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경주마 종합병원
―“경주마 수명, 우리 손에 달렸다”
―진료·방역·연구·장제 등 포괄적인 경주마 안전관리 담당
―‘캐실라베이’‘풀그림’ 등 어려운 수술 이겨내고 재기할 때 “보람 느껴요”

말 박사만 모여라!
국내 유일의 경주마 진료기관인 한국마사회 마필보건소.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 수의사와 연구원 8명이 이곳의 주인이다.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경주마 건강 관리를 위해 힘쓰며 말 못하는 경주마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한다.
경주마 관련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이 전무한 국내의 척박한 환경에도 아랑곳없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들은 1천3백여두 경주마의 건강 상태를 일일이 점검,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주에 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다.
명마 ‘캐실라베이’와 ‘풀그림’의 화려한 재기를 이끌어 내기도 했던 마이다스의 손, 그 주역들을 만나본다.

<진료·방역·연구·장제까지…>
한국마사회에는 일반 개업 수의사가 운영하는 삼포·주암 동물병원이 있고 큰 수술이나 경주마 질병관련 연구 및 예방책을 담당하는 마필보건소가 별도로 운영된다.
단순히 아픈 부위의 치료와 예방에만 신경쓰면 되는 일반 병원과 달리, 국내 유일의 경주마 진료기관인 마필보건소는 질병 예방에서부터 치료, 체계적인 연구, 그리고 경주 출전을 위한 장제 분야까지 관리를 맡는다. 그러므로 실제 경마시행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주 질을 높이기 위한 숨은 역할이 큰 부서로 볼 수 있다.

―모든 경주마의 진료는 여기에서
수의사와 연구원 8명이 운영하고 있는 마필보건소는 경주마 진료가 가장 주된 임무다.
먼저 부상이나 질병이 우려되는 경주마는 삼포·주암 동물병원에서 1차 검진을 마친 후 간단한 외상으로 판단되면 해당 병원에서 응급처치 및 진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부상 부위가 심각한 것으로 판단되면 곧바로 마필보건소로 이송, 수술이 필요할 경우 이곳의 전문 수의사가 직접 집도하며 경과를 진단하는데 연간 수술회수는 무려 50여 회에 달한다.
경주마 수술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그동안의 연구나 학계의 자료 등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 자체적으로 선진 경마시행국 연수 및 교육 과정 이수, 수술 경험, 선배 수의사의 조언, 그리고 부검 등 많은 노력이 따라 지금의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국내 마필 수의사의 수준은 선진 경마시행국과 근접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경주마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일컬어졌던 편골 제거 수술이 최근에 와서는 ‘풀그림’‘캐실라베이’등의 사례로 알 수 있듯 성공적으로 이뤄짐으로써 경주마의 수명은 그만큼 확대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염병 예방 위한 방역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질병을 앓고 부상을 당한 경주마의 치료 뿐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의 구충제 복용, 예방접종, 전염병 검진, 소독 등의 업무도 마필보건소의 주요 업무 중의 하나다.
이러한 총체적인 예방 작업은 개체방역과 집단방역으로 나눠진다.
개체방역은 각 마필 별로 구충제 복용과 예방접종을 말하며 집단방역은 전염병 검진이나 소독작업, 경마장 입사시 검역 등이 해당된다.

―경주마 질병에 관한 연구 및 정리
국내에 말 관련 의료 및 연구 기관이 전무하다보니 마필보건소가 소화해 내야하는 업무량은 실제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경주마 질병 및 향후 발생 가능한 전염병의 예측, 말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 등은 학술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8명이 가용되는 마필보건소의 형편상 인력이 부족해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아직까지는 미진한 편.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마필보건소가 각별히 관심갖고 주력하는 연구 분야는 경주마 운동생리 분야다. 한국형에 맞는 경주마 훈련방법을 개발하고 조교사에게 기술을 전술해 줌으로써 한정된 자원으로 최상의 경주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부검 등을 통한 조직병리연구도 활발히 진행돼 경주마의 폐사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밖에 매년 선진 경마국 시찰과 1년여의 연수를 꾸준히 실시함으로써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질병을 숙지하고 우리 현실에 접목하는 한편, 학계와도 연계해 공동 연구에 돌입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건소 관계자는 설명한다.

―장제 기술 개발 및 인력 관리
경주마에게 있어 발에 꼭 맞는 신발은 경주력 발휘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신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게 바로 장제 업무며, 일반적으로는 개업 장제사들이 개별적으로 해당 마필에게 가장 적합한 말굽을 만들어 낸다.
마필보건소에서는 장제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와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등도 맡고 있다.

<경마일에는 수의위원으로 현장 집무>
마필보건소의 또 다른 역할은 경마일 수의위원으로 각 출전마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 감독하는 것이다.
조교사·마주에게 경주마 건강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경마일에는 공정한 경마 시행이 가능하도록 엄격한 감독관 역할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때에는 경주마가 정상적인 건강 상태로 최상의 경주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으며 출전 공백이나 최근 진료 기록이 있는 말에 한해서는 미리 마체검사 지정을 하고 충분한 검사를 거친 뒤 경주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 출전대기마사가 운용됨으로써 수의위원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며 경주 3시간 전에 혈액 검사 및 시료를 채취해 공정한 경마 시행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사실 주중에 이뤄지는 경주마 질병 치료보다 경마일의 집무가 더 긴장되고 바쁘다는 게 보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주마 질병코드집 발간…어려운 질병명, 새롭게 정리해 쉽게 설명한다>
무려 3백여종이 넘는 경주마의 질명은 그 이름이 낯설고 증세에 관한 설명 자체도 난해해 경마팬들로서는 그 경중을 판가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마필보건소에서는 지난 96년부터 경주마 질병에 관한 새로운 정의 및 정리 작업에 착수해 금년 5월경이면 질병코드집이 완성될 것이라고 전한다.
마필보건소는 질병코드집에 현행 3백83종으로 규정돼 있는 질병의 종류를 3천96종으로 세분화하는 한편, 일본식 표기명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할 계획이다.
경주마 질병에 관한 새로운 정의와 설명은 경마종사자인 조교사와 기수, 관리사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물론 관심있는 경마팬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4년여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새롭게 정리한 마필보건소는 앞으로도 체계적인 연구를 병행하면서 팬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양과 질을 대폭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마 폐출혈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
―선진 경마시행국은 더욱 엄격한 기준 적용
선진 경마시행국에서는 예전부터 경주마의 폐출혈에 관한 패널티가 강력하게 적용돼 왔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전부터 폐출혈의 위험성을 고려해 경주중 폐출혈을 일으킨 말은 출전정지, 경주부적격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폐출혈 1회는 30일간 출전정지, 2회는 60일간 출전정지, 그리고 3회째 폐출혈을 일으키게 되면 경주부적격으로 폐마 처리하고 있다.
폐출혈은 격심한 운동으로 인해 경주마의 폐압이 올라가면서 신생 혈관들이 터져 출혈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로 인해 경주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보건소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2회 폐출혈시 6개월의 출전 정지 처분과 함께 3회 발생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폐마 처리하고 있으며, 호주·뉴질랜드·일본 등은 이보다 더욱 엄격해 1회 발생시 3개월간 출전정지, 2회째에는 폐마 등 우리보다 훨씬 강도 높은 제재가 가해진다.
이에 대해 보건소 관계자는 “한정된 마필 자원으로 경주를 운영하고 편성하다보니, 폐출혈 발생마에 대한 제재도 다소 느슨할 수 밖에 없다”고 밝히며 폐출혈에 관한 팬들의 이해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즉, 사전에 폐출혈 여부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왜 그 말을 출전시켰냐”는 비난이나 아직 더 경주마로 사용할 수 있는데 왜 폐마시켰냐는 등의 항의는 경주질 향상을 위한다는 전제 속에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생명과 함께 호흡…눈물과 웃음이 한자리에>
마사회 내에서도 비교적 이직률이 높은 보건소. 밤샘 진료와 당직 근무 등 노동 강도가 타 부서에 비해 현저히 높다.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곳 근무자 8명은 항시 진료 대기하며 월 4회씩 당직 근무를 하고 있으며 종부 시즌에는 원당과 제주 목장에 파견 근무까지 나가야 하는 형편이다.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최귀철 보건소장은 내외적으로 처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따라주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8명의 수의사와 연구원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경주마를 마치 가족처럼 아끼는 우리 수의사들이야 말로 현장에서 최선을 다 하는 숨은 일꾼들 아니겠습니까?”
제자식 나오는 것은 보지 못해도 경주마 새끼는 모두들 직접 받아봤다는 이곳 관계자들.
그순간 느끼는 생명에의 경외감과 신비를 떨치지 못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어느 수의사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에겐 생명을 다룬다는 책임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깟 말한테 뭘 그리 좋은 약품을 쓰느냐며 핀잔 놓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말도 하나의 생명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다’‘아니다’를 떠나 살아 숨쉬고 있기에 가장 좋은 것, 가장 깨끗한 것을 쓰고 싶은 소박한 욕심을 이해할 수 있겠다.

<환절기엔 체중감소와 소화기·호흡기 질환 조심>
전문가인 최소장이 전하는 경주마의 질병에 관한 소식 하나.
“환절기인 요즘에는 말들도 예민해져 체중감소가 있을 수 있구요, 또 소화기 질환이나 호흡기 질환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그는 또 경주마에게 있어 운동기 질환과 호흡기 질환은 세심하게 체크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즉, 건염이나 관절염 등 운동기 질환이나 심장·폐질환을 앓았던 경주마는 일단 주의 깊게 컨디션을 체크해야 한다는 뜻이다.

<‘캐실라베이’여 영원하라!>
지난 12년간 수의사로 지내고 있는 안계명 과장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캐실라베이’와 ‘풀그림’의 극적 재기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편골 제거 수술이라는 것이 그만큼 경주마에게 치명적인 것이었고 또 수의사 입장에서는 치료가 어려운 부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정말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라며 당시의 긴장감과 큰 보람을 되새기는 안계명씨.
“수술을 마치고 난 그날 밤 갑자기 말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수술은 잘 끝났는데, 원인 모를 마체 이상이 왔죠. 옆에서 함병만 마주가 밤새 간호하며 땀을 닦아주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직접 수술하고 또 밤샘 간호하며 경주로에서 뛸 날만 기대했던 그에게 ‘캐실라베이’와 ‘풀그림’이 안겨준 연승 소식은 커다란 희망이자 낙이었다.
편골 제거는 베테랑 수의사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럽고 어려운 수술이다.
경주마의 관절 부근은 무균지대인데 그 사이에 떨어져 나온 뼈 조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위를 절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세균 감염이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부득이 내시경을 삽입해 모니터 상에서 수술을 시도해야 한다. 전적으로 손과 모든 신경의 감각으로 집도하는 수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경주마와 함께 하루를 열어 가는 이곳 사람들은 경주마의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하기 위해 정성을 다 하고 있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