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 중독증 - “과연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도박이냐? 게임이냐?”
경마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추리를 바탕으로 한 지적 게임이란 의견이 있는 반면, 수십억원의 판돈이 걸린 도박이란 의견이 팽팽한 대립을 이루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건전하게 놀이로 즐기는 ‘팬’이 있는 반면에 철저하게 도박으로 즐기는 ‘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논쟁일 것이다.
그러나 건전한 놀이로 즐기는 ‘팬’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상당히 심각한 사례로 발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증세가 심각할 경우 ‘경마 중독증’ 환자로 발전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경마중독증’은 거듭된 패배로 인해 초조, 불안, 허탈감에 빠지게되고 심한 경우는 가정파탄, 자살시도 등이 뒤따르기 때문에 모두 경계해야겠다. 〈편집자 주〉

〈표〉 경마 중독의 기준
다음 중 다섯 가지 이상의 부적응적 행동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경마에 대한 집착: 경마로 돈 벌 생각, 다음 모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이전의 손실이나 만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흥분의 추구: 흥분 상태를 높이기 위하여, 혹은 이전에 경험했던 흥분상태를 다시 즐기기 위해서 거는 액수가 점점 높아진다. 왜냐하면 베팅 액수가 클수록 위험도도 높아지고, 그럴수록 더욱 흥분된 강렬한 기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자제력의 실패: 게임을 중지하거나 통제하려는 노력이 계속 실패한다.
4.금단증상: 경마를 못하면 초조하거나 불안, 신경질적이 된다.
5.현실회피: 우울한 기분을 줄이거나 문제에서 도망가기 위한 수단으로 베팅하는 경우가 많다.
6.베팅액의 급속한 증가: 돈을 잃은 후 자주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걸게 된다.
7.거짓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경마에 빠진 정도나 손해본 액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8.범죄행위: 절도, 사기, 횡령 등 경마할 돈을 보충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경우가 생긴다.
9.현실적응의 실패: 경마로 인하여 중요한 대인관계, 직업이나 교육기회 등을 놓치게 되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10.재정파탄과 몰락: 경마로 인해 절망적인 재정파탄에 빠지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인 도움으로 의지하게 된다.

- 경마중독증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내기’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
고스톱에서 포커, 심지어 신사스포츠라는 골프에 이르기까지 돈이 걸리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는 게 이유다. 더욱이 최근에는 경마, 경륜에 이어 카지노까지 오픈과 인터넷상의 사이버도박까지 급증해 그야말로 도박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마나 경륜이나 카지노나 모두 매출액이 증가하는 추세인 것을 미루어볼 때, 결국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고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음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경마장을 찾고, 경륜장을 찾고, 카지노장을 찾는다. 왜 잃는 줄 알면서도 계속 덤빌까?
그것은 도박은 한방이라는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박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드물게 재미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도박’이란 뜻의 사전적 의미는 “건 돈을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고 돈을 더 많이 딸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에 불확실한 사건에 돈을 거는 행위”라고 표기돼있다.
물론 경마라는 것은 기억과 추리라는 것이 동반되기 때문에 이러한 도박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경마중독자’의 경우는 돈을 벌기 위해서 게임을 하기 때문에 도박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경마중독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이 실종한다.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혹은 경마보다 더 중요한 삶의 문제(가족, 직장, 경제적 어려움 등)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베팅을 하게된다. 경마중독이란 경마를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자제력의 장애이기 때문이다.
둘째, 경마에 중독된 사람은 금단증상을 경험한다. 경마를 하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거나 초조하고 불안하다. 주말만 되면 돈이 없어도 경마장에 가야 마음이 편안하고, 경마하는 장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있으며, 경마에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면 사봐야지만 마음이 안정된다.
결국, 중독된 경마인들은 잃은 돈을 복구하려는 마음 때문에 다시 경마장을 찾게되고, 금단증상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욕구 때문에 다시 경마장을 찾는다.

- 즐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중독됐습니까?
“즐기는 경마냐? 중복된 경마냐?”
즐기는 경마와 중독된 경마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경마를 즐기는 사람은 경마를 주말에 즐기는 스트레스 해소의 ‘놀이’로 보는데 비해서 중독된 사람은 경마를 이기고 지는 인생의 승패로 본다.
둘째, 경마를 즐기는 사람은 확률을 두려워하고, 중독된 사람은 확률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험과 배당액을 즐긴다.
셋째, 경마를 즐기는 사람은 겸손하기 때문에 전 게임에 베팅을 하지 않고 확신하는 몇 게임에만 베팅을 한다. 반면 경마에 중독된 사람은 전 게임에 베팅을 하고 높은 액수를 베팅함으로써 스스로 실패할 확률을 높게 만든다.
넷째, 경마를 즐기는 사람은 소액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베팅함으로써 당첨 확률을 높이지만, 경마에 중독된 사람은 많은 돈을 한곳에 베팅해 높은 배당금을 노린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모두 중독상태에서 살아간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흡연중독’이고,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쇼핑이 생활화된 사람은 ‘쇼핑중독’이고 인터넷과 게임에 밤을 새우고 헤어나지 못하는 ‘인터넷중독’, 술에 탐닉해서 자신의 인생과 건강을 망치는 ‘알콜중독’ 등.
그러나 다른 중독은 혼자 병들며 죽어가는 병인데 비해서 도박중독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하고, 정서적으로 황폐하게 만든다. 중독이 심해질수록 거짓말과 무관심으로 불신감이 쌓이고 가정불화, 다툼, 이혼으로 발전하며 경제적 파탄은 물론이고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신의마저 잃고, 직장을 잃고, 사회로부터 고립 당하는 최악의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결국 “즐기는 경마냐? 중독된 경마냐?”에 대한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경마상담실, 이용자 수는 하루 평균 3-4명
한국마사회는 지난 98년 10월부터 ‘경마상담실’을 운영,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느끼는 경마팬들을 상담하고 치료해주고 있다.
이곳을 찾는 ‘경마중독자’들은 임상심리학자를 통해 상담을 받고, 심할 경우 전문의료기관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경마상담실을 찾는 ‘경마중독자’들은 생각보다 증세가 심한 경유가 대부분이란 것이 이흥표 실장(35세)의 이야기다. 이혼 등으로 가정 파탄이 난 경우는 물론이고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 수면제 80알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 등…
그러나 대다수의 ‘경마중독자’들은 경마중독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 수가 생각보다 많은 편은 아니다. 하루 평균 경마상담실을 찾는 사람은 3-4명 정도.
이곳에서 2년째 상담을 하고 있는 이흥표 실장을 만나봤다.

- 인터뷰: 경마상담실 이흥표 실장 - “‘도박중독’ 치유센터가 필요하다”

- 상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전화상담과 방문상담을 하고, 주말은 경마공원에서 상담을 한다. 미리 전화로 상담시간을 결정하는데, 이용자수는 평일은 3-4명, 주말은 2-3명 수준이다. 보통 20회 이상 정도 상황을 봐가면서 상담을 하는데, 대부분의 중독자들이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심한 경우는 무료로 전문의료기관에 치료를 위탁한다.

- 2년 이상 ‘경마중독자’ 들을 상담했는데
▲ 98년 10월부터니까 2년이 조금 넘었다. 그간 많은 사람이 다녀갔지만 이전까지 사회적인 인식 부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꾸준히 이용자 수가 늘고 있는 편이다.
또한 내년 7월 정도에는 상담하기 좋은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고, 정신과 의사도 상주할 예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상담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를 소개해본다면
▲ 경마를 하면서 사업이 망하고 집 두채(약 10억)를 날렸던 어떤 분이다. 당연히 집을 나왔고, 서울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점상을 통해 하루에 2-3만원씩 차곡차곡 모아서 주말이면 경마장으로 향했다. 자기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면서 경마를 한다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다행히도 지금은 수 차례에 걸친 상담과 노력의 결과, 가정으로 복귀를 했고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직업도 얻어 가정에 충실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경마중독증 환자를 상담하며 느낀 소감이 있다면
▲ ‘도박중독증’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런 중독증 환자가 생각보다 많고, 이것을 치료하기 위한 치유센터가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경마뿐만 아니라 경륜, 카지노 등에서 모두 일정액을 투자해 ‘도박중독’ 치유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 예시장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경마팬

98년 3월 1일 과천 경마공원.
1경주가 끝나자 예시장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광목에 목을 맨 한 경마팬이 예시장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
다행히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손을 쓰는 바람에 사건은 미수에 그쳤다. 그 주인공은 김형오씨(44세).
뚝섬 시절부터 경마를 시작한 김씨는 20년간 경마를 즐겼으나, 계속된 실패와 IMF 한파가 시작되며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았지만 빛은 늘어만 갔고, 결국은 빛을 청산할 방법이 없어지자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다.
“감옥 갈 생각도 했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거죠”
우연히 찾아간 경마장은 김씨의 인생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몇 번 짭짤하게 이긴 경험도 있었던 김씨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계속 경마장을 찾았고, 나중에는 본전 생각 때문에 경마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평일이면 힘든 일을 찾아다니며 땀을 흘렸지만, 힘들게 번돈은 모두 경마장으로 빠져나갔다. 경마 때문에 결혼도 못했다는 김씨. 결국 그는 끝없는 낭떠러지로 향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김씨는 자살이 미수에 그친 이후, 생각을 180도 바꿔 경마를 완전히 끊었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이 비록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예전에 겪었던 수많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밝히는 김씨는 “저처럼 경마로 인해서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건전하게 하지 않겠으면 벗어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 인터뷰: “누구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

- 자살이 미수에 그쳤을 당시의 심정은
▲ 사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원래 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끈 맺음을 실패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미수로 그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일 바로 의식을 회복했고, 그 길로 다시는 경마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 이후 경마를 완전히 끊었는지
▲ 자살이 미수에 그친 이후 완전히 경마를 끊었다.
물론 98년 4월부터 X예상지에서 예상 책을 팔며 경마장 주변을 맴돌았지만, 한 경주도 베팅을 한적이 없었다. 지금은 X예상지도 그만뒀고,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간 꾸준히 빛도 정리해 이제는 빛도 거의 정리단계이기 때문에, 머지 않아 모두 청산될 것으로 본다.

- 경마를 끊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 그렇다. 사실 하루에 한 경주만 붙어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경마를 함으로 인해서 느꼈던 고통을 생각하면서 참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내가 일하던 X예상지 사장님의 힘이 컸다. 많이 격려해주셨고 상담도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단 이야기를 하고 싶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 열심히 살다보면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어디에서든 머무는 곳에선 최선을 다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돈과 기술이 충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중회 기자 rin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