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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이미지 하락에도 한 몫 시행체는 억울하다
현재 한국경마 최대의 화두는 두 가지, 매출액 하락과 부정경마로 인한 이미지추락을 꼽을 수 있다. 최근 이런 상황에 대해 경마관계자들은 ‘한국경마가 위기설’을 거론하며 대책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2002년 7조원을 돌파(약 7조6천억원)하며 최고점을 기록했던 한국경마 매출액은 2003년엔 6조1천억원을 기록하며 19.3%의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 매출액 하락에 대해 많은 경마관계자들이 다각도의 분석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사설경마(속칭 맞대기)의 난립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사설경마는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마약과 같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매출액 하락뿐 아니라 패가망신하는 경마팬들을 토해내며 폭력조직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는 사설경마, 그 실체는 무엇이고 대책은 없는지 집중분석해 보았다.
【특별취재팀 horsepaper@krj.co.kr】
-사설경마(속칭 맞대기)란 무엇인가?
사설경마는 일반 경마팬들에겐 ‘맞대기’란 단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설경마는 한 마디로 “마권을 한국마사회가 아닌 특정개인에게 구입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사설경마는 대부분 폭력조직에 의해 운영된다. 조직구성은 물주가 있고 그 밑에 총책, 행동책, 모집책, 심부름꾼 등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일부 조직에서는 손님을 데려오면 일정의 수수료를 주는 브로커까지 고용하고 있다.
사설경마 조직원들은 고액베팅 경마팬들을 대상으로 이른 바 “손님을 받는” 작업을 펼친다. 이들은 본장과 지점에서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경마팬들을 대상으로 경주 출발 직전까지 한 번에 고액으로 베팅할 수 있는 편리함과 비적중 시 베팅액 10% 이상의 개평(속칭 뽀찌)을 준다는 달콤한 미끼를 내세워 포섭작업에 나선다.
마권구입은 전화를 통해 번호와 금액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사설경마 전용 하우스에서 직접 조직원에게 마권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사설경마는 한 구멍 기본금액이 10만원이고 대부분 100만원대를 가볍게 넘어간다. 마권 구입 시 몇 장을 끊는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여기서 한 장은 10만원을 의미한다.)
전화로 사설마권 구입 시 입금 문제는 계좌이체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경주 전 입금한 금액 내에서 마권을 구입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돈을 전혀 입금하지 않고 신용으로 마권을 구입할 경우 경마일 다음날까지 베팅한 금액을 입금하도록 되어 있다.
환급은 경주가 끝나고 나면 바로 마권을 구매한 각 개인들의 계좌로 이루어진다. 적중자의 경우 마사회 배당판에 따라 환급금을 지급하고 비적중자의 경우 약속한 개평을 지급한다.
사설경마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고 대부분의 이익금은 폭력조직의 검은 돈으로 흡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설경마 한국경마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사설경마의 규모에 대해 대부분의 경마팬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 소액베팅을 하는 경마팬들은 사설경마에 접근할 이유가 없고 고액베팅자들 중에서도 사설경마를 이용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란 쉽지 않다. 막연하게 여기저기서 사설경마 검거 뉴스가 흘러나오고 주위에서 들리는 소문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시장이 크다고 느끼는 정도가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현재 사설경마의 규모는 한국경마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3년 마사회 매출액이 약 6조 1천억이었는데 사설경마 규모는 이미 한국경마 매출액 50% 수준을 넘어서 70-80%까지 왔다는 것이 사설경마 전문가의 분석이다.
사설경마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8월을 전후해서다. 각 폭력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설경마에 너도나도 손을 대기 시작했고 한국마사회의 매출액 급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사설경마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면 단속건수가 확연히 많아졌고 대부분의 폭력조직 검거 뉴스에 사설경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의 폭력조직이 수백개에 달하고 사설경마 한 조직이 경마일 하루에 10억 이상을 움직인다고 볼 때 그 매출액을 가늠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사설경마가 한국경마 매출액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사설경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사설경마의 심각성은 각종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2003년 한국마사회 사설경마 단속팀이 적발한 사설경마 건수는 총 20건, 이중 서울경마공원 본장에서 8건, 지점에서 12건을 단속했다. 또한 적발된 사설경마 조직원 중 57명이 구속되었고 173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실제 단속의 어려움 때문에 증거를 잡고도 적발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헤아린다면 사설경마의 사례는 더욱 많아진다.
눈썰미가 있는 경마팬들이라면 서울경마공원 본장이나 지점 한 구석에서 전화로 수십장의 마권을 구입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명이 몰려 한 사람에게 마권 번호와 금액을 얘기하는 경우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설경마를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본장과 지점뿐만 아니라 일부 사설경마 조직 중에는 오피스텔이나 사무실을 개조해 사설경마 전용하우스를 만들어 놓고 손님을 받는 경우까지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 준다.
-사설경마 파멸로 가는 특급열차
사설경마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사설경마가 마사회 매출액 급감의 주원인이기 때문에 근절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사설경마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경마팬 당사자”라는 점에서 사설경마의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근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다.
일반 경마팬들의 경우 사설경마에 대해 마사회에서 베팅하는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건 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출발 직전까지 고액의 마권을 전화 한 통으로 구입할 수 있고 비적중시 10% 이상(최근엔 경쟁이 붙어 30%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의 개평을 지급한다. 거기에 신용으로 구입하고 월요일 입금하는 편리한 시스템까지 마사회에서 홀대 당하는 고액베팅자들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설경마 시스템에는 ‘교묘하고도 심각한 함정’이 숨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설경마를 접하게 되면 고액베팅을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전화 한 통으로 또는 말 한 마디로 쉽게 마권을 구입하는 방식은 현금각각을 마비시킨다. 이런 현상은 카지노에서 현급을 칩으로 교환했을 때 금전감각이 마비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특히 어느 정도 안면을 익히고 신용이 있는 팬들의 경우 계좌이체로 돈을 입금하지 않고도 마권을 구입할 수 있는 선구매(경마일) 후입금(월요일)을 애용하는데 이 시스템이야말로 치명적인 독약과 같다. 돈이 없는 데도 무리하게 고액 베팅에 나서고 결국 돈을 못 갚아 폭력조직에 협박을 받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돈을 잃으면 자제력을 끝까지 유지하기 어려운 경마의 특성상 현금이 없어도 고액의 마권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사설경마는 한 번 말려들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용돌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사설경마를 통해 마권을 구입할 경우 적중하고도 환급금을 못 받을 수 있다. 일단 상대는 폭력조직이고 경마팬은 개인인 이상 조직에서 마권적중자에게 환급금을 주지 않을 경우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실례로 한 경마팬은 사설경마를 통해 상당한 돈을 잃다 고배당을 적중해 고액의 환급금을 받아야 되는 상황에서 사설경마 조직 자체가 사라져(속칭 잠수를 탄다고 한다) 큰 금전적 손실을 입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사설경마 구매자는 어떤 법적인 보호도 못 받는다. 또한 사설경마를 통해 마권을 구입하는 경마팬의 경우 범법행위로 인정돼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내지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마지막으로 사설경마의 이익금은 대부분 사회악으로 자리잡고 있는 폭력조직의 검은 돈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돈은 폭력조직의 자금원 역할을 하고 폭력조직과 연계된 정치권이나 비리 공무원들에게 상납돼 부정의 검은 고리를 만들어 낸다. 사설경마가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설경마 정부, 유관기관의 협조 절실
사설경마를 단속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알던 사법권이 없는 한국마사회는 검찰, 경찰의 협조 없이는 사설경마 조직을 단속할 수 없다.
사설경마를 현행범으로 적발할 수 있는 날은 경마일인 토, 일요일이다. 검찰, 경찰들이 자신이 쉴 수 있는 휴일에 단속하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이러다 보니 충분히 단속할 수 있는 사설경마 조직을 안타깝게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증거를 잡아도 사법기관의 협조가 있어야만 사설경마 단속이 가능한 현재의 마사회 입장에선 정부와 유관기관, 검찰, 경찰 등의 유연한 자세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설경마 최선의 대책, 차선의 대안
①강력한 단속 : 일단 사설경마를 완벽하게 근절할 순 없다. 하지만 강력한 단속으로 사설경마의 피해를 대폭 줄일 순 있다. 2003년 사설경마 단속 전담인원은 6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4년엔 조직개편을 통해 사설경마 단속팀(가칭)이 생겨났고 인원도 9명으로 충원되었다. 마사회의 단속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최신식 기기를 도입해 좀 더 효율적인 단속에 나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어 강력한 단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다.
②마권상한제 폐지 : 사설경마 이용자 대부분이 마사회에 가장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이 바로 마권상한제다. “10만원 짜리 마권을 여러 장 구매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어가면서 왜 한 번에 고액의 마권을 사는 것은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팬들을 못 믿어 마권상한제를 풀지 않는 것은 경마팬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부기관의 오만일 수밖에 없다. 마권상한제는 분명히 순기능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사설경마를 줄이기 위해선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법이다.
③VIP고객 유치 : 최선의 대책이라고 할 순 없으나 고액베팅자들을 VIP로 적극 유치하는 것도 사설경마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다. 사설경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고액베팅자들(소위 오대)을 대거 흡수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액베팅을 하는 팬들 입장에선 경마를 완전히 끊지 않는 이상 베팅액을 줄이기 쉽지 않다. 기업과 고객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매출액의 일등공신인 고액베팅자들이 홀대 당하는 이상한 상황이 현재 한국경마의 현실이다. 사설경마로 등을 돌린 고액베팅자들을 다시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들을 VIP 고객화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④북메이커 도입 : 현재 영국을 비롯해 홍콩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북메이커 도입도 사설경마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도 있지만 한국마사회는 경마시행에 전념하고 마권발매는 민간기업에 이양하는 방법도 연구해 볼 수 있다. 사설경마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방법도 이제는 서서히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봉환 과장(한국마사회 사설경마 단속과장) 인터뷰 “사설경마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사설경마 단속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김봉환 과장은 사설경마를 “파산과 가정파탄,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단언했다. 김 과장은 실제로 제도권 경마보다 사설경마 피해액이 훨씬 크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주위 사람들은 경마를 하다 망했다고 하면 시행체인 마사회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 억울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사설경마 단속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맡고 있는 김봉환 과장은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지만 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최신시설 도입도 예정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사설경마 단속에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검찰, 경찰의 관심과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봉환 과장은 “경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설경마 최대의 피해자는 경마팬 당사자입니다. 사설경마 때문에 파산한 후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현장에 있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피해자들의 경우 안타까운 사연이 많습니다. 사설경마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봉환 과장은 경마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2004년 사설경마와의 전쟁에서 꼭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경마팬들을 위해서 사설경마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