷔후 92년 스스로 경주로를 떠날 때까지 1천4백19전 1백83승 2위 1백72회의 성적을 거두었다. 아주 특출난 성적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승부욕 넘치는 기수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과천 서울경마공원으로 이전을 하면서 2년여동안 거의 기승을 하지 않다가 91년 정상적인 기승을 하고 성적도 올렸지만 92년 경마장이 전 국민의 질타대상이 되면서 집안의 강압으로 인해 기수의 길을 포기하게 됐다.
고향인 청주로 내려간 그는 가업인 인쇄업에 열중, 3년여의 고생 끝에 확고한 기반을 잡았다. 그러나 안정이란 단어는 오히려 중도하차한 기수생활을 떠올리게 했고, 99년 마사회의 기회제공으로 그는 서슴지 않고 다시 한번 기수생활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월 복귀 이후 그를 바라보는 경마팬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인기마필에 기승해 실망을 시키는 경우가 적고, 부진마에 기승해서도 기대이상의 성적을 올리기 때문. 그래서 마필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줄 아는 기수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경마전문가들의 성공적인 재기라는 말에 아직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자신의 모습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주로에 복귀하면서 1년 간은 옛감각을 찾는데 주력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좋아지기 때문에 조만간 확실히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 충청도 출신답게(?) 털털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강한 승부욕과 꼼꼼함을 발견할 수 있다. 성적에는 얽매이지 않는다고 밝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이기겠다는 각오로 가족과 생이별을 마다 않고 기수숙소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그다.  일에 대한 욕심 또한 남다르다. 새벽 훈련을 끝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에게 맡긴 가업을 챙기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만만찮다.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어요” 실질적으로 경주성적에서 경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주마의 사양관리와 훈련이 90%를 차지한다면서 결국 좋은 말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고, 마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수의 능력이란다.  
경마팬들에게 그가 당부하는 것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수들을 봐달라는 것. 인기마가 입상탈락시 경마팬들의 실망도 크겠지만 인기마에 기승한 기수들은 그 못지 않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노력하고 연구하는 사람만이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는 윤기수는 팬들의 기대에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언제나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고 자신있게 얘기한다.
시련이 있는 자만이 진실된 성공의 기쁨을 안다고 했다. 한 때 기수의 생활을 접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했지만 결국 기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경주로에 나선 윤기정 기수. 그의 기수 삶은 이제부터다.
【권순옥 차장대우 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