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승부-1995그랑프리 경마대회-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명마 ‘대견’

경주마 ‘대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식어는 뭐가 있을까? 500Kg의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중함(重), 과중한 부담중량 속에서도 결코 병들지 않았던 두터움(厚), 여타 경주마들의 곱절인 8년에 가까운 경주로 생활(長), 그리고 90년대 한국경마를 대표하는 큰 획(大). 국내 굴지의 모 기업에서 자부심의 표현으로 곧잘 인용하던 한자성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그 중후장대한 ‘대견’이 과천벌을 떠나간다. 이제는 추억의 명마로 남을 ‘대견’이 최 전성기의 발걸음을 과시했던 1995년 그랑프리 경마대회를 되돌아본다.

발군의 도주력 ‘대견’
한해를 결산하는 최강마를 가리기 위해, 경마팬들의 인기투표로 선정된 그랑프리 출전마 13두의 마필. 1994년 그랑프리 우승마로서 대회 2연패에 도전했던 ‘지구력’, 그해 경마대회 3관왕의 자격으로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진 ‘핵탄두’, 그랑프리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문광부 장관배 우승마 ‘금맥’, 그리고 강자의 이미지로 지금도 기억되는 ‘군주’, ‘거창’, ‘뷔로라’, ‘아침누리’ 등이 1995그랑프리 출전마의 면면이었다. 이러한 기라성 같은 상대마 속에서도 우승 유력마로 부각된 것은 단연 ‘대견’. 1995년 한해를 과중한 부담중량에 눌려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특히 10월의 장관배 경마대회에서는 64Kg의 핸디캡중량에 고전하며 참패했었다. 다행히 별정경주로 그랑프리가 편성된 결과, 직전대비 5Kg의 감량이점을 안고 출전하게 된 ‘대견’은 지난날의 설욕전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대견’과 황금콤비를 이루던 신형철 기수가 기승정지 상태인 점이 아쉬웠으나, 명마에 명기수라는 최혜식 조교사의 쇼맨십이 발휘되며 박태종 기수가 고삐를 잡게 됐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5번 ‘대견’은 2300m 장거리 레이스임에도 아랑곳없이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미 62Kg의 부담중량을 지고서도 3연승을 이뤄냈던 굳은 자신감의 표현이었던 듯. 4코너 돌아 결승주로에 접어들 때까지도 ‘대견’의 선행력은 지칠 줄 모르는 가운데, 다만 2위권에서 11번 ‘거창’을 3번 ‘핵탄두’와 추입형 7번 ‘금맥’이 추월하는 정도의 변화만 보였다. 결국 ‘대견’은 8마신 차이로 ‘핵탄두’를 제압하며, 고부담 중량이라는 인위적 굴레만 아니면 그 어떤 경주마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과시했다.

최혜식 조교사
그랑프리 우승 직후, 최 조교사는 1995년 한해동안 ‘대견’이 짊어졌던 과중한 부담중량에 대한 안쓰러운 심정을 밝히면서 경주전 우승은 100% 확신했으며, 동등한 조건에서 ‘대견’을 따라잡을 상대마는 없다고 믿었기에, 박태종 기수에게 선행에 이은 편안한 레이스 전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태종 기수
1995년 상반기에 자신의 소속조 마필인 ‘케뷔’에 기승, 무궁화배 경마대회 우승의 영광을 안은 박 기수는 그날 ‘대견’으로 그랑프리 경마대회까지 석권하는 감격을 맛보게 됐다. 3코너 중반에서 2300m 장거리 경주임을 의식, ‘대견’의 체력을 안배코자 고삐를 늦췄다는 박태종 기수. 하지만 고부담 중량에서 해방된 ‘대견’은 힘이 넘치는 듯 오히려 자신을 끌고 나갔다며 우승과정을 설명했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