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말들의 교배 이야기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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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이Ⅱ>

교배 시즌 막바지에 일어난 사건
교배 시즌도 얼추 끝나갈 무렵 조그만 사건이 일어났다. 처음 이 사건이 터졌을 때는 ‘마동이’ 녀석 드디어 원을 풀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씨암말 중에 한 마리가 최종 교배에 실패했던 것이다. 최종 교배 시기가 끝나면 다음해에 다시 교배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그 씨암말의 발정은 난포의 크기가 최대로 활성화돼 있을 만큼 완벽했다. 하지만, 겁이 너무 많아 교배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게 관계자가 전하는 실패 원인이었다. 씨수말이 올라타려고 하면 꼬리를 감추고 금방이라도 뒷발을 차려고 했다. 실제로 뒷발질하는 모습도 보여 씨수말을 보호하기 위해 몸에 감아 놓았던 보호 장구까지 끊어 놓기도 했다. 교배를 시킬 때는 만약의 경우 대비해 씨암말의 몸에 씨수말 보호를 위한 장구를 채운다. 이를 끊어 놓았으니 녀석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고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너무 저항이 세서 교배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새벽부터 힘들게 수송하고 또 모든 검사를 마치고 잔뜩 기대를 하던 난 너무 허무했다. 모든 말이 수태되고 그해 마지막 남은 씨암말이었는데 끝까지 배신을 하다니! 어쩔 수 없이 녀석을 차에 태우고 목장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이대로 녀석을 방치하면 다음 해에도 교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결심을 하게 됐고, 마장에 도착한 난 사장님께 허락을 얻어서 ‘마동이’ 녀석과 문제의 씨암말을 한 방목장에 합사를 시키기로 결정을 보았다. 드디어 ‘마동이’ 녀석의 고행길에 화룡점정을 찍는 날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두 가지였다. 문제를 일으킨 씨암말이 올해 한 번 경험을 해서 다음 해에는 쉽게 교배에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다음은 둘이 교배가 되어서 얻어지는 망아지가 있고, ‘마동이’ 녀석에 대한 위안이었다.

두 녀석의 합사를 결정하다
이렇게 둘의 합사를 결정하고 합사를 시키자마자 ‘마동이’는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이 문제를 일으킨 녀석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청하며 달려들었다. 이미 저녁 늦게 목장으로 돌아온 터라 그 애타는 모습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우리는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왔고 합사된 둘은 같은 방목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됐다. ‘마동이’ 녀석에게 그 밤이 짧았는지 아니면 길고 긴 하룻밤이 되었는지 목장으로 출근하는 내게 궁금증으로 다가왔다. 궁금증을 한마음 가득 안고 멀리 보이는 둘만의 방목장을 바라봤다. 문제의 씨암말은 늦게 찾아오는 봄의 전령인 파릇파릇하게 눈을 뜨는 새싹을 여유롭게 뜯어먹고 있었고, ‘마동이’ 녀석은 그런 모습을 방목장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난 얼른 주차를 하고 바삐 둘만의 방목장으로 다가갔다. ‘마동이’ 녀석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자식! 소원 풀었니?” 혼잣말을 하며 녀석의 상태를 살펴본 난 놀라고 말았다.

흠씬 두들겨 맞은 ‘마동이’의 첫날밤
‘마동이’ 녀석은 어젯밤 그 말괄량이에게 작업을 걸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한동안 ‘마동이’ 녀석의 몸은 날이 갈수록 말라만 갔다. 그리고 면역력도 점점 약해져 상처도 한동안 낫질 않았다. ‘마동이’ 녀석은 근 6개월가량을 그 악몽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허한 모습을 보였다.

‘마동이’가 남긴 것
‘살신성인’의 자세라고 해야 할까? 온몸을 바쳐서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 녀석 덕분에 다음 해에 그 말괄량이 씨암말은 우리 말 중에 첫 번째로 임신을 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마동이’ 녀석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신의 가호가 ‘마동이’ 녀석과 늘 함께하길...

▲합사를 시키자마자 ‘마동이’는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이 문제를 일으킨 녀석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청하며 달려들었다. 다음날 우리가 본 ‘마동이’ 녀석의 모습은 어젯밤 그 말괄량이에게 작업을 걸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모습이었다. 1991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인퍼노’와 함께.

<장극북>

‘정글북’ 아니라 ‘장글북’이다. 아마도 녀석의 제대로 된 이름은 ‘정글북’이 맞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목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고향이 대구였기 때문에 ‘정글북’이라 부르지 않고, 언제나 ‘장글북’이라 불렸다. ‘장글북’이란 호칭이 ’정글북‘보다는 어감상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의 덩치는 크지 않고 아담했다. 성격도 온순하고 걸음걸이는 아장아장 걷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장글북’이란 장난기 섞인 이름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다. ‘장글북’은 내가 이곳 두미울로 직장을 옮기고 아주 수월하게 임신을 시킨 녀석이다. 속도 썩이지 않고 잘 따라 줬던 녀석이었다. 대부분의 녀석은 한두 번씩은 말썽을 부렸는데 녀석은 너무나 수월하게 임신에 성공했다.

빠르게 임신시키려는 이유
녀석의 망아지는 다음 해에 다른 망아지들보다 며칠 아니면 한 달 이상을 빨리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망아지들보다 확률적으로 유리하게 자라날 것이다. 망아지들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다. 같은 연도에 태어나면 중요한 몇 경주를 같이 뛰기 때문에 한 달의 차이는 경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나 완전하게 성마가 되어서 경주에 출주하는 것이 아니라 2세가 되는 해에 채 완전히 성숙하기도 전에 경주에 출주를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 이런 이유들로 말 생산 목장에서는 가능한 임신을 빨리 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미소 속에 ‘장글북’
녀석은 목장에서 몇 안 되는 첫 번째 그룹으로 임신에 성공했으니 우리로서는 여간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임신 후에도 몸가짐을 항상 조심했다. 방목된 녀석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 다른 녀석들에 비해 움직임이 많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먹성도 좋아서 몸이 많이 불었고 특히나 배가 많이 나와서 임신 전에 아장아장 걷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큰 배를 두 손으로 모아 잡고 기우뚱 기우뚱거리며 걷는 것 같아서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굴에 잔잔하고 평화스러운 미소가 자연스럽게 머금어졌다. 녀석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녀석이었다.

말들은 겨울을 좋아해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진부의 겨울은 마치 살을 에는 듯하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마방 복도에 잠시 서 있으면 얼굴이 얼고 귀가 얼고 콧물도 얼고 바람과 직접 부딪치는 피부는 추운 바람에 금방이라도 얼어붙어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나와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매서운 겨울 추위가 무서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말들은 추운 겨울을 잘도 버텨주었다. 날이 춥고 추운 바람이 불면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좁은 마방 안에서도 겅중겅중 뛰기 일쑤였다.

▲우리는 매서운 겨울 추위가 무서워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말들은 추운 겨울을 잘도 버텼다. 날이 춥고 추운 바람이 불면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좁은 마방 안에서도 겅중겅중 뛰기 일쑤였다. 1995년 춘천승마장 ‘풍년’과 함께.

새벽에 걸려온 전화
추운 겨울이 지겨워지기 시작할 무렵, 녀석의 배는 곧 터질듯하게 부풀어 올랐다. 커다란 배로 인해 허리는 지탱하기가 힘들어 보일 정도였고, 아래쪽으로 축 처져서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했다. 녀석의 유방은 크게 심호흡을 해서 열서너 번 정도 불어놓은 풍선만 하게 사타구니에 예쁘게 올라와 있었고 이따금씩 하얀색의 젖이 유두에 맺히기도 했다. 녀석의 상태로 보아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새 식구가 모습을 보일 것이다. 녀석이 새 식구를 순산하기를 기원하며 오늘내일 출산 날짜를 손꼽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난 저녁 늦게까지 녀석의 동태를 살피다가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 좀 해 달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 맡기고 깊은 잠을 잘 시간인 새벽 3시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난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고 상대편 이야기도 듣지 않고, “알았어. 갈게”라고 대답하며 옷을 전광석화 같이 갈아입고 목장으로 향했다. 눈이 참 많이 내렸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