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가 아무 거리낌도 없이 뻣대자 마동식으로서도 뾰족하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추측대로 종원인가 하는 그놈이 돈 가방과 관련이 있다면 봉주가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로 물러설 수도 또 돈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마동식은 뻣대고 서있는 봉주를 잠시 노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봉주는 그런 마동식의 심중을 꿰뚫고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종원과 자신은 놈의 비리를 알고 있고 핸드폰에 그 증거들까지 촬영해두었으므로 결코 이 기 싸움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동식은 불쾌한 표정으로 잔뜩 오므라든 두 눈을 잠시 껌벅이더니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내일 볼 수 있어?”

했다. 봉주는 과장스레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뭣 땜시 종원형을 꼭 봐야 하는지는 몰라도 내일 나가 데릴러 간다고 했응게 그때 같이 가봅시다.”

했다. 마동식은 불쾌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알았어. 내일 아침에 봐!”

하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마동식이 방을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서있던 봉주는, 그동안 마동식이 단지 경찰신분이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 늘 억눌려 삭여와야만 했던 감정을 최소한은 맞대응을 했다는 모처럼만의 쾌감으로

“쓰발놈! 앞으로 한번만 더 깝쭉대면 콱 씹어버릴 거여.”

하고 기분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동식은 곧장 15층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전여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침입과 돈가방의 도난에 대해 추리를 하고 분석을 해보았지만, 모든 것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을 뿐 어떤 단서하나도 찾아내지 못하고 혼돈에 빠져든 채 잠이 들었다.

다음날, 봉주와 마동식이 종원이 있는 모텔방의 벨을 눌렀을 때는 오후 1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봉주가 모텔측에 절대로 자신이 올 때까지는 종원이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하라고 단단히 조치를 취해두었던 까닭에, 종원은 그들이 그 시간에 찾아와 벨을 누를 때까지 모처럼 만의 달콤한 숙면을 맞보았다.

“봉주야?”

종원이 특유의 잠버릇 때문에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들을 쓸어 올리며 문을 열자 봉주 곁에 마동식이 서있었다. 마동식은 종원과 봉주가 서로 어떤 눈짓이라도 나누는지를 보겠다는 듯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종원은 태연하게

“같이 오셨네?”

하며 마동식에게 눈인사를 해보였다. 마동식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해보였다.

“예. 으찌케 푹 좀 쉬셨소?”

봉주가 특유의 버릇대로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웃어보였다.

“응. 모처럼 푹 잤어.”

종원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혔소,”

봉주가 다시 고개를 까닥하고는

“들어갑시다.”

하고 마동식에게 말했다. 종원이 마동식에게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먼저 몸을 돌렸다. 마동식은 봉주를 따라 느릿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종원이 소파에 벗어 내던졌던 옷들을 한쪽으로 밀쳐내며 마동식에게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잠시만 기다리시죠.”

하고는 

“봉주야. 좀 꺼내드려라. 샤워부터 하고 나올게.”

하고 욕실로 들어가자 봉주는

“천천히 허고 나오시오. 그냥 밥이나 같이 먹자고 오신 거니께라.”

하고 욕실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마동식은 봉주가 권하는 대로 소파에 앉아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은근히 방안을 살폈다. 그러나 종원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욕실로 들어 가버리고 난 후의 방안의 모습은, 종원이 자신의 방에 침입을 했다거나 돈가방을 털어 냈을만한 그 어떠한 낌새도 찾아낼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저렇게 태연할 수도 없을 테고, 또 태평스레 아직까지 잠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테고, 더욱이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터였다. 만약 놈이 그런 짓을 했다면 벌써 어디론가로 튀었을 테고, 그랬다면 놈일 수도 있다는  심중을 굳혔을 텐데 하는 생각들을 쉼 없이 하고 있었다.

“어따! 그림 좋다! 그지라우?”

봉주가 TV를 켜고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성인방송에서 에로영화의 농도 짙은 정사장면이 나오자 히죽거리며 마동식을 보고 동의를 구했다. 마동식은 쓴 미소를 짓다가 봉주 따위가 자신에게 농담을 건넨다는 게 몹시 불쾌해져 이내 미간을 찌푸려보였다. 봉주는 그런 마동식의 심중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반장님은 아적 체력이 될란지 모르겄네요?”

하고 은근히 약을 올렸다.