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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한국마사회 입사 면접서 “가늘고 길게 살자” 좌우명 밝혀 폭소
사람이면서 하는 짓은 영락없는 팬더를 본 적이 있는가!
대나무를 좋아하고 때론 생배추와 무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하루에 스무시간씩 잠을 자야하는 팬더… 배추를 사기 위해 배춧잎으로 만원짜리를 뚝딱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입사한 한국마사회 막내 사원, 김원형(29세, 마사회 기획실 예산팀)씨가 황당무계한 개그 환타지 「둔갑팬더」를 출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희경 기자 eheek@krj.co.kr】
“쑥스럽고, 부끄럽고… 또 그러면서 뿌듯하죠!”
한국마사회 입사 1년차 김원형씨(필명은 김몽(金蒙))가 조금은 낯선 장르인 개그 환타지 「둔갑팬더」를 지난달 20일(일) 출간했다.
대학 때부터 수 년 간 컴퓨터 통신에 콩트를 연재했지만 장편은 처음이고 또 활자화되어 막상 책이 나오니 준비 작업기간 동안 겪은 어려움보다 심적 부담은 더 크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심심풀이로 해 본 건데, 처음 도전한 장편이라 그런지 부담은 꽤 큰 편이에요. 주변의 청소년들에게 건네 봤더니 다행스럽게도 반응은 좋았구요(웃음)”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하이텔에 연재한 콩트를 보고 도서출판 청어람의 마케팅 담당자가 출간 제의를 해왔던 것. 낯선 작업이 아니다 싶어 별 망설임도 없이 선뜻 응했고 마침내 2년여 준비 기간 끝에 산고의 고통을 끝내듯 「둔갑팬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사회 신입 사원으로, 또 가장 바쁜 부서 중 하나인 기획실 예산팀에서 업무 파악하느라 바빴을텐데, 도대체 언제 글을 쓸 시간이 다 있었을까. “주말도 휴일도 없었죠, 뭐.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머릿속에 세부적인 에피소드를 그리고 집에 와선 밤샘 작업하는 날도 많았어요. 업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고 회사에선 가급적이면 소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구요”
양서(良書)를 접할 때면 간접 경험으로 인한 짜릿한 전율까지 느끼는 그이지만, 스스로는 훌륭한 책 보다 즐거운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둔갑팬더」는 그의 소망을 일궈낸 시발점이기도 하다.
상상 속 캐릭터 ‘진진’과 우리를 닮은 ‘봉근’의 특별한 이야기-「둔갑팬더」
제목이 왜 ‘둔갑팬더’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으로 둔갑하는 팬더 이야기거든요”라며 대답이 간단 명료했다.
배고프면 생배추, 무 따위의 야채를 흙 묻은 채 뜯어먹고, 때 되면 스무시간씩 잠을 자대는, 밀린 집세를 닦달하는 주인 앞에서 변신술을 선보이는 상상 속의 주인공 ‘진진’과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추봉근’의 동거 생활이 「둔갑팬더」의 이야기 축이다.
개그 환타지라는 장르가 낯설더라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덧 책 속에 빠져 스스로 추봉근이, 또 진진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둔갑 팬더 진진을 비롯한 둔갑 여우, 둔갑 너구리, 둔갑 구렁이 등 낯선 캐릭터들은 경직된 현대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묘한 매력으로 독자를 흡입해 버린다. 스케일 큰 정통 환타지물과는 동떨어지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어디선가 본 듯한 패러디 캐릭터들은 순간순간 폭소를 자아낸다.
총 5권 분량인 「둔갑팬더」는 내년 봄 이후 후속편이 추가로 출간될 예정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형, ‘가늘지만 길고 질기게…’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졸업 후 2년 간 무려 6곳의 직장을 옮긴 전력이 있다.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다 공기업 쪽으로 관심을 돌려 지난해 12월 한국마사회를 비롯해 (주)KT, KOTRA등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공기업에 원서를 내고 한국통신과 마사회에 동시 합격, 마지막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는데… 경마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주변에서 적극 뜯어말린 것이 오히려 그가 마사회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됐다. 겉으로는 순하고 착하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엉뚱하고 고집 센 그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마사회 최종 면접에서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가늘고 길게 살자’입니다”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면접관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이후 사내에서 그의 별명은 ‘가늘고 길게’가 돼버렸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면서 착한 아이’라는 취급을 많이 받았어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엉뚱한 괴짜라고들 말해요. 이성적이고, 차분해 보이지만 사실 상상력이 꽤 풍부한 편이에요. 터무니없는 공상도 즐겨 하구요. 제 속의 상상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책을 집필하는 작업이었으니까 그 만큼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람 겉만 봐선 모른다고, 처음 만난 그의 모습은 책상에 앉아서 딱딱한 회계 정리를 하거나 설계 도면을 작성하는 건축 기사의 이미지였지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모습은 신기하게도 「둔갑팬더」라는 책 제목에 딱 어울려 보였다.
2년 여 방황 끝에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한국마사회라는 조직사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또 ‘가늘고 길게’ 적응해 나갈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