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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앞두고 만난 전재식 코치는 훈련을 위해 나서는 출근길이 아직도 설렌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애물 비월에서 마장마술로 종목을 전향하게 됐지만 이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승마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승마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승마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승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승마인은 깊이 있는 승마의 세계를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클래식걸’ 그녀와 첫 만남
2010년 3월경 각종 승마지원 사업에 필요한 마필을 구입하기 위해 말산업 선진국 독일로 마필검수 출장을 갔다. 기존의 선수단이 사용할 마필만 구입하는 단일목적이 아니라 각각 부서에서 다른 용도로 활용할 여러 마리의 마필들을 검수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총 6명의 검수 인원이 꾸려질 만큼 중요하고 큰 규모의 검수였다.
나는 2명의 선수와 함께 선수단을 대표해서 검수를 진행했는데 우리의 주목적은 그해 11월에 있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종합마술 경기에 출전할 마필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각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 초보자·승마 지도자 강습용 말 검수를 도와야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일반 강습용 마필을 검수하기 찾은 어느 승마장에서 우연찮게 Classic Girl(이하 CG라 칭함)을 만나게 됐다. 당시 CG는 아주 예쁜 옷(털)을 입고 있었고 정말 착하게 보였다. 또한 모가 난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장애물 비월도 곧 잘 했다. 나는 녀석을 검수를 위해 동행한 승마활성화팀 동료에게 적극 추천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함께 간 모든 동료가 외모가 특출 난 CG를 똑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CG는 우리나라에 초보강습용 마필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와 다른 두 명의 선수는 독일에 남아서 아시안 게임 준비를 했고 그렇게 클래식걸과는 각자 다른 목표를 위해 나가고 있었다.
30년 장애물 비월을 뒤로하고 마장마술로 전격 전향
광저우 아시안게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1월 경 우리 선수단의 유일한 마장마술 선수인 C선수가 개인적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C선수가 빠지면서 우리 선수단은 마장마술 선수가 한명도 없게 됐고 C선수를 위해서 구입한 말 Ricco는 졸지에 주인을 잃은 신세가 됐다. 그리고 Ricco 녀석을 운동을 시킬 사람이 없게 됐다. C선수 대신 다른 선수를 영입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박재홍 감독님의 권유로 나는 30년 장애물 선수를 포기하고 우리 팀의 유일한 마장마술 선수라는 부담스러운 짐을 떠안으며 마장마술로 전격 전향을 하게 됐다.
생소한 마장마술, 까다로운 리코와의 동행
30년 말을 탔어도 마장마술은 나에게는 생소하게만 다가왔다. 더군다나 C선수가 타던 Ricco란 녀석은 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녀석을 타던 초기에는 마장마술에 대한 나의 미숙함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Ricco의 움직임이 워낙에 크고 웅장했던 것도 한몫했다. 녀석의 움직임은 곧 나에게 전해졌고 그리 크지 않은 나의 몸은 녀석의 큰 움직임을 받아내느라 안장 위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튕기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녀석들에 비해서 Ricco를 타는 게 유독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의 전생의 업보(?)려니 체념하고 성심을 다해 함께하고 있다. Ricco는 지금도 역시 운동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경기에 출전하면 언제나 우수한 성적을 내곤 하니 녀석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Dark Beauty와 작별
Ricco는 나의 에이스 말이었고, Ricco보다 능력이 조금 떨어지고 나이가 많은 Dark Beauty는 나와 Ricco의 지원 말이었다. Dark Beauty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능력이 우수하지 못하다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노화의 진행 속도가 다른 말들에 비해서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Dark Beauty 나이 정도의 보통 말들은 건강할 뿐 아니라 현역으로 대회에 활발히 참가하는데 녀석은 그렇지 못했다. 더군다나 활력과 총기를 잃어가는 속도가 느껴질 정도로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와 Dark Beauty의 훈련은 언제나 충분치 못했다. 경기에 참가해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기보다는 참가종목의 코스를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Dark Beauty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양쪽 눈을 모두 실명하게 됐고 잠시 함께한 추억을 남겨두고 영원히 슬픈 작별을 해야만 했다.
다시 만난 Classic Girl
Ricco가 아주 우수한 마필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Ricco 한 마리만으로는 운동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한 운동을 채우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우리 팀(당시 승마훈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강습용 마필들 중에서 마장마술을 가르칠 마필을 찾아보았다. 강습 마필들 중에는 우수하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수입되어올 때 나름 마장마술을 배워서 마장마술 성적을 보유하고 있는 마필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그 마필들을 며칠에 걸쳐 시승을 했지만 마음에 와 닿는 말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CG가 생각났다. 그날 마침 당시 교관양성팀에 교관 보조로 있는 K군이 CG를 기승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CG는 최악의 몸 상태를 하고 있었다. 한 달 전에 뒷다리에 생긴 찰과상을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해서 봉와직염에 걸렸고 부종이 너무 심해서 운동을 하지 못하다가 서서히 회복 운동 중이었다.
당시 CG의 모습은 마치 돈키호테의 로시단테 모습 같았다. 배불뚝이에 다리는 코끼리 다리만큼 굵게 부어올라 있었고 운동을 하지 못해서 모든 근육이 사라져 엉덩이는 뾰족하게 솟은 산처럼 보였다.
그러나 CG의 그윽하고 깊은 눈빛은 나에게 야릇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CG의 걸음은 우아하지 못했지만 일정한 리듬은 유지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수장대(말을 물로 닦는 곳)에 묶여있는 동안 사람을 대하는 CG의 순종적으로 보이는 깊은 눈과 침착한 행동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당시 CG를 책임지고 있던 B교관과 A교관에게 며칠 동안만 내가 운동을 시키겠다고 부탁을 하고 CG를 시승하였다.
‘첫눈에 반했습니다’
CG를 시승하면서 느낀 첫인상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인내력이 강하다는 거다. 그리고 아주 고지식하고 급한 성격이라는 걸 느꼈다. CG는 첫 만남부터 아무 내숭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다른 말에 비해 아주 정확하고 상당히 규칙적인 걸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점과 다른 말보다 돋보이는 총명함과 순종적인 성격이었다. 그 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위에 말한 내용만으로도 CG를 선택할 이유는 충분했다. 승마 강습용 마필 중에 다른 마필들도 제법 우수했지만 나는 이미 눈에 콩깍지가 쓰였기 때문에 다른 말에게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혹자들은 나에게 어떠한 계기로 CG를 타려고 마음먹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멋진 답변을 하고 싶지만 실망스럽게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CG에게 다른 말과 다른 총명함을 느꼈고 걸음걸이가 규칙적이고 좀 더 정제(整齊) 되어 있어 그냥 끌렸다고나 할까? ‘첫눈에 반했습니다’란 말로 멋진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교정교열 = 황인성 기자
※ 전재식 코치가 걸어온 길
△경력 - 2014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
2010 제16회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승마 국가대표
△수상 - 2014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단체전 금메달
2010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 장애물 개인전 은메달
2006 농림부장관배 전국승마대회 단체전 우승
2006 KRA컵 전국승마대회 국산마경기 3위
2004 한국마사회장배 전국승마대회 단체전 1위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