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3개월여에 걸친 아홉수 극복하고 40승, 수습 해제
20조 마방의 끈끈한 믿음 속에 끊임없이 성장함에 감사해
성명>안효리
소속조>20조(배대선)
생년월일>1989/06/04(25세)
데뷔일자>2012/06/07
기승중량>51Kg
통산전적>791전 41승 2위 43회
경마의 꽃은 기수라 했던가.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유난히 고고하고 탐스러운 꽃망울을 맺은 여성 기수들은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렛츠런파크 서울에는 현재 7명의 여성 기수가 활약 중이다. 스포츠 종목 중 유일하게 성별 핸디캡이 존재하지 않는 경마에서 치열한 각개전투 끝에 여성기수로서는 다섯 번째로 40승을 달성한 이가 여기 있다. 이제는 수습기수가 아닌 정식기수로서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린 안효리 기수를 만나보았다.
-40승을 축하한다. 당시 경주가 기억나는가?
물론이다. 말을 직접 훈련하면서 컨디션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을 느꼈다. 윤승할 때도 상태가 좋아서 속으로는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출장하면서도 내내 ‘차분하게 잘 타야지’하는 생각뿐이었다. 일단 출발이 좋았다. 조교사의 지시대로 힘 안배를 하다 직선에서 밖으로 빼며 추입을 노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탄력이 너무 잘 붙어 우승하겠구나 생각했다. 당시 채찍을 대지 않았던 것도 지시사항이었다. 아직 여러 가지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다 보니 채찍을 때리면 자세가 흐트러지기도 하고 너무 많이 때릴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승보다도 제대로 된 자세와 방법으로 타기를 원하셨던 것 같았다.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채찍을 대려다가 지시가 생각나 꾹 참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우승 후 매우 기뻐하던데? 말목을 박력 있게 때려주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좋아서 소리도 지르고 기특해서 말목도 몇 번이나 때려주었다. 통과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아, 너무 좋다. 드디어 했네.”라는 것뿐이었다. 그 주 내내 2등만 계속했고, 더 따져보면 3개월 내내 우승을 못했다. 기수 생활하며 처음 있는 일인데다 정신적으로도 정말 힘들었다. 말에게 제일 고마웠고 어서 달려가 조교사, 마방식구에게 이겼다고 소리를 지르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마대로 돌아오는 동안에는 그동안 격려해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새삼스럽게 고마웠다.
-유난히 아홉수가 길었는데?
여태까지 아홉수가 없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한 달에 1~2승씩은 꾸준히 해왔는데 근 3개월 동안 승수 없이 낙마도 많이 하고 훈련 중에 다치기까지 하다 보니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에도 소속인 20조 마방에서는 변함없이 좋은 말을 아낌없이 타게 해주시고, 1등 말로 2등을 하고와도 말이 컨디션 안 좋았다고, 편성이 셌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조교사도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볼 때면 “천천히 가자.”라고 믿음을 보여주셨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불안감도 컸다. 차라리 너 때문이라고 했으면 오기로 더 했을까? 모르겠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 풀리니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정말 많이 자책했다. 그동안 탔던 경주들을 모두 다 돌려보면서 왜 그럴까 매일 고민했다. 같은 마방의 추열 선배가 타는 것도 보고 분석도 했다. 자신감이 떨어지니 더 마음먹은 대로 안 됐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데뷔 후로도 평탄한 기수 생활은 아니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의 마방을 만나며 많이 변하게 됐는데, 20조는 어떤 곳인가?
최고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배대선 조교사의 역량이 크다고 본다. 마방 식구들 모두가 워낙 말에 대해 꼼꼼하게 신경 쓰는 편이다. 출전 두수도 많은데 한 마리 한 마리 훈련할 대마다 컨디션이 어떤지, 다리는 얼마나 부었는지 모두 살핀다. 컨디션이 안 좋았다면 왜 그런 건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주사를 맞거나 편자를 바꾼다. 조교사부터 마방식구 모두가 훈련을 끝낸 나와 추열 선배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들어주고 실제로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자신감이 생기고 더불어 20조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는데 그게 성적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반면 소속기수로서는 훈련해야 할 두수가 많아져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추열 선배 앞에서는 힘들다고 말도 못 꺼낸다. (웃음) 나도 하루에 9~10두를 맡아 훈련량으로는 탑5 안에 들어가는 하는데 단연 1위의 추열 선배는 13두를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몸만 힘들지 막상 훈련 할 때는 행복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물론 결국에는 내가 타게 될 친구들이니까 더욱 신경 쓰게 되는 것도 있고. 훈련을 하게 되면 그 말의 컨디션도 알 수 있으니 마방 식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조언도 하고 알아가는 부분도 많아지게 된다. 의견을 물어볼 때도 직접 타며 느낀 것들이 바탕이 되니까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고.
-말수가 적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고들 하는 배대선 조교사를 유독 살갑게 잘 따르는 듯하다. 안효리 기수에게 배대선 조교사란?
존경하는 스승이다. 20조에 온지도 어느새 1년 반이 됐다. 처음에 갈 곳 없는 나를 오라고 해주셔서 영문을 몰라 경계했던 적도 있었다. 워낙 여자기수를 기용하지 않으시는 분이기도 했고, 왜 나를 데려왔을까 싶어 많은 생각을 했다. 결론은 그만큼 잘 해야겠다는 것이었고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식상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맨 처음 기수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마사고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접했다. 사실 기수를 본 적이 없어 남자동기들이 왜 그렇게 기수가 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당시 처음 경마장에 가서 이애리 기수의 우승 장면을 보게 됐다. 수많은 함성 속에 결승선을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냥 반해버렸다.
원래 한 번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이기에 기수에 도전하게 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경마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도 심한 부상으로 6년 만에 졸업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 한 경주를 뛰더라도 나는 기수가 되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갓 고등학생이 된 어린 나이에 말 타는 것이 무섭지 않았나?
당연하다. 처음에는 분뇨 냄새도 너무 싫었다. 청소를 하려고 처음으로 마방에 들어갔는데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을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생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하고 자란 여자아이에 불과했으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말 위에 올라가니 엄청 높았다. 무섭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많이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이유는 모르겠는데 떨어져도 자꾸 다시 타고 싶었다. 2학년 때부터는 자기 선택에 따라서 기승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가 가능했는데, 당시 나는 기수를 할 생각도 없었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말을 타겠다고 했다. 말을 탔을 때 내 다리와 온 몸을 통해 그 친구들의 심장박동소리가 전해지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어느 정도 친해진 뒤 내가 원해는 대로 말이 움직여주면 그것도 너무 행복했다.
-부모님이 전주에 살고 계셔서 따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걱정하지 않으시나?
고등학생 때부터 떨어져 지냈던 것도 있고, 내가 이 길을 얼마나 원하는지 아시니까 내색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경주하는 날이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침에 기도를 하러 가신다. 다녀오시고는 “엄마가 오늘도 무사히 탈 수 있게 기도하고 왔어. 오늘도 안전히 힘내.” 라고 카톡을 보내주시는데 그걸 읽고 힘내서 경주에 나선다. 운이 좋았던 게, 수많은 낙마 속에서도 목숨을 좌우하는 큰 부상은 없었다. 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 것 같다.
-집에서 유일한 딸인데 위험하다고 반대는 없으셨나?
한 번도 내 앞에서는 그만두라 한 적이 없으시다. 어머니 말로는 예전에 어깨가 부려졌을 당시 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들어와서는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지만. 나는 아버지께 “혹여 내가 이 일 하다 죽어도 슬퍼하지 말라.”며 굉장히 세게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내가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드리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있는 것도 너무나 행복하니 절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다.
대신 아버지는 어찌됐든 중간에 성의 없이 포기하지만 말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경주에서 한 번도 결승선 전에 일어서본 적이 없다. 지난 번 정지를 당했던 경우 한 번을 빼고. 당시 ‘포커스’를 타고 정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주로를 달렸다. 내 부주의로 깔대기를 하나만 썼던게 잘못이었다. 너무 안 보여 이쯤이면 다 왔겠거니 했는데 너무 일찍이었다. 그 후로는 더욱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는 점도 잇다.
-감량이 모두 사라졌는데 어떠한가?
얄미운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두렵지 않다. 또 다음 한 승을 쌓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워하고만 있으면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최근에는 아홉수가 너무 길어 우승을 바랐지만 사실 나는 한 마리를 얼마나 온전히 타내느냐에 더욱 주안점을 두고 임하고 있다. 몇 번이나 부상을 입고, 일주일에 한두 마리를 겨우 얻어 탔던 때가 있었기에 지금 타고 있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너무 소중하다. 그 덕분인지 최근에는 비인기마가 운 좋게 입상하는 행운도 따르고 있다. 경주 나가기 전에 분석도 많이 하고 출발대 안에서 예전보다 더욱 집중하게 된다. 경주중에도 이걸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디고 그렇게 시도해봤는데 말이 잘 뛰어주면 그때의 재미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거기다 타고 돌아오면 조교사가 한 두 마디씩 툭툭 던지듯이 조언을 해주시는데 그게 또 그렇게 도움이 된다. 그 말을 듣고 보완하기도 하고.
-기승술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이는데?
아직 멀었다. 자세는 내가 20조에 들어오며 가장 많이 지적을 받은 부분이다. 부상과 불안정한 자세가 겹쳐지면서 허리가 너무 안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기승기도 정말 많이 타며 자세를 교정했고 최근에는 조교사가 추천한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기본 웨이트에다 조교사가 직접 트레이너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이야기해주어 혹독한 추가 훈련까지 받으며 단련 중이다. 덕분에 숟가락을 들면 손이 벌벌 떨리고 기침을 하면 배가 당겨 죽을 것만 같다. 다른 곳을 아프게 해서 아픔을 못 느끼게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웃음) 농담이고 예전에는 치료를 받아도 채워지지 않았던 부분이 근육을 단련하며 훨씬 좋아지는 기분이다.
-기수생활을 하면서 롤모델이 있다면?
이강서 기수라고 얘기하달라고 강요받았다 (웃음) 딱히 롤모델은 없고 아무래도 20조이다 보니 추열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하나를 물어도 가장 자세히 알려주는 것도 추열 선배고. 무엇보다 우리 조교사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부럽다. 그건 말만 잘 탄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고 보니 롤모델이 추열 선배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강서 기수도 갔지만 곧 장추열 기수마저 군입대를 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든든한 버팀목일 텐데 허전할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물론 모두가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누가 다치면 서로의 말을 훈련해주며 격려하곤 한다. 경쟁구도인 기수 생활에서 누가 남의 말을 조교해주겠나.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정말 나는 인복이 타고난 것 같다.
기수 후보생 시절 정말 힘든 때에도 교관님들이 언제나 지지해주셨고 의지가 돼주셨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많이 흔들렸을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지금은 20조와 같은 마방에서 일하고 있다. 20조를 거쳐갔던 분들이 지금은 다른 조에 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고 다치면 언제나 연락이 와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확실하다.
-20대 여성으로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 않나? 꾸미거나 놀러 다니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
그러고 있는데? (웃음) 물론 쉬는 날에는 종종 놀러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은 워낙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쉬는 날에는 누워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화요일 밤에는 아, 출근하기 싫다.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면 괜히 아프고 기침도 나고. 그런데 막상 말을 한 두 마리씩 타다보면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금방 의욕이 생긴다.
-얼마 전 학대받던 말을 직접 찾아가 당근을 주던 동영상이 화제가 됐는데?
그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서 영상을 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가 말을 타는 입장에서 말이 얼마나 예민하고 겁이 많은 동물인지 알고 있는데 그렇게 까지 때리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살아있길 바랐는데 겁에 질려있긴 해도 당근은 잘 먹어서 안심했다. 이 아이가 잘 살아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동영상을 촬영해서 올렸던 것이다 .
-앞으로도 계속 기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길이 있을 텐데?
이번에 대학교 승마산업학과에 입학했다. 졸업하면 대학원까지 다닐 생각을 하고 있다. 석사까지 마치면 나처럼 마사고라든지 말 관련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도 꿈이다. 기수에 대한 신분을 등한시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해에 훈련이 끝나면 언제나 숙소 안에 갇혀 있다보니 애완동물이 된 것처럼 답답하더라. 바쁘게 살고 싶어서 도전하는 중이다. 공부도 하고 싶고.
-끝으로 안효리를 응원하는 분들께 한 마디 한다면?
너무 감사드린다. 솔직히 지난 3개월간 예시장에 나가면 언제 아홉수 뗄 거냐며 소리치시는 분들과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까지 참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도 모두 감사하다. 팬카페 분들도 내 성격을 알아서인지 아무 말 없다가 우승을 하자마자 고생이 많았다고 연락기 왔다. 멀리 있어 자주 볼 수는 없지만 항상 고맙고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성격도 성격인데 객쩍어서 적극적으로 찾아가 말을 건네지 못했던 관계자분들도 있는데 웃으면서 한 마디라도 더 하려 노력 중이다. 또다시 출발선에 섰다는 마음으로 도전할 것이다.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나태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잘하겠다. 요 며칠 축하를 너무 많이 받아 계속 감사인사를 드리며 지냈다. 앞으로도 축하받을 일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