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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했던 기수생활
키 155cm에 몸무게 49kg. 체중조절이 필요 없는 특이 체질에 강한 승부욕. 타고난 기수였던 김종온은 1983년 4월. 데뷔일 두 번째 경주만에 첫 승을 올리며 현역시절 내내, 리딩자키 김명국 기수와 치열한 라이벌 경쟁을 펼친다. 1992년 11월 7일. 뜻하지 않은 낙마사고로 조기 은퇴 할 때까지 그의 기수 생활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86년 정신적 스승인 김승일 조교사(2000년 작고)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경주로를 주름잡기 시작한 김종온. 김명국 기수가 다승과 승률에서 앞섰다면, 김종온 기수는 상금 수득 면에서 돋보였다. 87, 89, 90년 종합 상금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상금수득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오죽하면 그가 출전만 하면 상금이 절로 굴러 들어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1991년 5월 26일 제10회 무궁화배 경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다음 경주인 제10경주에서도 선두로 골인, 5분만에 1천 31만 2천원의 상금을 획득한 것은 당시에 큰 화제거리였다.
상금에 특히 강했던 김종온 기수. 그는 그 이유를 항상 말을 믿고 말을 무리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그는 뛰어난 명마를 타지는 않았지만, 어떤 말이든 능력에 관계없이 그가 타는 말은 항상 최상의 상태였고, 운이 좋아 큰 대회에서 우승을 몇 번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때 얻은 별명이 ‘경주로의 여우’. 하지만 그는 세간에 떠도는 말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주위에서 그를 ‘경주로의 여우’라고 부르는 것도, 그와 김명국 기수가 라이벌이라고 떠드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김명국 기수는 승부욕이 강했고 배울점이 많았던 선배였으며, 단지 그와 김명국 기수는 자기자신의 스타일에만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기수였다고 기억한다.
젊고 유능한 기수로 많은 기대를 모으던 92년 11월 7일 토요경마 제11경주. 14두의 경주마가 출전한 1900m 경주. 출발후 170m지점에서 인마가 전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는 순위변경제도가 없어 경주마간 경쟁이 아주 치열했었다. 그 치열한 경쟁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고 말았다.
- 좌절...그리고 방황.
10년간 384승. 화려했던 기수 생활 뒤에 찾아온 것은 기수시절 그가 바래왔던 조교사 자리도, 라이벌 김명국 기수가 얻은 영예기수라는 명예도 아니었다. 하반신 불수라는 1급 장애의 멍에였다.
사고 후에도 거의 1년 동안 그는 재활의지에 불탔었다. 못 일어난다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이유는 오로지 말이 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사고로 사망한 기수는 있었어도 저처럼 불구가 된 기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치면 죽지 않는 한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개인마주제로 전환되면 말타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말을 워낙 좋아했고, 기수라는 직업이 적성과 체질에 꼭 맞아 기수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말을 타며 말과 함께 하는 것을 꿈꿔왔던 그였기에 그만큼 좌절은 컸고, 방황은 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은 꿈속에서도 말이 보이는데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꿈을 잃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고, 사회와의 접촉이 제한된 기수생활을 접고, 그것도 정상의 몸이 아닌 장애인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거의 5년. 이제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대로 그도 무던하게 모든 것을 받아드린다고 한다. 물론 과거의 강한 승부근성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지만...
술만 마시면 쑤셔오는 무릎 때문에 좋아하는 술도 끊고 아직도 검사를 받으러 병원문을 드나들어야 할 정도로 그날의 충격은 그의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요”
그는 지금 한국마사회와 기수협회의 배려로 한국마사회 숭인지점(신설동 소재)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경마일마다 지점에 나오지만 항상 밖에서 일희일비하는 경마팬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휠체어를 끌고 복잡한 실내를 다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를 볼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기수시절 친했던 후배에게는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요즘 후배들이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일찍 구축하는 것은 좋지만 대신 남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해 보이는 게 아쉽다는 그는 자기도 후배인 박태종 기수처럼 열심히 말을 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남겼을 거라며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노력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경주마의 두수를 늘리고 수준을 향상시켜 경주 박진감을 높이는 것이 한국 경마 발전의 최우선 과제이지만, 그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경마가 너무 폐쇄적이라는 점. 90년 말레이시아를 찾았을 때, 해당 경주의 출전 기수를 제외한 나머지 기수들과 마주들이 자유롭게 베팅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는 그는 지금 당장 외국과 같은 수준으로 개방을 해도 큰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에도 그의 경주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승 기술 때문에 여러 전문지와 출판사에서 예상과 출판 의뢰가 있었지만, 그는 그런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노하우를 남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
말을 너무 좋아해서 아직도 말을 보면 타고 싶고, 가능하다면 직접 말을 사서 키워보고 싶다는 김종온. 기수 시절 사람들에게 너무 들볶여 괴로웠지만 정작 은퇴하고 나니 친구가 없다는 그는 요새 컴퓨터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92년 주행시험만 남겨놨던 운전면허를 낙마사고 이후 94년 불편한 몸으로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 따냈던 그였다. 현역 시절, 그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하루에도 몇 번씩 간이 콩알만해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추입의 대가였던 김종온. 지금 그는 하위권에서 종반 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경주로가 아닌 그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화려한 추입을 기대해본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