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여인천하’, 수말들 ‘음메 기죽어!’
-더비 전후해 3세 경마대회, 특별경주 대거 편성, 더비를 살려줘야 하는데...

-우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비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모든 마필관계자들의 목표이자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5회 코리안더비 우승을 거머쥔 ‘해암장군’과 마필관계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잔치가 끝난 뒷자리엔 다소의 아쉬움도 남는다. 더비는 최강의 3세마를 가리는 축제의 장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곱씹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암말 2연패, 고개 숙인 한국의 수말들...
‘해암장군’의 우승으로 코리안더비는 2년 연속 암말들의 잔치가 됐다. 더비 원년 ‘우승예감’까지 더하면 5번 대회에서 암말들이 3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영국의 엡섬더비, 미국의 켄터키 더비, 일본 더비 등 세계 각국의 더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암, 수와 관계없이 3세마에게 출전자격이 부여된다. 하지만 더비에서 암말이 우승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고, 따라서 암말들은 더비 출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암말들은 더비 전날, 또는 1, 2주 전에 시행되는 오크스에 초점을 맞춘다. 128회의 역사를 자랑하는 켄터키 더비에서 암말이 우승한 예는 1915년 ‘리그렛’(Regret), 1980년 ‘지닌리스크’(Genuine Risk), 1988년 ‘위닝컬러스’(Winning Colors) 등 세 두가 전부다. 역사 5년의 우리와 같은 수치다.
우승열패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마의 세계에서 능력이 좋다면야 우승마가 암말이든, 수말이든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같은 ‘여인천하’가 세계 경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더비 뒤에 오크스가 열리는 나라도 거의 없다. 3세 오픈인 더비에 앞서 3세 암말의 오크스를 치르는 것은 스포츠 이벤트에서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3세 챔피언을 먼저 가리고 3세 암말 대회를 나중에 개최한다. 결승전을 먼저하고 준결승전을 나중에 하는 이러한 촌극 역시 ‘여인천하’를 부채질하고 있다.

-더비는 모든 3세마의 타겟이어야 한다.
더비는 세계 어느 나라든 그 나라에서 태어난 최고의 경주마가 출전하는 최고 권위의 경마대회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과연 이런 명제가 성립되는지는 의문이다. 올해 코리안더비에 출전신청을 한 말은 모두 14두. 게이트를 꽉 채우기만 하고 더 이상 출전신청을 한 말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더비를 전후해 열린 경마대회, 특별경주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지적이다. 마방 입장에서 보면, 소속 3세마를 더비에 동반 출전시켜 서로 경쟁을 펼치느니, 여러 대회에 출전시켜 상금벌이에 나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고 여러 바구니에 담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투자의 원리다. 코리안더비가 국산마의 최강을 가리는 진정한 축제로 자리매김 하려면 3세마 모두 더비를 목표로 해야한다. 이런 전제에서 볼 때, 더비를 전후한 경마대회나 특별경주는 득보다 실이 많다.
“한 나라의 수상이기보다 더비 출전마의 마주이고 싶다”는 처칠 전 영국수상의 말은 더비 출전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고 힘든가를 보여준다. 해마다 이름난 더비에는 백여 마리의 경주마가 더비 게이트를 배정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기 위해서 더비 전초전격인 각종 대회에서 최상의 승부를 펼친다. 단 14마리만이 신청, 더비 출전권이 그냥 주어지는 현실은 우리 더비의 태생적 한계다.

-더비 챔피언이 리딩사이어로 등극할 날은 언제?
단순한 내기로 시작한 더비. 하지만 현대경마에서 더비는 뛰어난 종부마의 등용문이다. 혈통이 우수한 3세마는 자신의 혈통적 우수성을 입증하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더비에서 최선을 다한다. 변두리 혈통의 3세마들 역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능력을 검증 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모두가 종부마로서 보다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국산마의 수준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나 외국처럼 더비 우승마가 씨수말로 좋은 성적을 올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우리의 더비 우승마들은 유명 종부마는 고사하고 하나같이 경주마로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제1, 2회 우승마인 ‘우승예감’, ‘만석꾼’ 등은 더비 이후 1승도 추가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했고, 제3, 4회 우승마 ‘핵돌풍’, ‘햇빛마을’도 부상에 시름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마로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다 영예롭게 씨수말로 활동하는 외국과 달리 씨수말은 고사하고 경주마로서도 더비 챔피언의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이어지는 코리안더비 우승마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그 경주마의 불행이 아니라, 코리안더비 자체의 문제점에서 찾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