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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호 기수
생년월일: 1992년 5월 27일
데뷔일자: 2013년 6월 1일
기승중량: 51kg
통산전적: 389전 47승 2위 27회
-40승 달성을 축하한다. 기록 달성의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나?
기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더욱 긴장도 되고 의욕도 생기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최단기간 40승 달성이다. 관계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이 부담과 자신감, 둘 중 어떠한 요소로 다가오는지?
아무래도 자신감 쪽이다. 그저 한 명의 기수일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가져주고 주목해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물론 부담감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기록을 세워가면서 그러한 관심에 보답한다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 의욕도 더 생기고, 그렇게 좋은 성적이 나오면서 선순환의 반복이 되는 것 같다.
-잘되는 만큼 뒷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아버지인 49조 이재은 조교보가 좋은 말을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들 말이다.
경마장의 소문이 빠르다보니 그런 이야기가 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사실 초반에는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와 지인들이 경마장에 많이 계셨지만 초반부터 좋은 말에 탈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사회는 냉철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소문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 더 좋은 말에 타기 위해서 정말 악착같이 탔다.
이제는 시간도 지났고, 솔직히 아버지가 계셔서 나쁜 점은 정말 없는 것 같다. 내 몫을 충실히 해내고 나면 아무래도 돌아오는 기회의 폭이 더 넓은 것이 사실일 테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나도 아버지가 같은 공간에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 나태한 태도로 임할 수가 없게 된다. 돌아오는 기회만큼 반대로 잘못했을 때의 여파도 크다는 것을 알기에 긴장을 놓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채찍이 항상 독려를 해주고 있는 기분이다.
-감량 기수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체중 조절에 대한 부담이 한결 덜해졌을 것 같은데?
사실 먹는 것은 –1kg 때부터 편하게 먹긴 했다. 지금은 완전히 자유로워졌지만.
-4kg 때는 정말 힘들었다. 체중 조절을 위해 수요일부터는 거의 먹질 않았고, 경주 당일에는 물 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러다보니 말을 몰 때 힘이 부칠 때가 종종 있었다. 조금이라도 먹으면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행이 감량이 점점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늘려갈 수 있었다.
-기수 대개가 감량이 없어진 후 길든 짧든 슬럼프를 겪곤 한다. 경주를 치러본 소감이 어떠한가?
확실히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그걸 느꼈던 기점이 –1kg때부터였다. 똑같은 말을 타더라도 무게를 더 많이 실으니 추입이 예전만큼 시원하게 잘 되지 않더라. 탈 수 있는 말의 범위도 한계가 생기고.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기수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
원래는 태권도를 전공으로 해왔는데 키가 크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목표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그렇게 돼버리니 막막하더라. 방황도 하고 말썽도 많이 부렸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기수를 위한 적성검사에 처음 응시해보았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떨어지더라. 또 방황하게 됐다.(웃음)
그러다 관리사 교육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당시 함께 관리사 교육을 받던 동료 형들이 때마침 기수공고가 떴다며 내게 알려주더라. 사실 기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던 차였는데 형들이 ‘넌 꼭 기수를 해야 한다‘면서 응원해 주었다. 아버지께 한 번 더 여쭤본 뒤 이번엔 체중도 6kg이나 빼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감량이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지만 형들이 끊임없이 격려와 조언을 해주며 나를 다잡아 주었다. 형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러한 기쁨들을 맛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방황을 하다 마음을 다잡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계기가 있었나?
기수 교육원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래부터 강아지와 같은 동물들을 엄청 좋아했는데 여기서 말과 어울려 지내며 순화가 됐다고 할까. 말이 워낙 순한 동물이지 않나.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레 화도 덜 내게 되고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그러다 실전에서 선배님들이 경주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많은 자극이 됐던 것 같다. 나도 저기서 말과 함께 뛰고 싶다. 그 생각이 머리에 콱 박히니까 절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태권도를 배웠던 것이 기수 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됐나?
크게 보면 같은 스포츠 종목이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다리 운동이나 복근 운동, 허리 운동 등 기본 체력을 다지는 운동을 꾸준히 해오다보니 연장선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달리기나 다릿심에서도 그렇고.
-데뷔 초반 가장 고민이거나 힘들었던 부분이 뭐였나.
너무 급했다. 마인드컨트롤을 했어야 하는데 승수를 추가하는 데에 급급했다. 추입마로 성적을 많이 내니까 주변에서는 침착하다고들 얘기해주셨는데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초반에 힘을 최대한 안배한 뒤 코너를 돌고나서 말을 직진성있게 보내는 것이 추입마 전개의 정석이다. 그런데 나는 초반에 앞말과 멀어지니까 급한 마음에 거리 손해도 많이 보고 무리를 했던 부분이 있었다. 침착해지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찬호는 추입형 말에 강하다’라는 이미지가 심어진 것 같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딱히 나쁜 점은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선행마를 안 주시는 것도 아니고 골고루 기승기회를 얻고 있으니까. 어떤 습성의 말이든 열심히 탔을 뿐이다. 좋은 점이라면 추입마를 타는 빈도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여러 변수들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실전에서 전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선택할 수 있는 예시가 다양해지고, 판단에 대한 확신도 키워갈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해 Breeders`Cup에 출전했다. 오픈 경주에 수습기수가 출전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3위까지 하고 올해는 부경 원정까지 다녀왔다. 원정을 가기 전 기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정말 설레였다. 첫 원정 경주이기도 하고 부경의 주로도 처음 가보는 거였다. 말이 부경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도 안 먹고 살이 엄청 빠졌었는데 경주날짜가 다가올수록 밥도 잘 먹고 컨디션이 급속도로 올라오더라. 괜히 우승할 것만 같은 기대가 들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KRA 컵 마일 당시의 이야기를 해보자. 게이트 안에 말들이 모두 들어왔고 신호만을 기다리는 상태에서 기계 상의 문제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약 1분에 가까운 시간이 소진됐다. ‘푸른거탑’을 비롯해 ‘퀸즈블레이드’ 등 많은 말들의 요동이 있는데.
기립 악벽이 있는 ‘푸른거탑’에게 출발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출발 위원들에게도 이를 설명하며 최대한 마지막에 말을 진입시키면 좋겠다고 어필을 했는데 당일 가보니 중간 쯤 진입하게 됐더라. 그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말이 다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출발하게 신경을 써달라고 재차 부탁을 드렸다.
말들이 다 들어오고 ‘푸른거탑’도 생각보다 얌전해 출발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데 “준비” 이후 문이 안 열렸다. 경주마들은 모두 철저하게 훈련된 아이들이라 그 “준비”소리만 들어도 뛰쳐나가야 한다는 걸 알고 시동을 거는데 그러지 못하니 난리가 날 수 밖에. ‘퀸즈블레이드’가 출발대에 부딪히며 기수의 모자 피가 벗겨지는 등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도 말을 빼라는 지시가 없었다. 결국 1분 여 동안 그 안에 갇혀있었고 ‘푸른거탑’이 뒤집히고 말았다.
-‘푸른거탑’이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말들을 출발대에서 빼게 됐다. 게다가 결국 출전취소라는 당혹스러운 결과까지 맛보게 됐는데.
허망했다. 준비도 많이 해왔는데, 무엇보다 뛰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점이 제일 속상했다. 오죽했으면 “내 말이 좀더 주목을 받는 인기마였더라도 이렇게 넘어갔을까”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당시에는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해 재결실을 찾아가 어필도 하고, 서울 재결팀에까지 문의를 했다.
-승승장구하기만 하던 이찬호의 기수 생활 중 가장 큰 타격을 준 사건이었다. 느끼는 점도 많았을 테고 영향을 준 점도 많았을 것 같다.
뛰어보지도 못하고 엠뷸런스를 탄 채 하마대로 돌아오는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부경이 나랑 안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녀와서도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마음을 추스리는 과정에서 좀 더 단단해진 것도 있고, 내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느새 데뷔 1년을 맞이했다. 좋은 점도 많았겠지만 예전보다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적어지고, 기수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외로움도 슬슬 느껴질 법한데.
원래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마저도 하나둘씩 없어지더라. 확실히 만나는 게 조심스럽다. 지난번에는 조용히 백화점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어디서 나를 봤는지 사람들이 “너 백화점 다녀왔지.”라고 묻더라. 보는 눈도 많아지고 작은 행동도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더라. 아직 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외로움이란 게 벌써 느껴지는 것 같다. 동기와 선·후배 말고는 거의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제한돼 있고. 그래도 어쩌겠나. 먹고 살아야하는데 버텨야지.(웃음)
-혹 기수생활에 있어 롤모델이 있는지.
서울의 서승운 기수와 부경의 후지이 기수를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후지이 기수는 특히 기승술 면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키도 커서 제약이 많을 텐데 그렇게 파워풀한 말몰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승운 선배는 무엇보다 남에게 최대한 방해를 하지 않으면서 좋은 자리를 찾아 전개를 펼치는 데에 탁월한 것 같다. 같이 경주를 뛰는 중간에도 느낀다. 그만큼 그 경주에 임하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하더라. 매 순간 생명을 담보로 임하는 경주이기에 남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승운 선배의 노력과 감각 등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국내 무대가 아닌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할 목표는 있나.
7월에 남아공에서 1주일간 수습 기수 대회 있다. 우선은 그걸 다녀와 봐야 해외 경마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잡힐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도전이야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는데 과욕이 아닐까 해서. 확실히 입지를 다지고 그만큼 성장한 다음 생각해볼 문제라고 본다.
-기수로서의 최종 목표는?
안 다치고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그게 전부다.
-인간 이찬호의 꿈은 무엇인가.
나중에는 어머니와 함께 커다란 가게를 차려서 함께 잘 살고 싶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한 식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게 꿈이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