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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선배, 팬들에게 걱정 끼쳐 죄송한 마음...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것”
-뜻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고삐를 놓았던 이종섭 기수(18기)가 5개월만에 경주로에 돌아왔다. 지난주부터 훈련에 합류했고, 이번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기승했다. 이종섭 기수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타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사람들 모두가 착하지만은 않다.
이 기수의 실수라면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 아직 나이도 어리고 대인관계에 많은 제약을 받는 기수생활을 하다보니 낯선 사람의 호의를 그는 그저 고맙게만 받아들였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초. 그가 중고차를 구입하려고 했을 때다. 매매업자가 한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군 입대 문제로 고민하던 당시 그는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고 허리가 좋지 않아 재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개받은 그 사람은 그에게 재검과 진단에 필요한 제반사항들... 행정적인 문제서부터 병원비까지도 충실하게 도와줬다. 특별히 의논할 상대도 없었고, 월급을 부모님이 관리하는 터라 경제적인 도움도 그에게는 반가웠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수록 한편으로는 “어떤 대가를 원하지는 않을지...”하는 불안한 마음이 싹텄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요구가 있었고, 그는 근 4개월 동안이나 시달려야 했다. 돈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향응 제공을 원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단지 군대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받았던 친절 때문에 원하지 않는 길로 빠져드는 것 같아 맘이 불편했다. 집요한 요구를 교묘히 피해가다 결국 그는 마사회에 자수를 했고, 다행히 마사회는 그의 정상을 참작했다. 수원지검에서의 수사까지 마무리 돼, 이제는 그를 둘러싼 그림자가 모두 걷혔다. 자수하고서도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그는 이제 죄값을 치르고 기수생활에만 전념할 수 있게됐다며 후련해했다. 현재 그는 재검을 거쳐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아 놓은 상태. 생각해보면 순리에 맡겼어도 됐을 문제였다
-아직도 자라는 키 이제는 170cm... ‘훈련으로 극복한다’
그가 군 문제와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큰 키 때문이다. 평소에도 체중조절로 고생했던 그에게 2년여의 군생활은 자칫 기수로서의 운명이 결단날 수 있는 커다란 문제였다. 그도 만약에 키가 작았거나, 기수가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격려와 이해를 보냈던 것도 이런 사정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여느 기수들처럼 작은 키로 인해 기수생활을 결심했었다. 학교 게시판에 걸린 기수 모집공고를 처음 봤던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키는 151cm. ‘키가 너무 작아서 안되나’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졸업 후 기수시험에 응시했을 때는 166.5cm. 그런데 키가 점차 자라 지금은 170cm로 기수 중 최장신 축에 낀다. 키로 인한 가장 큰 핸디캡은 체중조절. 그는 매일 새벽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는 땀복을 입고 경주로를 달린다. 이런 노력과 훈련이 계속된다면 체중조절은 핸디캡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키가 커, 덩치 큰 말을 제어할 때는 한결 수월하다고 한다.
-다시 잡은 기회, ‘절대 놓치지 않겠다’
지난주부터 훈련에 복귀한 그는 이미 경주로에 복귀했다. 5개월만에 처음 타보는 말이었다. 쉬는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았다. 말을 타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새삼 느꼈다. 그동안 부상으로 한 달 정도 입원한 것이 두 번. 복귀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의 동기들은 이미 경주로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수습해제를 달성한 동기도 많고 그중에는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는 동기도 있다. 그에게는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샘도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도 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기수생활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서슴없이 ‘0점’이라고 대답한다. ‘0점’의미는 성적에 대한 실망일 수 있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으리라... 그는 조바심 내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구체적으로 몇 승을 하겠다느니, 경마대회나 특별경주에서 우승하겠다느니 하는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그저 한 경주, 한 경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공기(空氣)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듯, 자신이 하는 일에도 때때로 염증과 후회를 늘어놓기 일쑤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은 그것을 놓쳐본 사람에게는 절실하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따뜻한 격려보다는 차가운 비난이 많은 기수라는 직업. 한 번의 실수는 그에게 말타는 즐거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다. 사람으로 치면 ‘제2의 생명’을 다시 얻은 셈. 죽다 살아난 사람이 삶에 애착을 갖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듯, 그도 기수로서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각오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