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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굿간에서 태어나 말과 함께 평생을 함께 한다
한국경마사상 최초로 신우철 조교사가 800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이미 기수부분에서 박태종 기수가 1200승이란 감히 넘볼 수 없는 숫자를 기록해 800승이란 수치가 낮아 보이지만, 조교사와 기수의 숫자는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급 기수들은 많은 기승기회와 우수마를 기승하는 횟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조교사의 경우에는 한정된 보유두수에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으로 우승마를 만들어야 한다. 경주마의 선정부터 훈련, 사양관리, 경주 선택까지 모두가 조교사의 책임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자신의 성적을 쌓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신우철 조교사의 800승 달성은 크게 축하할 일이며 이제는 한국경마의 소중한 기록으로 간직해 나가야 한다.
현역 조교사중 다승 2위 성적과 150승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올해도 최다승 자리가 유력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그의 최다승 기록은 박태종 기수의 그것만큼이나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다보니 800승이 됐네”라며 털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신우철 조교사. 하지만 80년의 역사를 가진 경마, 그리고 매경주 피말리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어쩌다 최다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신우철 조교사가 최고의 자리에 위치할 수 있었던 장점은 무엇일까?
우선은 그의 탄생부터 살펴봐야 한다. 신우철 조교사의 부친(故 신현태)은 일제시대 13세 나이에 기수가 됐고 이후 조교사로 생을 마친 한국경마의 전설적인 인물. 그의 큰아버지도 일제시대 유일한 조선인 조교사로 활약했었다. 그는 52년 당시 마방 옆에 있던 숙소에서 태어났다. 마땅히 가지고 놀 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던 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마굿간을 드나들면서 말과 친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지금도 그는 마굿간에 태어났다는 말을 자주한다. 아버지는 초등학생이었던 그에게 한 마리의 망아지를 선물해줬다. 그는 정성을 다해 돌봤고, 그 말은 ‘최고’라는 이름을 달고 경주마로 데뷔한다. 데뷔전에서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자신이 돌보던 말이 경주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아직도 그에게 커다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어 초등학교 때는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중학교에 들어와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축구명문 강릉농공고를 거쳐 고려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작은 키와 잦은 부상은 축구선수로서 그에게 커다란 좌절이었다. 결국 그는 축구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 군마훈련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제대 후에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무역회사에 입사, 평범한 샐러리맨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던 77년 그의 커다란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버지의 사망이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한국마사회에서 부친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특채를 제의한 것.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부친의 대를 이어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주저 없이 승낙했다. 평생의 천직으로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당시 그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경마과 발주위원으로 입사한 그는 1년 후 기수양성소 교관으로 발령을 받고 5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한다. 현재 조교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점오, 김문갑, 김명국 조교사 등 최고의 기수로 활약했던 인물들이 그의 제자들. 이후 83년 조교사로 데뷔했다.
조교사로 데뷔한 그는 93년부터 96년까지 4년 연속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승부사로 명성을 떨친다. 그가 꼽는 조교사의 가장 큰 매력은 ‘승부’. 어려서부터 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승부욕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조교사 데뷔 후, 처음에는 졌을 때의 괴로움이 너무 오래 갔지만 지금은 빨리 잊을 수 있을 만큼 경험이 붙었다는 그의 말에서 노장의 여유가 느껴진다. 개인마주제 전환 후 펼쳐진 첫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첫 마주협회장배 경마대회에서 차지한 우승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신우철 조교사의 지론이 함축된 얘기가 바로 ‘말도 상품이다’라는 얘기다.
경마팬에게 상품을 선보이는데 있어 결코 하자가 있는, 준비가 덜 되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주마를 내놓는다는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조교사를 트레이너라고 지칭하는 그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백전노장의 김응룡 야구감독이 가장 잘 치는 4번타자라고 하더라도 때에 따라 선수교체를 하듯 경마에서도 경주전반을 체크하고 최대한 이길 수 있는 경주를 고르는 것도 조교사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3,4년전 신우철 조교사에게도 큰 고비가 찾아왔었다. 연간조교사MVP가 신설된 직후 4년 연속 선정되고,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던 그가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슬럼프의 원인은 다름아닌 마필수급의 부족, 한번 시작된 마필수급의 어려움은 그의 노력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여파는 무려 2년여에 걸쳐 그를 괴롭혔다.
당시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던지 신우철 조교사는 “뼈저리게 느꼈다”라는 말로 그때의 심정을 토로한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당시의 경험을 거울삼아 이제는 최우선적으로 마필수급이 주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신우철 조교사는 언제라도 경주마를 교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가 귀뜸하는 34조의 차세대 기대주는 ‘환상콤비’, ‘커멘더블플라이어’, ‘원대풍’, ‘주말폭풍’ 등이다.
조교사로서 후배들 양성에 힘써 경마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조교사로서의 남은 목표라고 밝히는 신우철 조교사는 젊은 기수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스포츠서울배 우승을 차지한 윤대근 기수 또한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본 기수들은 따라 잡아 동양 최고는 만들고 싶다고 한다. 퇴직 후에는 꼭 마주가 되고 싶고 경주마 트레이닝 센터나 독립된 기수학교가 설립돼 작으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램이다.
이래저래 말밖에 생각하지 않는 그 끝없는 사랑이 단순한 유전(遺傳)에서 비롯된 것일까?
권순옥 취재부장 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