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사행성 막는다’는 취지 무색, 한 창구에서만 반복 구매 공공연히
―소득세법 개정이 선결 과제
―경마에 관한 인식 개선만이 사행성 최소화할 근본 대책
한 사람이 한 경주에서 최대 구매할 수 있는 마권 금액은 10만원이라고 규정한 마권구매상한선제.
원활한 경마시행을 위한 각종 제도 중 가장 먼저 폐지돼야 할 항목인 것으로 지적된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으로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마권구매상한선제는 한국 경마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매년 경마팬과 많은 경마관계자들의 화두로 떠오르는 주제지만 아직까지 한국마사회는 제도 폐지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이번호에서는 마권구매상한선제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대안에 대해 모색해 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마사회는 승마투표 약관에 의거, 1인당 한 경주 마권구매상한선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즉, 모든 경마팬은 한 경주에서 몇가지 종류의 마권을 사든, 총 구매액은 10만원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마팬 1인당 일평균 베팅금액은 얼마나 될까?
지난 1월 인터넷 경마문화신문(www.krj.co.kr)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경마팬 1인당 일평균 베팅금액은 40만원선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5백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경마팬도 상당수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본보 제2?? 참조)
특히 2백만원에서 5백만원 사이는 전체 응답자 중 30% 가량이나 차지, 한 경주 마권구매상한선 10만원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을 단적으로 입증했다.
물론 3만원 미만으로 경마를 즐기는 건전 경마팬도 최근에는 상당수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팬들의 실제 베팅 성향과 비교할 때 마권구매상한선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일 수 밖에 없다.
경마팬들은 10만원 이상 마권을 구매할 때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한 경주 적게는 2∼3만원, 많게는 3백만원까지 마권을 구매한다는 경마팬 K씨(프리랜서, 39)는 “마권구매표에 일단 10만원이라고 표기한 후 그와같은 구매표를 여러장 작성해 창구에 내밀기만 하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특히 처음에는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마권을 구매해야 했지만 이제는 한 창구에서 연속적으로 구매표를 내밀거나, 심지어 마감 5분전 혼잡할 때에는 한꺼번에 구매표 수십장을 내밀어도 발매해 준다고 덧붙였다.
제도 시행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물론 때로는 발매원과 구매자간 이런 일 때문에 실랑이도 벌어지지만 길게 줄서서 마권 구매를 기다리는 다른 경마팬들의 원성으로 발매원은 결국 규정에 어긋나는 것인줄 알면서도 마권을 찍어낼 수 밖에 없다.
상한선을 무시하고 수십장의 마권을 구매하는 경마팬이 있는가 하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액 구매자들은 발매 마감시간이 다 되어도 발만 동동 구른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은 매주 경마일마다 거의 모든 지점과 경마장 본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마권실명제가 이뤄지지 않는한 발매원도, 마사회 직원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왜 마권구매상한선제 인가?>
―경마 과열로 사회의 비판적 시각 빗발쳐
―건전 경마 풍토 정착 위한 ‘고육지책’인가 임기응변식의 ‘미봉책’인가
그럼 왜 이같은 불합리한 제도가 ‘뜬금없이’ 생겨난 것일까?
마권구매상한선제가 태동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마권구매상한선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84년 9월이다. 경마과열 방지가 제도 도입 취지였으며 이에 따라 그동안 무제한이었던 마권구매금액은 1인당 50만원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듬해인 85년에는 상한선이 30만원으로 대폭 축소됐으며 또다시 86년에는 20만원, 그리고 94년 들어 지금의 10만원으로 제도가 수정됐다.
마권구매상한선을 정했던 당시 정부의 논리는 경마산업 과열에 대한 우려였으나 경마산업이 급격한 성장을 이룬 시점은 과천시대 이후임을 감안할 때, 제도 시행이 그다지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경마산업의 사행성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과도한 조치였다는 것이 많은 경마관계자들의 평가며, 심지어 조세학자들까지도 이 부분에 관한 조세체계의 정비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 어디까지 진행됐나>
―한국마사회, 기타소득세 관련 소득세법 개정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
―소득세법 개정되면 한국마사회 승마투표약관도 개정해야
마권구매상한선제에 폐지에 대해 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경마시행체인 한국마사회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마사회 내 승마투표약관의 개정만으로는 제도 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선 기타소득세와 관련된 소득세법이 개정돼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고수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소득세법 84조는 기타소득세를 명시한 것으로 동법에는 과세최저한을 “승마투표권(마권) 권면표시액 합계액이 10만원 이하면서 동시에 단위투표금액당 환급금이 단위투표금액의 1백배 이하일 때”라고 규정돼 있다.
즉, 1백배를 초과한 마권은 물론, 권면표시액 자체가 10만원을 넘는 마권의 경우는 배당률에 관계없이 기타소득세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어차피 기타소득세가 총 환급금을 상대로 일정 기준보다 초과했을 시에 징수하는 것이라면 마권구매액이 20만원일 경우에는 50배만 적중해도 10만원으로 1백배를 적중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과세최저한의 완화가 필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1백배 초과, 10만원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기타소득세 적용 기준이 완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마권구매상한선이 폐지된다면 소비자에게로 돌아가는 세부담이 그만큼 가중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어 마사회로서는 섣불리 제도 폐지에 관한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이에 대해 조세 관계자들은 “마사회 승마투표약관에 10만원이라는 상한선이 명시돼 있어 과세최저한으로 삼은 것이며 1백배라는 기준은 (마권발매로 인한 환급금이) 우연적으로 발생한 소득이라는 전제 하에 복권과 마찬가지로 마권에도 암묵적인 상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선진 경마시행국인 미국의 예를 든다면 국내의 기타소득세와 같은 개념인 미연방소득세는 그 기준이 5천달러(약 6백50만원) 이상이면서 3백배 이상을 적중했을 때 부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내 현실에서는 마권구매상한선 폐지와 더불어 조세체계상 기타소득세의 적용 배율을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렇듯 관련 세법 개정이 선결돼야만 구체적인 승마투표약관도 개정될 수 있어, 현재로선 마사회 내에서조차 논의가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와 관련 국회의원들의 제도 개혁 의지 필요하다>
―소득세법 개정 위한 정부 법안 마련이 농림부 역할
―건전 레저문화와 생산육성 발전을 위한 경마산업의 역할 제고 절실
결국 마권구매상한선제 폐지를 위해서는 경마산업 관련 조세체계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조세행정자들은 현재 경마산업에 부과되는 조세체계의 문제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으며 차후 이에 대한 재정비 작업이 따를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합법적 도박을 시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부정적 시선 속에서 한국마사회가 적극적으로 제도 수정 및 폐지를 정부에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당장 올 해 안으로 관련 세법 개정을 위한 절차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국마사회 제청 형식의 민원법안 마련보다는 정부입법이나 의원입법이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즉, 마사회의 정부 관장부처인 농림부가 직접 이 문제에 대해 경마 각계 및 관련 단체의 의견수렴을 거친 후 국회에 세제개편안을 제출하거나, 관련 국회의원이 법안을 마련하는 것 등을 고려할 수 있겠다.
정부는 5월에 소득세법 개정안 제출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며 9월에는 국회가 법안 개정 작업에 돌입한다. 이 시기를 충분히 활용해 경마관련 세제의 적절한 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며 차후 마사회는 자체 약관 개정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경마산업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이로 인해 해마다 경마 매출액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며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외부의 시각은 분명 왜곡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경마산업이 건전 레저문화 발전과 농축산 생산육성 부흥을 위해 얼마만큼 기여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경마팬과 관계자도 상당수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경마관련 정책 결정에 있어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혹은 ‘정부에서 결정하는대로’식의 안이한 대처는 악순환의 되풀이만을 초래하고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
선진 경마시행을 위해서라도 후진적 제도인 마권구매상한선제는 하루빨리 폐지돼야 한다.
(다음호에서는 ‘경마산업에 대한 색안경을 벗자’를 게제한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