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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4조 이신영 조교사
생년월일 1980/04/12
데뷔일자 2011/07/01
통산전적 648전 103승 2위 51회
-여자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하다 : 자신감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이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했던 질문지에는 ‘최초의 여성’, ‘여자로서’ 등 여자 조교사 이신영을 묻는 내용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눈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질문지를 모두 구겨버렸다. 그녀에게 ‘여자’라는 수식어는 그야말로 무의미했다. 그녀의 말과 행동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애초에 생각하지 않은 당당함이 배여 있었고, 인간 ‘이신영’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기수 데뷔 당시에도 그랬다. 사실 그녀의 조교사 수석 합격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기수 면허 시험 역시 수석으로 통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운동신경과 순간적인 상황에서의 센스는 물론, 힘에서도 웬만한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고. “기수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을 당시만 해도 정말 최고로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요. 남녀 구분 않고 전체에서요.”
마방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인데다 나이 어린 조교사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진 탓에 직원들 역시 처음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신영 특유의 당당함은 조교사의 권위를 지켜내기에 충분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서 마방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신영표 당당함은 故임대규 기수의 영향도 크다. 기수 시절부터 유난히 이신영 조교사를 예뻐라해주었던 임대규 기수는 그녀의 기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신영 조교사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임대규 기수의 문자는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당당함은 아무데서나 오는 것이 아니다. 근거가 없는 당당함은 ‘잘난 체’ 혹은 ‘방종’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그녀는 직원을 대함에 있어 언제나 그 위치에 맞는 존중과 대우를 잊지 않는다. 믿고 따라올 수 있는 확신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덕분에, 당당함은 카리스마로 거듭날 수 있었다. 자만과 자신감. 그 한 끗의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잠시도 쉬지 않는 노력의 아이콘 : 열정
그녀의 하루 일과는 빈틈이 없다. 새벽 4시에서 5시경에 시작하는 훈련을 위해 일찌감치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 훈련을 한 번쯤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인물이 바로 이신영이다. 이곳저곳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지시를 하는가하면 직접 말에 올라 훈련에 임하기도 한다. 현재 14조 마방에서 훈련 승인을 받은 관리사는 총 3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신영 조교사는 매일같이 훈련에 임한다. “언젠가 훈련에 임하는 관리사 중에 제가 갖고 있는 기술을 모두 익혀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때는 마음을 좀 놓고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요?”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마방으로 향한다. 경주마들이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한 마리 한 마리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된다. 그리고 또 훈련, 마방관리의 반복이 저녁까지 이어진다. 이 와중에도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무조건 제주도를 향한다. 조교사에게 있어 새로운 경주마의 수혈은 농사에서의 모내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일이다. 시기와 흐름을 잘 읽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혈통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9월이 되면 이신영 조교사의 저녁은 더욱 바빠진다. 대학원 강의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신영 조교사는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접목되는 부분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대학 생활을 못해봤던 한을 풀려는 것도 있고요.(웃음)”
보통의 대학생들이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과 불확실함에 쫓겨 공부하는 반면, 이신영 조교사는 정말로 학문적인 목적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뚜렷한 “목표”가 정해진 상태에서 학문을 접하다보니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익혀야 할지가 더욱 명확해 보인다고. 고된 일정 탓에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기도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하겠냐는 생각에 기운을 내곤 한다.
“처음에는 학문적인 부분만 기대했는데 막상 다녀보니 그 외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조교사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늘 경마장 안에서 같은 계통의 사람들만 주로 조우해야했던 이신영 조교사는 대학원을 다니며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마주하고, 많은 소통의 방법들을 배우고 있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일어나는 법을 안다: 경험
너무나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신영 조교사가 지금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시작은 기수시절부터였다. 아무리 당당한 그녀였지만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맹세컨데 저는 기수시절 제 노력이 결코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신영 조교사는 기수 시절 악바리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노력으로 안 되는 타고난 신체적 한계와 몇 번의 대형 낙마사고로 인해 번번이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게다가 거칠기로 소문난 경마계에서 이러한 그녀의 부진에는 언제나 질타가 따랐다. 주눅이 들어 말을 타면 또다시 성적이 안 나오고, 또다시 질책을 받고. ‘한 성격하던’ 이신영 조교사였지만 반복되는 악순환에 강점이었던 자신감마저 바닥을 칠 정도까지 이르렀다.
최고의 기수가 될 거라며 경마판에 발을 들였던 때와는 달리, 조교사로 데뷔할 시기의 이신영 조교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세계를 충분히 경험한 그녀는 마음을 비우고 바닥부터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너무나 쓰고 힘겨웠던 지난 경험이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제가 그야말로 잘 나가는 기수였다면 조교사가 되고나서 한참동안 감을 잡지 못했을 거예요.” 기복이 워낙 큰 경마 세계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은 그녀의 경험 덕분이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사건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고 돌아보는 이신영 조교사였다.
-마주와 조교사는 “의리!” 몸소 보여줄 수 있어야 : 신뢰
이신영 조교사가 직접 훈련에 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말을 매개체로 이뤄진 마주와 조교사의 관계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 뿐이라고. 눈으로 보고 상태를 확인하는 것과 직접 기승해보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이신영 조교사의 철학이다. “지금 말의 상태가 이렇고 다리가 어떠합니다, 라고 말씀 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타보니 이런 부분에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더라,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믿음이 가지 않나요?”
그래서인지 이신영 조교사는 개업 때부터 연을 맺었던 대부분의 마주들과 아직까지도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직접 훈련해서 상태를 알리는 것도 믿음을 쌓는데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 이신영 조교사가 중요시 하는 것은 거짓을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의 능력적 한계나 부상 소식은 믿고 말을 맡겼던 마주에게 전하기에는 너무나 껄끄러운 사실일 수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이것을 감추거나 유야무야 넘긴다면 당장의 회피책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나중에는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당장은 너무나 괴롭지만 이신영 조교사는 문제가 생겼을 때 곧바로 마주에게 보고를 한다. 한 시라도 빠르게 그에 따른 대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모두에게 현명한 조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노력과 투명함으로 쌓은 신뢰 덕분인지 현재 14조의 마주들은 이신영 조교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실수도 많았고 미흡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도 꾸준히 믿어주신 마주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아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정적인 조교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마음으로 낳은 자식 : 말을 향한 애정
맨 처음 기수 양성소에 들어왔을 때 이신영 조교사에게 말은 그저 ‘탈 수 있는 동물’이었다. 말이 뒷발질을 하거나 싫으면 사람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생각의 변화가 약간은 있었지만, 조교사가 된 후 느낀 생각의 변화와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고.
‘듀마’ 이야기는 이러한 이신영 조교사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인간극장 촬영 당시 경주로 출장을 직접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경주로에 들어서던 말이 그 경주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망아지 ‘듀마’였다. 아기의 걸음마를 보듯 데뷔전부터 지켜본 ‘듀마’는 유난히 말도 잘 듣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제 걸음을 뛰어주는 그야말로 효녀였다. 매일 마방에 들어설 때면 눈곱도 떼어주고 털도 빗어주며 대화를 나눴다. “만약 제게 자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제가 비쳐 보이는데 정말 행복하게 웃고있더라고요.”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3 스포츠서울배에서 ‘조이럭키’ 등 강한 경주마들을 상대하며 다소 무리를 했던 ‘듀마’의 다리가 오크스 출전을 위해 도착한 부경에서 더욱 악화된 것. ‘듀마’의 건강을 위해 결국 출전을 취소한 이신영 조교사는 치료를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썼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좀처럼 차도가 없었고 결국 8월 15일, 과천을 떠나 목장으로 이송됐다. 씨암말로 전환돼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이신영 조교사였지만 결국 떠나는 ‘듀마’를 보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원정이나 휴양을 떠날 때면 곧잘 차에 오르곤 했던 ‘듀마’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뭔가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한사코 차에 오르려 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거부를 했다고 한다. 떠나는 울음소릴 들으며 눈물을 흘린 이신영 조교사는 진정 마음으로 말을 키우는 대모(代母)로 거듭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유난히 비싼 말들도 많고, 연일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14조와 이신영 조교사.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100승의 고지까지 넘긴 그녀는 이제 숱한 의구심들을 향한 대답을 마쳤다. 이제 그녀가 나아가는 길은 진짜 이신영 만의 발자국으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최초’를 넘어 ‘최고’를 향한 그녀의 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