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진단-경마산업 위기론 고조, 탈출구를 찾아라!

―‘살생부’문건 파문 확산 마사회 초비상
―마주협 내분 조짐, 경주마 구매 및 도입 관련 산적 과제 돌출
―내륙생산자협회 법인등록으로 생산자협회도 갈등 양상
―조교사협회노조, 조교사협 및 마사회 민사 고발
―매출액 급증·경마인구 확산 등 호재 불구, 내부 갈등으로 위기 초래

경마산업에 대한 위기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던 경마단체들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원인이며, 특히 최근에는 각 단체 내부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경마산업에 불어닥친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경마시행체인 마사회가 ‘살생부’ 문건 파문으로 조직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편, 외산마 도입 변경으로 그 어느때보다 바빠야 할 마주협회는 코토바·경사모 등 협회 내 파워집단 등장으로 의기소침해 있다. 또한 경주마생산자협회는 내륙지역이 별도의 협회 법인등록을 마침으로써 제주와 내륙 간 각기 다른 노선을 걷게 됐고, 조교사협회는 노조와의 노사협의를 앞두고 있어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급격한 매출 신장과 경마인구 확대에 발맞춰 선진 제도를 입안하고 시행해야 하는 때에 경마단체들 간, 혹은 각 단체 내부적인 문제가 돌출되면서 지금 경마산업은 그 어느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다. (메인사진은 관람대 전경, 혹은 마사회 전경)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

-한국마사회 조직을 뒤흔드는 ‘살생부’문건 파문(살생부 스캔)
지난 98년 한국마사회 구조조정 당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살생부’문건은 마사회 조직 자체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으로 떠올랐다.
살생부 문건은 특히 마사회 직원은 물론 조교사, 기수 등 경마관계자들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해 파문이 확산됐으며, 또한 문건 작성에 마사회 노조까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관련자 형사 고발 및 진상규명을 위한 노사공동위까지 발족된 상태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마사회 관계자는 물론 일반 직원과 경마종사자들까지 사기가 저하되고 정서가 악화된 것은 물론이다.
지난 27일(수) 발족한 진상 규명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위원장/박창정 마사회 부회장·노병준 노조위원장)는 현재 조사 대상자 선별 및 조사 범위 등 세부적인 계획안을 수립하는 단계에 있으며, 향후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경마계 주변에서는 마사회의 이같은 자체 진상 규명 노력이 사실상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투명한 처리를 위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노력이 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문건 공개자 7명과 98년 당시 정리해고된 13명이 수원지검에 오영우 전 회장 및 관련자들을 형사고발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며, 검찰 수사 진행 방향에 따라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코토바·경사모 등 마주협회 내 파워 집단 등장(마주협회 내부 전경)
개인마주제 출범 10년째를 맞고 있는 마주협회(회장/정진태)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매년 상금협상은 물론 제도개선을 위한 각종 협의 및 경매 일정을 두고 마사회, 생산자협회 등 관련단체와 이견을 보이며 불협화음을 내긴 했어도, 4백50여 마주회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마주협회 만의 몫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생산자마주협회(코토바), 경사모(경마를 사랑하는 마주들의 모임) 등 협회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견제 집단이 속속 생겨나면서 협회는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회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어우르는데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코토바, 경사모 등 마주협회내 파워 집단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면서 시너지효과를 유발할지, 혹은 협회 내분화를 가속화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마주협회 내 혼란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외산마 도입과 국산마 경매를 코앞에 두고 있는 마주협회는 정확한 방침을 결정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경주마 수급에까지 영향이 미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주와 내륙으로 갈린 경주마생산자협회(경매 사진)
매년 경매시행 일정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경주마생산자협회(회장/현대영)는 올해부터 경매의 정례화 및 방식의 다양화를 추진하면서 생산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고 경마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추진돼왔던 내륙의 생산자협회 결성이 본격화되면서 마침내 법인등록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이제 제주와 내륙이 각자의 노선을 걷게돼 당분간 또다시 혼선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경주마 민간목장은 협회에 등록된 것만 제주 78개, 내륙 15개(준회원 40개 목장은 별도)고 이외 개별적으로 경주마 생산을 하고 있는 목장도 상당수다.
제주 지역의 경우 비교적 효율적으로 생산자협회와 마사회 육성목장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반해 내륙지역은 목장 분포가 산발적이고, 그 숫자도 적어 생산 지원이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내륙 농가들로부터 많은 불만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1∼2년 사이에 내륙 지역 농가들은 자체적인 협회 결성을 추진해왔으며 마침내 사단법인 등록을 마쳐 이제 본격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한종수 내륙생산자협회장(천안 승리목장 대표)은 “그동안 내륙지역이 제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지원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내륙과 제주로 이원화된 체계에 맞춰 제주는 제주대로, 내륙은 내륙대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면서 각 목장들 간 의견을 공유해 보다 효율적인 생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협회 결성 취지를 밝혔다. 제주의 생산자협회는 협회 이원화로 인해 앞으로 각종 정책 마련에 있어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우려하는 가운데, 향후 육성목장 건설이 완료되고 생산 기반이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단체로 다시 어우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경매를 비롯한 각종 제도 시행과 관련해 마사회, 마주협회, 생산자협회 등 관련 단체간 의견이 첨예한 가운데, 단체의 이원화에 따른 혼선이 더욱 가중되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사협의 앞둔 조교사협회와 노조, ‘5월 악몽 재현할까’(경마중단 때 시위 사진)
조교사협회노조(이하 관리사노조)는 지난달 22일(금) 2000년에 작성된 이행각서 무효화를 위해 수원지방법원에 마사회와 조교사협회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마사회와 조교사협회는 소송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며, 향후 소송 결과가 경마 시행에 어떤 결과를 미칠지 미지수지만 경마계 안팎에서는 문제가 될 또 다른 불씨가 생겨난 것으로 이번 소송 제기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이번 달 내로 있을 조교사협회와 노조의 노사협의 역시 양측 입장이 뚜렷이 대비돼 그 결과에 지대한 관심이 모아진다.
관리사노조는 일단 근무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정할 것을 원하고 있지만 새벽훈련의 특성상 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마사회와 조교사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 2000년 5월에는 이미 관리사노조와 마사회와의 갈등으로 경마중단사태가 빚어진 바 있고 그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됐었다.
따라서 금번에 제기된 소송과 노사협의 결과에 따라 그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마사회와 조교사협회, 그리고 관리사노조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충분한 협의와 노력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지혜 발휘하자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일들이 아니다. 정부의 획일화된 구조조정 강요로 인해 살생부 문건 파문이 일게 된 것이고, 기형적인 개인마주제 시행으로 마주협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경주마 생산 기반이 마련되지 못함으로써 한 단체 속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즉, 오랜 동안 경마산업이 안고 있던 내외부적 병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치유 대책을 마련해 서로의 상처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마무리짓고 이제부터라도 경마산업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경마계가 내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점 확충 및 시설 보완에 따른 지방화와 각종 제도, 정책 등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매출액과 입장인원은 급신장세에 놓여 있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5월에 있을 제2관람대 개장과 대구, 울산, 전주, 청주 등 지방 지점 설립이 연내까지 마무리되면 그야말로 경마전국화 시대를 맞게돼 성인레저 공간으로써 경마산업의 우월적 지위는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사회, 마주협회, 조교사협회, 기수협회, 생산자협회 등 관련단체의 결집된 힘이 필요하고, 또한 농림부를 비롯한 정부관계부처의 적극적인 지원도 따라야 할 것이다.
모든 경마단체들은 문제 해결에의 적극적인 의지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새로운 경마단체의 등장- 분열인가? 발전인가?〉
마주협회 갈등은 점차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협회가 마주 연간 구매 두수 제한을 지난해와 같은 ‘1인 2두’로 변경해 가장 큰 갈등요인도 제거됐다. 3월부터 상금에서 협회운영비를 공제하지 않겠다던 ‘경사모’는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아 정상적으로 협회비가 공제된 상태다.
생산자협회와 내륙생산자협회 관계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내륙목장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생산단체의 이원화는 안된다던 생협은 내륙경매에 대해 조언하는 등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고 내륙생협 역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수한 국산마를 생산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각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코토바’가 농림부에 사단법인 등록신청서를 제출했다. 일부에서는 두 개의 생산자단체에 이어 두 개의 마주단체가 공식화되게 생겼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대해 ‘코토바’는 절대 분열은 없다는 입장이다. 박성구 회장은 “대외적인 활동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일단 지금까지는 마주협회와 ‘코토바’의 관계는 상호독립적인 생협과 내륙생협의 그것과는 다를 것으로 파악된다.
새로운 경마단체들에 대해 마사회는 일단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당장 실무자들로서는 파트너가 늘어나면서 혼선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 기존 경마단체 역시 다소 불안하고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경마단체의 등장으로 업무의 불편과 혼선은 물론 의견 조정 과정도 다소 복잡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경마발전을 위해선 불가피한 대세라는 입장이다. ‘코토바’ 권동섭 사무국장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자율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것은 다원화 사회에서 자연스런 일”이라며 “분열 운운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일축했다. 내륙생산자협회의 손칠규 부회장 역시 “분열이 아니라 여러 단체들간 선의의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생산자와 마주의 사정에 모두 정통한 생산자·마주들의 단체인 ‘코토바’는 특히 국산마 정책과 정보에 대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내륙목장들의 대표인 내륙생협은 제주와 내륙간 균형적 발전에 발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의 단체들이 보지 못했던 것이나 중요시하지 않았던 현안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단체들의 등장은 분명 신선하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단체들이 경마발전이라는 대명제를 무시하고 세력화, 이익집단화로 소위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다면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악수(惡手)가 될 것이다. 경마단체간 상호존중과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권현 기자 knhn@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