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에 지핀 사랑의 등불
- ‘백두산 도보등반’ 장애아동에게 큰 희망되길 기대
- 후원 아끼지 않은 많은 경마관계자에게 고마움 느껴

장애아동과 함께한 백두산 등반. 지금 생각하면 과연 우리가 백두산을 다녀왔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믿기지 않는다. 어려움도 많았고, 사연들도 많았다.
1년여의 계획과 등반을 위한 훈련 등 철저한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가운데 강행한 등반은 성공하고 돌아오면서도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기수협회에서 백두산 등반을 계획하게 된 것은 99년의 한라산 등반이 장애아동들에게 많은 희망과 꿈을 심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기수협회가 독립하기 전부터 많은 기수들이 봉사활동을 다녔고, 장애인 수용시설도 그 중 하나다. 장애인 시설을 다니던 중 특수학교에서 15년을 근무하고 있던 변상호 교사를 우연히 만났고, 그것을 계기로 기수협회는 98년 11월 장애학교 학생들을 서울랜드로 초청하는 행사를 가졌다. 변상호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이면서 또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등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봉사활동에 열심히던 기수들과 상의해 한라산 등반을 계획했고, 99년 4월 장애인의 날을 앞둔 4월 12일 드디어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폭설로 인해 한라산 입산금지라는 암초에 부딪혀 중도포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튿날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등반을 강행했고, 일행은 눈보라의 악천후 속에서도 결국 한라산 등정에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은 비디오로 만들어져 각 장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고, 기수협회로 많은 격려의 전화가 쇄도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나는 백두산 등반이라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차분히 준비를 해왔다.
백두산 등반에 나서기 3개월전부터 여가생활학교인 ‘그루터기’의 정신지체아를 선발해 도봉산, 관악산, 지리산 등에서 도보훈련을 했다.
계획했던 시기가 다가오면서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경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 등반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마사회 임직원 3백여명, 경마관련 전문지 등에서 후원금이 생각보다 많이 답지했다. 마사회직원 하나가 나에게 전해준 말은 큰 힘이 되었다. “작은 도움으로 장애인이 백두산을 오른다면 바로 그것이 대리만족 아니겠냐”라는 것이었다. 또한 후원금을 내면서 자신의 주위에도 장애인이 있다고 밝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주위에 알게 모르게 많은 장애인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장애인 그들도 엄연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드디어 대망의 시간이 왔다. 24일 새벽 4시 준마아파트를 출발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덕수궁으로 향했다. 이미 장애아들과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아들로는 처음으로 단체를 이뤄 해외로 나가는 그들의 얼굴에선 기대반 우려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평소 부모와 오랜시간을 멀리 떨어져보지 않은 아이들은 한동안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백두산 등정이라는 꿈에 부푼 모습이었다.
속초항에서 페리호에 승선 낯선 땅, 러시아와 중국 연변을 거쳐 백두산 입구의 숙소에 도달했다.
배에 승선한 이후 백두산까지 여정에서 비단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19시간이라는 긴 항해를 하는 페리호에 처음 올랐을 때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러시아와 중국 국경을 통과할 때는 장애아동과 동행한다는 이유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들의 사회에서는 장애인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출입국관리소에선 장애아동중 하나가 소리를 질렀는데(간혹 소리를 지르는 버릇이 있던 아이다) 러시아군인이 기분이 상한 듯 엄청 까다로운 검문으로 고생을 해야했다.
백두산 입구의 숙소에서 4시간여의 짧은 밤을 보내고 새벽 4시30분 백두산 등반에 나섰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많을 때보다 오히려 났다는 생각으로 이른 새벽을 택했다. 휴식이 적었던 지 출발후 1km지점에 이르자 장애아동들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잠시 휴식후 기합을 모으자 3개월의 훈련이 도움이 된 듯 활기를 되찾았다.
문제는 2/3지점인 흑풍구지역에서 발생했다. 굉장한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김재섭 기수의 파트너였던 윤돈영이 쓰러진 것이다. 몸을 만져보니 차가웠다. 처음에는 김기수가 업고서 이동을 했으나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져간 의료장비로 응급처치를 했다. 백두산 천지를 오르내리는 차량에 부탁해 윤돈영을 숙소로 내려보내고 처음 계획대로 등반을 강행했다. 다행히 백두산 천지까지 별다른 사고없이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등반에 성공한 이후 현지 가이드들과 얘기를 나누던 도중 아찔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장백폭포쪽에서 낙석사고로 6명이 다치는 바람에 백두산 도보등반이 금지된 상태라는 것이다. 때문에 백두산 천지에는 차를 타고 올랐다가 차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
현지 가이드들조차 우리가 도보등반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잠시 가슴이 서늘했지만 이미 도보등반을 성공한 터라 안심이 되었고, 하늘이 우리 일행을 도왔다는 것에 감사를 했다. 가이드의 얘기로는 백두산 천지의 날씨가 그때처럼 맑은 것은 일년에도 10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고자 찾은 백두산,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화창한 날씨를 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덕분에 동행했던 취재진이 백두산 천지의 화창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었다.
하산길에는 가이드에게 부탁해 차량을 동원했다. 많은 후원자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시 한번 깊은 관심과 후원을 해주신 분께 감사를 드린다.
속초항으로 돌아오면서 기수의 한명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이번 백두산 등반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욱 규모를 늘려 더 많은 장애아동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기수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4박5일의 어쩌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덕수궁에 마중을 나온 부모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장애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다녀왔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와 장애아들이 함께한 백두산 등반은 비디오로 제작돼 특수학교 교재로 활용될 예정이다. 부디 많은 장애인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비록 함께 백두산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십시일반 후원을 해준 경마인 모두가 아름다운 분들이다. 기수들은 이러한 경마인 마음에 보답코자 뜻있는 행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정리 : 권순옥 차장대우 mar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