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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경마선수로 기대 부응할 터”
팬 여러분의 각별한 사랑과 성원 병가 중 새롭게 깨달아
승수·기록 경신 의식 않고 항상 최선 다하는 자세 견지
선배 박태종·문세영 선수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얻어
- 새벽에 경주 출전 예정 경주마 훈련 중 입은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한 병가였는데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지 않았나 싶다. 당시 부상 정도가 심각했었나?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바깥쪽 연골이 찢어져 불가피하게 수술을 받았다. 5개월 간 꾸준히 재활치료와 함께 휴식을 가진 덕에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수술과 재활치료를 담당하셨던 의사 선생님들께서 조심할 것을 당부하셨던 만큼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 복귀하자마자 기승 횟수가 비교적 많았다. 오랜 만에 경주로에서 각축을 벌인 소감이 있었을 텐데….
실은 세 차례 정도 출전하려고 준비했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열심히 몸을 풀어야 한다”며 배려를 해주신 덕에 여섯 마리나 기승하게 됐다. 하루 기승 횟수가 많았을 때에 비하면 적은 횟수였음에도 힘이 조금 부치더라. 솔직히 두 차례 기승 결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낮게 나타나 의기소침했던 것도 없지 않았다. 응원하러 본장을 방문하신 팬들이 생각보다 많아 심적 부담이 커졌었다. 경주를 모두 마친 후 더 열심히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굳게 다짐했다.
- 뜻하지 않은 부상에서 기인한 심리적 후유증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겁이 난다거나 위축되는 현상 등이다.
훈련 도중 다쳤던 경우라 경주보다는 훈련 적응이 힘들었다. 무릎을 안정적으로 안장에 대고 짧게 타야하는데, 긴장도 많이 되고 말이 몸을 갑작스럽게 틀 때가 신경이 예민해졌다. 일주일 정도 몸 관리에 열중하면서 훈련에 임했더니 편안해지더라. 이제는 체력적으로 힘든 것 빼고는 문제될 부분은 없다.
- 복귀하던 날 많은 팬들이 예시장과 하마대 근처에서 응원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었다. 혹시 의식했었는지 모르겠다. 전화위복처럼 부상 이후 팬이 더 늘어난 것 같다.(웃음)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사실 부상 전에는 팬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다. 아무래도 경마라는 것이 베팅이 이뤄지는 아주 민감한 스포츠이다 보니 성적에 따라 희비가 교차할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했다. 성적이 저조하거나 부진하게 되면 내정하게 외면하고 등을 돌려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병가 중 경주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걱정을 해주시고, 안부를 묻고, 정말 감동될 만큼 세세하게 챙겨주시는 팬들이 계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공백기 중에 생일을 맞았는데, 일곱 분의 팬이 각지에서 상경,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그 후로 경마선수로서 늘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경주를 한 점 유감없이 치러야겠다는 다짐을 거듭했었다. 경마 팬들에 대한 내 생각이 편협했고 단순했으며,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는 점도 깨달았다.
팬들의 사랑과 성원에 어떻게 보답을 할 수 있을까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쉬는 동안 경마장을 들렀을 때 예시장에서 문세영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 게 많았다. 예시장을 돌때면 긴장도 되고 민망하기도 해서 팬들이 하는 말에 묵묵부답,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곤 했는데 문세영 선배가 팬들의 말에 웃어주기도 하고 간간이 대답도 해주시는데, 어떻게 보면 작은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즐거워하는 팬들을 보니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경주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일부러라도 좀 웃고 대답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다.
- 팬들이 당찬 경주마 유도와 추진, 그리고 성적을 보고 대체적으로 “타고 났다”는 등의 호평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원래부터 경마선수가 꿈이었나?
사실 경마세계는 물론 경마선수란 직업을 전혀 몰랐다. 말도 생소했고. 원래 활동적인 것을 잘 하는 편이라 운동선수가 되고 싶기는 했는데, 키 때문에 계속해서 한계에 부닺히게 되더라. 어쩔 수 없이 고등학생 때 공부를 했는데, 너무 늦게 시작한 공부다보니 노력한 만큼 성적도 나오지 않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학여행 때 말을 타고 찍은 기념사진을 발견하고 큰오빠에게 자랑을 했다. 그런데 때마침 큰오빠가 얼마 전 경마선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봤다고 하더라. 넘길 수도 있었지만 흥미가 생겨 검색을 했더니 마침 시험이 곧 있다고 나왔다. 오빠도 지원을 해줘 준비를 하는데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운 좋게도 시험을 쳤더니 한 번에 붙었다. 그전까지는 제대로 뭘 한 적도 없었고, 시험을 쳐서도 잘 된 적이 없었는데 경마선수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제대로 맞는 길로 오려고 그동안 고생을 했던게 아닌가 싶다.
- 큰오빠가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인데.
안 그래도 맨날 자기가 나를 키웠다고 한다. 큰오빠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예전에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힘들 당시 큰오빠가 많이 고생하며 가장역할을 해주었다. 특히 고3 때 학원비나 교육비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도 당시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지금은 오빠가 결혼도 하고, 내가 반대로 보답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 아무래도 남자 선수가 다수인 각축무대, 직업세계이다 보니 적응이 무난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오빠들과 자라서 나름대로 거칠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맞딱뜨려보니 생각 이상이었다. 당시 선수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름대로 각오를 결연하게 다졌었다.
남자 선수들에게 지기 싫어서 일부러 머리도 짧게 자르고 걸음걸이도 남자처럼 걸었다. 후보생 때는 밀리지 않으려고 남자애들에게 거칠게 대하고, 선수가 되고 나서도 여자라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 감독님 앞에서 일부러 욕도 했었다.(웃음)
동기생이 남자 두 명과 그리고 나 셋이었는데, 말이 나오면 항상 마지막으로 기회가 오곤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말 한 마리, 한 마리가 너무 소중해 그야말로 비장한 각오로 열심히 탔다. 기승술이 좋다기보다는 정말 오기로 버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선수 입장에서도 많이 신경이 쓰였을 것 같다. 나는 나대로 이기려고 애를 썼지만,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여자 선수에게 우승을 넘긴다는 게, 그 나름대로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 싶다.
후배들이 생기면서 예전보다 시선도 덜 쏠리고, 부담도 덜해져서 한결 편하게 말 타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 어느 순간부터 말 타는 것도 훨씬 편해지고 성적도 쭉쭉 나오던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기승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던 데뷔 초반에는 사람들에게 내 존재,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여자니까, 혹은 감량선수니까, 가 아니라 혜선이니까, 혜선이가 이걸 잘 타니까, 로 기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샌가 선행마를 잘 탄다는 이미지가 생기더라. 선행마가 실제로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그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죽기 살기로 탔다. 예전에는 다섯 마리를 잘 타도 한 마리를 못타면 그것 하나로 엄청 욕을 먹었는데, 이미지가 잡히고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인식되고 나니까, 경주전개라던가 말의 문제 등 정말 문제점을 봐주시더라. 부담도 덜해지고 기승기회도 늘면서 한 마리, 한 마리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니 성적이 더 잘 나오게 된 것 같다.
- 여성 선수로서 선구자 역할을 해주었던 이신영 감독의 기록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을 텐데, 혹시 선배 기록을 깨겠다는 목표로 도전하지는 않았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신영 선배님이 내게 100승을 달성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감독으로 전향 하신 후 말도 많이 타게 해주고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여성 경마선수 선배 기록을 넘어서 사상 처음이란 단어가 앞에 붙는) 100승 기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자 주변에서 승수에 관한 언급을 자주 하더라. 자꾸 듣다보니 부담이 되고 한편으론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 무렵에 부상을 당해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 그래도 병가와 휴양(?)덕에 승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런데 또 복귀를 하니까 사람들이 올해 안에 무조건 100승을 이루라더라. (웃음)나보다도 주변에서 자꾸 목표를 세워준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선수로서 불안한 점도 많고. 요즘은 더 그렇다. 몸 상태도 그렇고….
- 의외다. 말 타는 걸 보면 정말 자신감 넘치고 거리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아니다. 기승술은 아직도 많이 지적을 받고 있다. 단지 막판 라스트에서 남자들에 비해 작아 보일 수도 있고, 또 쇼맨십의 일종으로 시원시원하게 미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션을 크게 했는데 어쩌다보니 습관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그래서 말 위에서 동작이 크다는 지적을 받는다. 늘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항상 연습한다. 이번 공백을 가진 후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잡아나가는 중이다.
- 부상 공백이 김혜선 선수에게 여러모로 변화를 주는 것 같다.
그렇다. 예전에 다쳤을 때에는 이대로 잊혀지는 게 아닐까, 다시 말을 탈 수 있을까 하며 마음이 너무 급했다.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미지를 심어둔 후라서 내 스스로만 최선을 다해 기량을 회복하면 되는 문제라 한결 여유가 생겼다. 진짜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팬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내 몸 관리도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제일 중요한 건 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다. 예전에는 말이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른다고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쉬는 동안 말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동영상을 봤다. 또 최근에는 처음으로 제주도를 가봤는데, 그곳에서 말 공연을 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애정을 갖고 꾸준히 호흡을 맞추면 다 알아듣고 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는 너무 바빠 그러지 못했는데 이제는 자주 살피고, 대화도 건네며 예뻐하려고 한다. 정신적으로 많은 걸 깨달았던 시기였다.
- 경마선수들을 보면 체중감량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던데 쉬는 동안 그런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나?
통통해 보일 수도 있는데 키가 작은 편이라 생각보다 몸무게는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감량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 그렇다. 예전에는 키 때문에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는데 지금은 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 이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만큼 여성선수라는 타이틀에 대해 두 가지 입장에 서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역 선수로서 성별을 따지지 않은 선수 김혜선, 앞으로 들어올 여성 선수들의 롤모델로서의 여자 김혜선. 어떤 모습으로 보였으면 하나?
어쩔 수 없지만 두 입장 모두 나다. 말 위에서만은 성별을 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남녀 핸디가 주어진다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없는 상황이라면, 더 열심히 하는 만큼 그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말에서 내려오면 또 여자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들 수밖에 없다.
딱 한 번 너무 힘든 나머지 선수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후보생이던 안효리 선수가 내가 힘들어하던 걸 어떻게 알고는 그랬다. “선배님이 힘들어하면 저희는 어떡하나요,” 정말 그 한 마디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효리는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경마고등학교에 가서 질의응답을 하던 당시, 선수를 꿈꾸던 여자 아이들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가던 게 당시에는 너무 민망하고 창피하기만 했는데 효리의 얘기를 듣고서야 내 위치가 어떤지, 내가 어떤 입장에 서야하는지 실감이 나더라. 나를 보면서 노력 중인 아이들이 있는데 그만두겠다, 함부로 그런 생각을 못한다.
- 그렇다면 롤 모델은 있나?
딱 한 명을 정해놓기보다는 여러 선배들의 장점들을 고루 닮고 싶은 게 사실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최근 어떤 분이 ‘여자 박태종’이라고 표현해주셔서 박태종 선배님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여전히 건재한 모습과 성적으로 후배들에게 모범은 물론 특히 체력관리에 교훈을 주시고 계셔 감탄사가 절로 터질 때가 많다.
요즘도 운동하며 자주 뵙는데, 자기관리가 굉장히 뛰어나신 선배님이다. 경마선수로 보람과 성취, 롱런을 위해서는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철저할 것을 일깨워주시는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실로 존경한다.
- 이제 2013년 경마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11월경에 두바이에서 여성 초청 경주가 있다. 그곳에 초청받아 가는 것은 선수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인데, 운 좋게 출전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몸 회복을 위해 더 늦게 복귀하려고 했지만 이 초청을 대비해 적응력도 키우고 몸도 만들기 위해 조금 무리해 시기를 앞당겼다. 그리고 허락된다면 올해 안에 100승을 달성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무튼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앞으로 꿈이 있다면?
원래는 선수를 정말 오래 하고 싶었다. 앞서 말한 박태종 선배님처럼. 그런데 지금쯤 돼서 보니 결혼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 5개월을 쉬고도 적응 문제로 이토록 걱정하고 있는데, 나중에 아기를 낳고 몸조리를 위해 쉬고 나면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상 후에는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좋은 남자를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웃음) 그만큼 롱런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너무 힘들겠지만 꿈은 꿈이다.
만약, 내 꿈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여자 후배들을 위해서 경마 교관으로 들어가 경마를 가르치는 최초의 여자교관이 되고 싶다.
선수 생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남자와는 다른 여자로서의 어려움이 분명 있다. 그 부분을 내가 겪었고 후배들 역시 겪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못 버티고 떠나는 여자 후배들 중에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나보다도 훨씬 잘 탈 인재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 부분을 도와주고 싶고, 그쪽을 생각하며 지금도 이것저것 필요한 부분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조지영 기자 llspongell@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