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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의 우승... “기쁘긴 하지만 자랑할 일 아니다”
-“후배,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교사 되겠다”
-마방 잡일꾼에서 기수로, 다시 기수양성소 교관을 거쳐 조교사로... 경마장에서 그보다 많은 일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도 흔치 않다. 꾸준한 성적에도 유달리 경마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던 김춘근 조교사. 지난 4일(일) 동아일보배 경마대회에서 ‘마하플러스’로 우승하며 12년만에 경마대회 시상대에 섰다.
-머리차의 아슬아슬한 승부, ‘소리도 못 질렀다.’
2군 경마대회 동아일보배를 거머쥔 3군마 ‘마하플러스’. 오래전부터 ‘마하플러스’의 안선동 마주는 경마대회 출전을 희망해 왔다.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자신의 말이 경마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마주의 바램만으로 경마대회 출전을 결정할 수는 없는 일. 김 조교사는 오래전부터 ‘마하플러스’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왔고 결국 직전 경주에서 3위를 차지하며 상승세를 보인 ‘마하플러스’를 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마주가 되는 날부터 경마대회에 출전시켜 달라고 말해온 안 마주의 부탁도 들어줄 겸, 확실한 우승후보가 있기 때문에 우승을 노리지는 않았지만, 출전시켜도 망신(?)은 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모든 조교사가 일단 자신의 경주마가 경마대회에 참가하면 은근히 기대를 하기 마련. 경주 당일, 그는 관람대 지하 1층 조교사 대기실에서 경주를 지켜봤다. 결과는 ‘마하플러스’의 아슬아슬한 추입승. ‘마하플러스’는 이름대로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근래 보기 드문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머리차의 짜릿한 승부 때문에 우승순간,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이겼다는 느낌은 있었고 환호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확실치가 않아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결승선 통과하는 느린 화면을 보고 나서야 우승을 확인했지만, 이미 우승순간의 흥분은 가라앉은 상태. 지난 1989년 9월 3일 니이가타자키컵 경마대회에서 ‘덕림호’로 우승한 이후 실로 12년만에 맛보는 경마대회 우승을 그는 이렇게 조용히 맞았다.
12년만에 시상대에 올라서는 순간, 그는 기쁘기보다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다른 조교사는 일년에 몇 번도 하는 우승, 12년만의 우승이 기쁘기도 하지만 자신의 무능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주위에서 인터뷰 요청이 끝이지 않고, 마방식구들은 우승축하연을 하자고 했으나, 그는 모두 거절했다. 자랑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더러, 설사 자랑할 일이라 하더라도 결코 남에게 자신을 자랑하는 법이 없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그동안 경마대회 때마다 다른 마방에서 얻어먹은 만큼, 자신들도 대접을 해야한다는 마방식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축하연은 치렀지만, 인터뷰를 요청했던 기자들은 대부분 문밖에서 그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스트레스를 뚫고 거둔 성적... ‘6백승 향해 달리겠다.’
경마장에서 안 해본 일이 없는 그지만, 조교사가 된 이후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말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기대한 신마가 기대만큼 걸음이 안 나올 때, 인기 마필이 입상에 실패했을 때... 경마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은 그런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트레스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손을 내저으며 한마디 던진다.
“이거 속병 나기 딱 좋은 직업입니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이겨내면서 그가 거둔 성적이 4백76승(11월 11일 현재). 5백승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자 “벌써 그렇게 됐냐”며 놀라면서 6백승에 대한 의지도 내비쳤다.
67년 기수로 데뷔하고 뚝섬경마장을 질주하다, 불어나는 체중으로 6년 정도의 기수생활을 접고, 73년부터 기수양성소 교관으로 활동, 그리고 78년 12월 조교사로 데뷔한 그에게 경마장에는 많은 후배와 제자가 있다. 교관시절, 전국체전 승마경기에도 출전했던 그는 당시 같은 부문에서 경기를 펼쳤던 자신의 스승을 이겨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경마장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도 그를 이기려고 숱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자기가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성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 바로 경마다. 사람에게도 전수하기 어려운 노하우를 말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경험이 많다고 해서 또는 스승이라고 해서 어떤 메리트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해답은 노력뿐,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경마대회 우승은 요란한 자랑거리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승리일 뿐이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김옥성 기수가 말하는 김춘근 조교사〉
‘마하플러스’로 김춘근 조교사에게 12년만의 경마대회 우승을 안겨준 김옥성 기수에게 김춘근 조교사에 대해 물었다.
-김춘근 조교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성실함 그 자체다. 새벽에는 새벽훈련, 오후에는 놀이운동,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분이다.
-후배로서 본 받을 점이 있다면?
▲성실한 자세도 그렇지만, 철저한 자기관리가 본 받을 점이다. 50이 넘는 나이(1948년生)에도 휴일마다 조깅 등 운동으로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는 점은 기수인 나에게 좋은 본보기다.
(사진설명) 동아일보배 우승축하연에서 만난 김조교사와 서영석 본지 예상팀장. 둘은 예전 8조에서 조교사와 기수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