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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주요 선진국의 경마산업은 한 치 앞을 예단하기 힘든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희망으로 사상 최악의 위기를 감내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경마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영국 등은 경마구조의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통해 오늘의 위기를 미래의 기회로 바꾸겠다는 희망의 끈을 동여매고 있다.
2010년 세계경마계는 무엇을 준비하고 설계하고 있는지 주요 국가의 분위기와 전망을 담아본다. (편집자주)
사업의 다양화로 활로 모색
세계 경제위기의 진원지 미국의 경마산업은 경제상황 만큼이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 한 해 총 마권매출규모(122억 달러)는 전년대비 -10%를 기록하며 13년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또한 북미의 경마장이 대부분 민간기업 혹은 주정부에 의해 영리목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 속에서 마권매출의 급격한 하락은 기업의 파산과 경마장의 매각을 야기시켰다.
곤경에 빠진 미국의 경마산업은 이제 더 이상 경마베팅 사업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사업의 다양화 즉, 슬롯머신 사업과 인터넷 베팅을 통한 활로 찾기에 역점을 두고 있다.
美 최대 경마회사 중 하나인 처칠 다운즈(Churchill Downs Inc.)는 그러한 시도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처칠 다운즈, 페어 그라운즈 등의 굵직한 경마장을 소유하고 있는 처칠 다운즈社는 게이밍 사업을 통해 전년대비 4.8%의 매상 증가치를 나타내 대부분의 경마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처칠 다운즈의 지난해 마권 매출은 전년대비 8.8%의 감소를 보였지만, 경마장내에서 상설 운영되고 있는 슬롯머신과 인터넷 베팅의 매출이 전년대비 무려 73.5%의 증가세를 보인 덕택이다. 처칠 다운즈社 측은 올해 3월내 캘더 경마장에도 슬롯머신을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처칠 다운즈의 사업 다각화에 고무된 여타 경마장들도 속속 게이밍 사업 참여를 선언하고 있다. 최근에는 벨몬트 파크, 애퀴덕트 경마장을 운영하고 뉴욕주 정부도 경마장내 슬롯머신 도입을 결정하였으며, 특히 뉴욕 주 정부측은 슬롯머신을 자체 운영하고 있는 처칠 다운즈와 달리 사업 파트너를 통한 운영을 계획중이다. 이미 미국내 몇몇 경마장들은 사업 파트너를 선정해 슬롯머신을 운영하고 있는데, 팬 내셔널 게이밍사, 델라웨어 노스사, 라스베가스 MGM그랜드 등이 대표적인 업체로서 이들은 수익의 7-8%를 경마기금으로 환원하고 있다.
소액 베팅팬과 젊은 층을 끌어들이려는 노력
미국내 대부분의 경마장은 오래전부터 고액베팅 고객을 위한 리베이트 제도를 암묵적으로 시행해왔다고 한다. 여기서 리베이트란, 고액 베팅을 한 경마 고객의 손실을 조금이나마 보전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2000년대초 만하더라도 이러한 리베이트 제도가 고액베팅팬을 유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된 사실이지만, 경기침체로 경마베팅 사업이 급격한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지금에는 더 이상 고액베팅팬의 유인책이 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북미의 경마장들은 거꾸로 소액베팅팬과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자구책을 통해 불황타개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필라델피아 경마장에서 새롭게 발매를 개시한 “123마권”(123racing bet)은 소액베팅팬과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23마권은 높은 배당금에 비해 확률이 극히 저조한 “Pick4”와 “Pick6”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지정된 6개경주의 1,2,3위마를 예측해 적중할 때 마다 포인트를 얻고 경주 종료후 합계 포인트가 많은 고객 순으로 환급금이 정해지는 방식이다. 만약 특정 경주에서 적중하지 못했더라도 나머지 경주에서 적중할 경우 환급금을 받을 수 있는 승식이기 때문에 경마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샘 휴스턴 경마장에서는 슈퍼펙타(Superfecta: 4쌍승식)의 최저 구매액을 10센트로 크게 낮춘 이후로 30%이상의 매출신장을 보인 것도 주목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경마장의 슈퍼펙타 최저 구매액은 2달러로 보통 4-5장 이상 구매를 하게 되면 10달러가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소액 베팅팬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착안, 최저금액을 과감히 낮춘 것이 매출신장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토트(Tote)사가 지난해 7월부터 7개경주의 우승마를 적중하는 방식의 “슈퍼7”마권을 도입, 엄청난 배당금의 매력으로 소액 베팅팬을 끌어들인 것을 비롯해 켄프턴 경마장과 울버햄튼 경마장은 고액의 입장료를 20% 가량 인하한지 두달 만에 입장객수가 종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정면돌파를 선언
슬롯머신의 설치, 서비스의 개선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 영국의 경마산업은 위기극복의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경마산업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통계치를 보면 그 여파가 크지않은 상황이다. 경마산업 지원금(경마보조금)은 오히려 2008년과 비교해 늘어났고, 입장객수와 상금도 현상을 유지했다. 여기에 영국 정부는 올해부터 부가가치세 제도를 개정하여 생산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종전 경주마 거래시 생산자(판매자)측에서 부담하던 부가세를 구매자측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하여 영국 경주마 생산업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영국 마권세부과위원회(Levy Board)측은 2011년 영국경마 매출규모는 현재의 70%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관계자들 역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영국 경마계는 본질에 충실한 정면돌파 책으로 대응 마련에 있으며, 여기에는 경마시행 주체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지난해 6월 영국의 생산자들은 “레이싱 포스트 1세마 보너스”라는 제도를 마련, 1세마 경매를 통해 구매된 말이 2010년부터 시행되는 2세 미승리마 경주에서 우승할 경우 상금 1만 파운드를 부가상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유력 경마지 레이싱 포스트에 의해 제안된 “레이싱 포스트 1세마 보너스” 기획안은 생산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으며, 여기에 투입되는 상금일체는 생산자들이 각출한 기금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그리고 마주들 역시 최근 기업들의 스폰서가 크게 줄어들게 되자 기금마련을 통해 ‘레이싱 엔터프라이즈’라는 법인 설립, 경주상금을 지원하는 자조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국 마주협회 회장인 폴 딕슨 마주는 “마주들의 적자규모가 지난 한해만 4억 3000만 파운드(한화 7950억 원)에 달하고 있지만, 마주의 지출이 곧 경마산업의 원동력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위기 일수록 최대 투자자인 마주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영국 경마 통괄기구(BHA)는 미국의 브리더즈컵 챔피언쉽 시리즈에 버금가는 대대적인 경마축제 개최를 논의중에 있다. 내년부터 4월부터 9월까지 평지 및 장애물 경주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고 전 세계 건각들을 초청해 유럽판 “브리더즈컵”으로 발족시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보다 질 높은 경주 시행으로 팬들을 끌어들여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영국 경마종사자들은 영국경마가 아직은 충분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한 산업이라고 스스로를 진작하고 있으며, 그들은 스스로의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명확한 비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서석훈 편집국장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