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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신임 조교사, 박희철
‘건강한 병아리가 되겠다’
나름대로 준비는 많이 했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마방대부를 받게 되자 박희철 조교사는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심정을 절실히 느껴야 했다.
한 마리의 말이라도 있다면 마방 업무를 시작할 수 있기에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다짐만을 새겼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던가. 그의 마방대부가 지척에 이르면서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고, 결국 이번에 정년퇴직을 한 최고의 원로 박원선 조교사가 관리해오던 말을 무려 14두나 맡게 되었다. 예전 선배들이 1∼2마리를 관리하며 수년에 걸쳐 고생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도움을 준 주위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새롭게 마방을 대부받고 마필부족으로 고생을 하던 이전의 신임조교사를 생각할 때 그는 무척이나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신의 역량이 모자라 선배 조교사에게 혹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신념에 가득찬 목소리로 “자신있다”고 외치는 그는 주위의 도움으로 시작부터 여건이 좋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병아리 조교사를 벗어날 수는 없다면서, 다만 건강한 병아리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각오를 되새긴다.
‘한라산에 오른 조랑말 사나이’
스스로도 경마장 생활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박희철 조교사는 어쩔 수 없이 말과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수의사이시던 아버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동물과 친해졌고, 대학시절 조랑말을 천연기념물로 만들기 위한 연구팀에 합류해 조랑말 이용용도에 대해 연구 조사를 하면서 본격적인 말사랑이 시작됐다.
조랑말의 끈기를 보여주기 위해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조랑말을 타고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다. 최초의 일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조랑말의 한라산 등정은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 푹 빠져들기 시작한 말이란 동물과 교감을 나누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탈바꿈 시켰다. 결국 82년 조랑말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의 말사랑을 아는 삼부목장의 신우경 사장의 권유로 서울경마장을 찾았으나 이미 26살이라는 나이로는 도저히 기수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말과 함께 생활하기 가장 좋은 곳이 경마장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86년 관리사로 입사를 하면서 경마장 생활이 시작됐다.
신명이 있는 마방
그에게 있어 34조(신우철 조교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집과도 같다. 90년도 조교보가 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한 34조는 그동안 4년연속 최우수마방, 상위권 유지 마방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해 왔다.
34조의 활약에 대해 그는 어느 개인이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말을 중심으로 조교사, 기수, 관리사 등 모든 사람들이 신명나게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조교사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말하며, 자신 또한 신우철 조교사로부터 배운 것이 너무 많다고 한다.
내성적이며 다소 배타적이라고 스스로의 성격을 얘기하는 박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정직하고 부지런히 새로운 마방을 만들 것을 약속한다.
생체리듬을 가지고 있는 말이란 동물을 관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말들을 관리하면서 의도한 바대로 말이 따라주었을 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희열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박희철 조교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헐크’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름과는 달리 390kg대의 왜소했던 ‘헐크’는 그러나 경주에서 직접적인 충돌만 피하면 적수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마필이었다. 그가 이 말을 좋아하게 된 것은 ‘헐크’가 경주중 잦은 충돌로 경주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사람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에게만은 믿음으로 대하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다. 그는 ‘헐크’를 보면서 신념을 가지고 대하면 말도 믿음에 보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년퇴직은 아름답다’
박희철 조교사가 조교사로서 생각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다름아닌 정년퇴직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너무나 소박한 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16년여의 경마장 생활을 하면서 본의아니게 정말 아까운 인재들이 채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경마장을 떠나는 슬픈 현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는 조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한다.
물론 그 속에는 정년퇴직이라는 것이 묵묵하게 한길만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 행복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비교적 편하게 시작하는 첫 출발에선 박 조교사는 이렇듯 좋은 여건에서 출발을 하게 도와준 주위사람들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각오 이상으로 열심히 해야겠다고 재차 다짐을 한다.
그리고 “박희철을 만나게 되는 마주, 기수, 경마팬 모든 사람에게 행운과 평화가 가득 충만되길 빕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에 성실과 노력을 배가시켜 실력으로 얘기하는 조교사가 되겠다고 한다.
【권순옥 기자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