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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착잡하다”
-‘힘차게’ 깜짝 우승 ... 59전만에 감격의 첫 승 신고
- ‘꾸준, 성실, 최선’… 고비의 겨울 “의욕 불태운다”
지난 10월 20일(일) 제7경주. 단승식 39.7배의 비인기마 ‘힘차게’가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20기 동기생중 유일하게 첫 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던 김영진 기수가 마무리 첫 승을 신고했다.
데뷔 첫 승. 일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던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갑작스런 기승교체로 인해 우승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어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김 기수는 첫 승의 기쁨보다는 전날 경주에서 자신의 방해로 인해 낙마하면서 병원신세를 지게된 이성환 기수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크게 인식되었다.
어찌보면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임기수인 방춘식 기수의 부상으로 인해 그에게 갑작스럽게 많은 기승기회가 찾아왔지만 토요경마에서 기승정지와 더불어 동기를 낙마시키는 불운 다음에 찾아온 첫 승. 기쁨과 미안함이 교차한 한 주였다.
-“부담없는 조교사 배려가 힘이 되었다”
일요일 7경주에 나서는 김영진은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전날 동기인 이성환 기수를 낙마시킨 것 때문에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가 기승하는 말은 ‘힘차게’. 몇 번의 새벽훈련을 하면서 기승을 해봤지만 직접 기승은 처음이었다. 특히 객관적으로도 강한 상대를 만났고, 맨 끝번 게이트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지 못했다.
경주로로 나서는 그에게 배대선 조교사는 평소 코너별로 작전지시를 하던 평소와는 달리 그저 “힘 안배해서 잘 타봐라”는 말로 짧게 작전지시를 마쳤다.
당시는 별달리 생각을 못했지만 경주가 끝나고 나서 생각하니 조교사가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잘 타서 들어온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경주는 시작부터 어렵게 풀렸다. 1-2코너에서 너무 외곽을 돌아 버린 것이다. 중간에 뭉친 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인코스로 자리를 잡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말을 잡아 뒤로 가자니 너무 처지게 될 것 같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외곽에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4코너를 접어들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인코스로 들어가는 스타일을 보이던 그가 말을 외곽으로 빼고 나온 것이다. 인코스로 가고 싶었지만 전혀 틈을 발견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게 맘에 들지 않게 전개된 레이스가 오히려 그에게 복이 되었다.
“내 말은 페이스대로 나가는데 선두그룹이 나가질 않았다”는 그의 말대로 외곽에 위치한 ‘힘차게’는 탄력을 받으며 앞으로 나갔지만 선두그룹이 지친 발걸음을 나타낸 것이다.
결승선 200m를 앞두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시종 채찍질과 말몰이를 하며 첫 승을 맞이했다.
결승선을 통과한 후 되돌아오며 바라본 순위게시대엔 ‘힘차게’의 마번인 12번이 제일 위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결승선을 앞두고 8번의 채찍질을 해댄 그에게 심판실의 질책이 있었지만 첫 승의 축하도 함께 받았다.
-인생 전환점이 된 기수생활
김영진 기수의 고향은 경기도 포천. 태어나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마친 곳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경기도지 바로 옆 마을이 강원도 철원이 두메산골이었다.
2남4녀중 막내인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배운 기술이 가구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평생 직업이 될 줄 알았지만, IMF가 터지면서 그가 다니던 가구공장이 도산을 하게 되었다.
사회 전체가 흔들리던 시절. 그는 현금유통이 빠른 중국집 배달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배달일에 익숙해질 무렵, 그의 적은 체구를 보고 주위에서 기수를 해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막상 지원은 했지만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를 기수의 길로 이끌었다. 평소 기름기 넘치는 음식 옆에서 생활하던 그가 49.95kg으로 간신히 체중을 통과한 것이다.
힘도 들었지만 나름대로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후보생 시절이 지나고 정식 기수로 데뷔한 그에게 경마장은 시련을 안겨 주었다.
시작과 더불어 병원신세를 져야했던 그는 두 달 사이로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제대로 기승을 한 것은 올해 8월부터니 늦어도 엄청나게 늦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생활중에서도 그는 기수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의욕을 불태웠다.
-올 겨울이 기수 인생 좌우한다
차가워지는 겨울을 맞이하면서 김영진 기수는 남다른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동안 부상으로 인해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올 겨울만큼은 부상없이 최선의 경주를 펼쳐 보이겠다는 것이다.
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기수 인생이 좌우된다는 생각으로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승정지로 인해 당분간 쉬어야 하는 그지만 새벽 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오전 11시가 되어서다. 특히 선임 기수의 부상으로 인해 하루 7-8두의 훈련을 담당해야 하는 요즘이 오히려 더욱 그의 아침을 바쁘게 한다.
늦었지만 첫 승을 신고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그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앞선다”는 말로 자신의 현재를 평가하며, 어떤 일이던 꾸준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152cm의 작은 키지만 굵은 얼굴선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김영진 기수의 도전적인 모습에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권순옥 기자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